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라이테, 포도송이, 붕어만세 작가^^
사 주고 팔아 주는 분도 귀하지만 읽어 주는 분이 훨씬 귀한 시절입니다. 읽어 주는 이, 그래서 자기 이야기로 변주해 주는 이, 그렇게 평해 주는 이, 그들을 일컬어 '독자'라 부른다데요. 나와 독자가 만날 다리가 책이니, 다리를 내기 위해서는 독자에게 필요한 책을 써야 하구요.
불안은 흔들의자 같더군요. 앞뒤로 끊임없이 흔들리지요. 결국 제자리에서요. 출간 임박 무렵의 심정이 그렇더군요. (거의 대한민국 책은 저 혼자 다 내는 줄^^;;;) 온갖 불안과 우려 속에서 '읽게 만들어 읽어 주는 이와 만나자'는 마음 하나만 붙잡고자 했던 얼마간이었습니다.
그러니 며칠 전에 있었던 한 만남은 첫 책을 낸 제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첫 '독자' 작가님들을 만난 날이었으니까요.
종로3가 익선동에는 가을이 레이스를 달고 걷고 있더군요. 인쇄소에서 막 인터셉트해 온 펄펄 끓는 5권의 책을 꼬옥 품고 익선동으로 향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이날을 딱 기다려 주신 라이테 작가님, 포도송이 작가님, 붕어만세 작가님 부부가 계신 곳으로요. 무려 전북 익산, 남양주, 부천에서 오신 분들. 이분들의 끈끈한 문우지정과 김이 폴폴 나는 제 책 얘기, 그리고 출간 예정인 책 이야기가 깊어가는 가을 속으로 어울려 든 하루였습니다.
라이테 작가님. 브런치 삼총사 모임의 맏언니. 「가을의 전설2」(부제 : 익선동 속닥 회합)을 기획, 제작, 총감독한 분이지요. 막내 붕어만세 작가님이 대왕님으로 모시는 작가님이기도 하구요.(근데 붕작가님, 하필 왜 대왕인지...?ㅋㅋ)
그 글방이 밥 때를 가리지 않는 손님으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희한하게 댓글 수가 라이킷 수를 가뿐하게 뛰어넘어 버리는 당대의 거의 유일한 댓글 맛집이라는 걸 모르는 분은 없으실 테고... 메뉴도 오지게 맛깔스러워 무당천국 분식집 명함 정도는 종이 쪼가리 취급 당하는 미슐랭 맛집이지요.
근데도, 비밀임다만 무당천국 사장으로부터 노상 핀잔을 듣지요. 구독자수를 숫자로 안 보고 한 명 한 명 이웃으로만 보려 하는 데다가, 댓글인지 발행글인지 헷갈리는 길이의 댓글과 답글 들 탓에 말입니다. 손목에 깁스 없이 버티는 게 참 신통하다능... 아무튼 지난해 말까지 1년 반도 넘게 브런치를 클라우드 서버 정도로 여기며 퐁당퐁당 띄엄띄엄 지내던 저를 11개월째 연속 브런치에 눌러 앉힌 절친이기도 합니다.(흠... 맞소 절친?)
8만 작가와 300만 회원이 넘치는 브런치 동네에서, 그리고 1,500 남짓한 구독자님들 가운데서 가장 먼저 제 원고의 머리말부터 맺음말까지를 읽어주신 분입니다. 편집디자인되기도 전 아래한글 상태의 교정본을, 그것도 최소 2번을요. 첫 챕터를 추천해 주고, 목차 순서를 정할 수 있게 해주고, 제목을 다듬게 해주고, 흔들의자 같던 불안을 끊임없이 다독여 준, 그러니 결국 출간 끝마무리를 짓게 해주신 작가님입니다.
절망해서 우는 게 아니라 눈물 안에서 행복해지려 애쓰는 매순간의 일상을 보내면서도, 이웃의 일상 속에서는 그들의 눈물을 들여다보고 닦아주지 못해 애태우는 라이테 작가님의 긴 얘기를 오늘 다 담을 재주가 무당천국 사장에게는 없어서 투 비 컨티뉴하기로 하고. 아무튼 트렌치코트계의 마스터피스 'Burberry Heritage'를 연상시키는 카키색 트렌치코트를 휘날리며 기어이 「가을의 전설2」를 완성하면서, 그 5권 중 첫 번째 책을 받아주신 작가님입니다.
포도송이 작가님께 사인을 해드리려던 찰나. 잠깐 멈칫 했습니다. 성함을 듣는 순간 말입니다. 뭐지, 틀린 적이 없던 이 슬픈 예감은? 그 정체를 아는 데 채 하루가 걸리지 않았습니다. 포도 작가님이 경기도의 히든 카드 '경기히든작가'라는 걸 알게 된 것이었습니다. 한 해에 에세이 분야에서 기껏해야 3명 선정되는 경기히든작가... 근데 그게 왜 슬프냐고요?
