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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을 빼기

퇴고

by 무당벌레

망설임과 욕심만 하루에 9만 리를 날고 있다. 출간을 염두한 원고의 머리말과 맺음말을 갈아엎으며 그렇게 중얼댄다. 초고부터 따지니 6번째 버전이다.


머리말과 맺음말이 본문 전체를 두고 벌이는 나만의 퇴고처럼 여겨진다. 단행본은 처음이라 그런가. 햇병아리 작가 지망생의 퇴고는 대체 어때야 하는 걸까 ㅠㅠㅠㅠ


퇴고란 결국 덜어내기라는 귀한 말을 들어 왔다. 욕심을 덜어낸다는 말일 테다. 가장 가벼운 욕심은 문장과 구성의 욕심이다. 그 다음이 마음의 욕심이지 싶다. 마음의 퇴고는 성찰이라 부른다. 둘 다 애초 내 것이 아닌 걸 덜어내는 일이니 그나마 할 만하다.


가장 어려운 퇴고는 내 것 같은데 덜어내는 일인 듯하다. ‘나의 진심’이라는 거. 그것만큼 끈덕져서 무거운 욕심이 없다. 그러니 가장 진정성 있는 퇴고는 진정성을 덜어내는 일이 된다. 결국 온 힘을 다해 힘을 빼는 일이다. 그제야 탈고할 수 있지 않을까.


‘진정성을 내보이자.’ 늘 붙들리는 말. 진정성을 향한 반복된 집착은 내 진정성을 오롯이 확신하지 못하는 탓일까. 진정성의 진정성과 깊이와 명료성을 향하는 끝없는 회의가, 진정성을 감당하지 못해 붙들리게 한다. 바닥 모를 진정성의 늪.


석사 학위의 취지는 기존 연구를 조사할 줄 알며 똑바로 참조할 수 있게 됐다는 자격 증명일 뿐이다. 박사 학위는 그걸 바탕으로 이제 ‘자기 연구를 시작해도 될 법하다’는 자격 증명일 뿐이고. 박사는 시간을 쌓고 연구를 얹어 드디어 자기 진심이 뭔지, 그리고 뭐였는지 감당할 수 있게 된다.

석사 논문을 쓸 때 괴로웠다. 끝맺기가 힘들어서다. 박사 논문을 쓰려 한 탓이었다. 미쳤던 게다. 다 쓰고도 거의 한 학기를 흘려보낸 기억이 아스라하다.


숏다리가 진정성의 늪에 잠기면 발이 안 닿아 숨 막혀 죽는다. 첫 책, 두 번째 책, 그리고 세 번째 책…. 그렇게 롱다리가 되어 갈 것이다. 발 딛고 감당할 수 있는 진정성의 깊이도 따라서 두꺼워지지 않을까. 그리 믿고 소망한다.


진정성을 부르려 하지 말고 진정성의 부름에 응답하기. 독자에게 지금 내 다리 길이만큼, 딱 한 줄로 자신 있게 정리되게 전하겠다는 마음가짐. 그만한 진정성이 있을까. 나머지는 온 힘을 다해 뺄 수 있기를.■


이미지 _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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