올해 6월 2025 경기히든작가가 선정됐었지요. 저도 지원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보란 듯이 떨어졌습니다. 그때 선정자 명단에서 본 포도 작가님 이름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엉?그걸 어찌 기억하냐고요?흠... 눈을 비벼대며 명단을 읽었고 믿을 수 없는 현실을 새벽 닭이 울기 전 5번쯤 부정했거든요. 그러고는... 포스트잇에 그 이름들을 붙여놓고 아침마다 대못과 똥침을 박아대며 저주를 퍼부었던 것이었던 것이었습니다ㅠㅠㅠㅠ

포도 작가님에게는 큰 딸 별이가 있지요. 아이스카페모카를 좋아하는, '마음이 너무 예뻐서 평생 품을 수밖에 없는', 생후 3개월만에 뇌수막염에 걸려 지적장애를 앓게 된 딸입니다. 23년 동안 별이를 키우며 삭이고 삭였던 감정들을 연재하며 많은 분의 마음을 먹먹하게 만드셨지요.
하지만 오호 통재라, 삭이고 삭여도 좀체 삭여지지 못한 게 있었으니 바로 한 미모 하는 우아함과 딱 적당한 위트를 싣고 짧게 팍팍 치고 나가는 감각적 문장이지요. 광고 카피라이터 및 홍보팀 경력에 걸맞게 '사멸되지 않은 언어의 감각을 살려내는' 문장이 일품인 작가님입니다.
게다가 며칠 내로 출간을 앞두고 있습니다. 지금은 도서관에 근무하시는 포도 작가님의 생생한 일상이 담긴 작품일 듯합니다. 대못을 박아댔던 바로 그 원고 말입니다ㅋㅋㅋㅋㅋ 게다가! 아무래도 제가 그 서평을 써야 할 상황이라능!!! 우째 이런 기가 맥히는 일이ㅠㅠㅠㅠㅠ
무려 <문학동네> 임프린트 교유서가에서 출간된다 합니다. 문동 임프린트 중 책 우아하게 만들기로 소문 자자한 곳이지요. 묵묵히 버티고 삭여온 시간들의 지문이 우러날 게 틀림없는 포도 작가님의 책을 가을이 가장 깊을 무렵에 만나겠군요. 미리 축하드리고, 기대 만땅(& 저주 한 스푼)입니다요~~~
붕어만세 작가님 부부의 재치 만담 케미는 국보를 넘어 우주보급이었습니다. 붕작가님이 연재하는 핫한 사자성어 만담시리즈만큼이나 재미가 넘쳤지요. 사는 얘기와 살아온 얘기와 살아갈 얘기가 씨줄날줄로 널을 뛰었는데 다른 작가님과 저는 고개만 끄덕끄덕, 감탄사와 박장대소만 바빴습니다^^
어머니께서 10년 넘게 간암으로 투병하시다 지난해 겨울에 소천하셨더군요. 저야 4~5년 정도 간간히 선친 간병을 해봤을 뿐이지만, 10년 정도면 아마 몸 이곳저곳 안 아픈 데가 없었지 싶습니다. 그래서일지는 몰라도 최근 운동을 열심히 하신 거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와이셔츠 단추를 뜯고 나오려는 분노한 항우의 갑빠를 장착하고, 관우의 DNA를 받은 듯 떡 벌어진 어깨와 장비가 빙의한 듯한 팔뚝까지 더해졌는데, 그렇게 합체된 용모가 정작 헐크 호건이었던 건 안 비밀...
붕작가님께도 자녀가 있지요. 아빠 껌딱지처럼 자라다가 이제는 다 커 버려 아빠와 안 놀아주는, 그러니까 지극히 정상으로 자라고 있는 사춘기 딸이랍니다. 그래도 붕작가님 마음은 또 그런가요. 허해지고 휑~해지지요. 휴일에 회사에 혼자 나가 있고, 괜스레 종일 영화를 붙잡고 반강제 영화평을 쓰기도 하는, 그래서 이렇게 사람을 만나면 그렇게나 마음을 다 열고 우주보 대화를 나누는, 따뜻한 이웃집 아저씨였습니다.
사실 붕작가님을 만나러 가는 발걸음에는 힘이 좀 드가 있었습니다. 소개시켜 드릴 출판사가 있었거든요. 붕작가님 사자성어 시리즈와 삽화가 너무 재밌고 유익해서 제가 아는 출판사 대표가 관심을 내비쳤던 것입니다. 크크크... 으스대면서 소개해 줘야지 하고 음흉한 미소로 갔었더랬지요.
이런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포작가님께 받은 좌절의 상처가 미처 아물기도 전 쿨럭! 또 한번 내상을 입었습니다. 붕작가님 사자성어 연재북이 뜨거운 관심을 한몸에 받으며 이미 모 출판사와 계약에 성공했던 것이었습니다!! 흠... 그렇습니다. 되는 게 진심 하나도 없는 날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습니다ㅠㅠㅠ
공대와 미대 테크를 타셨으면서도 개그 감성 물씬한 영화 리뷰를 쓰시다가, 뭔가 인문학적 기운마저 풍기는(이라고 우겨도 설핏 보면 그냥들 넘어가 주실) 사자성어 시리즈까지 무불통달한 팔방미인 붕작가님.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천방지축하는 위트와 시니컬한 개그가 만발할 멋진 책 역시 기대 만땅입니다. 축하드립니다~~
그렇게 이러구러, 막 들이대는 추위에 수은주는 내려가도 체온은 올라간, 제 첫 독자님들과의 만남인 조촐한 첫 북토크는 막을 내렸슴다. 감사합니다 작가님들. 또 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