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말들의 ‘미지와의 조우’

AI 시대, 부모와 자녀 간 서로 다른 외계어

by 무당벌레

부모님이나 선생님보다 AI를 더 좋아하는 아이들이 많아진 모양이다. AI는 ‘절대로 화 내지 않는’ 대화 상대다. 일상 언어와 감정을 주고받을 수 있는 존재 가운데 유사 이래 최초다.


온종일 다정하게 들어주고 자상하게 토닥여주곤 한다. 풍부한 사례와 비유를 쓰며 알아들을 때까지 알려준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뭘 털어놔도 안전하며, 뭘 시켜도 최선을 다해 준다. 자기 힘든 이야기는 한 마디도 없다. AI의 기분을 고려할 이유도, 약속을 조율할 필요도, 나가려고 몸단장을 할 필요도, 잔소리 들을 필요도 없다.


늘 ‘AI 선생님’과의 상호작용을 체득했던 아이들이, 같은 질문을 두세 번만 반복해도 인상을 쓰는 ‘인간 선생님’을 어떻게 바라볼까? ‘선생님’이란 말의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늘 공감하고 응원만 해주는 파트너와 함께 자라 성인이 되면 학교, 직장, 사회에서 ‘동료’란 단어를 어떻게 떠올릴까?


간장이 필요해서 메주를 쒔다 하면 누구나 "아니 왜? 굳이?"라고 반문한다. 고민이 있는 아이가 “어제 엄마(선생님, 친구)랑 두 시간 동안 대화 했어” 라고 말한다면 마찬가지 말을 듣게 될 듯하다. “아니 왜? 번거롭게?!” - ‘대화’란 언제든 원하는 꼴로 뽑을 수 있는 자판기 상품이 될 지도.


AI 시대까지 갈 것도 없다. 같은 단어가 완전히 다른 뜻으로 쓰이는 일은 이미 벌어지고 있다. 부모자녀 간 ‘연락’이라는 말의 용례부터 다르다. 자녀가 전화를 안 받으면 부모에게는 ‘연락이 안 되는’ 상황이다. 근데 스마트폰 세대의 벨소리는 무음이 디폴트인 시절이다. SNS 네이티브인 자녀들에게 음성통화는 SNS 알림과 급이 같다. 편할 때 확인하고 내키면 콜백할 뿐이다. 자녀에게는 그게 ‘연락이 잘 되는’ 상황이다. 부모의 답답함은 도대체 이해되지 못하며 '연락'은 그렇게 미지의 단어가 된다.




말을 배우면서, 관계 방식을 익히고 세상을 그리며 결국 정체성을 세운다. 가령 차별과 배제의 언어를 자주 듣거나 사용하면 언어에 밴 편향적 세계관도 체득한다. 이른바 언어사회화다.


언어 생활은 사회화 과정과 묶인다. 사회적 상호작용 속에서 만들어진 언어 규칙을 내면화하면서 사회화가 다시 강화된다. 자녀 세대는 지금껏 없던 상호작용 방식을 급격히 체화하고 있다. 같은 말을 완전히 다르게 쓸 부모 vs 자녀, 선생님 vs 학생, AI 네이티브 vs '전화 세대'가 화성인과 금성인으로 충돌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자기 가족이 특별히 이상한 게 아니다.


가족간 대화에 종종 등장하는 단어와 가치들, 일테면 ‘대화’, ‘동료’, ‘연락’은 물론이고 ‘교육’, ‘배려’, ‘믿음’, ‘책임’, ‘이해’, ‘경험', ‘노력과 성취’, '인적 자원', ‘관계’, ‘타인’ 같은 단어도 세대 간 상호(일방?) 외계어가 될 듯하다.


새로운 사전과 단어장이 필요해지는 시대다. AI와의 관계맺기 방식을 체화하면 인간에게 바라는 정보의 양과 질, 정서적 기대 반응이나 인내심 정도도 지금까지와는 급격히 달라질 듯하다. 『서툰 아빠의 마음공부』에서는 부모자녀 간 만남을 '서로 다르고 모자라지만 가장 소중한 타인 간 만남'이라는 근원적 트랙 위에 놔보는 데 집중했다. 그 와중에 기술과 환경의 급변이라는 또 하나의 트랙이 양육의 패러다임을 어떻게 변화시킬까에 대해 종종 붙들리곤 했다. 부모가 정답은커녕 제 코앞도 못 보는 시대. 자녀를 어떻게 키울까보다 '자녀와 어떻게 만날까'를 고민하자고 말한 또 하나의 이유이기도 하다.


언어가 다른 세대 간의 새로운 길 찾기. 가족의 일상적 단어 뜻은 어떻게 달라질 지, 새로운 기술은 기존 가치와 상호작용 방식에 어떤 자각을 요구할 지…. 다음 책 주제는 그게 돼얄지...


이미지 _ 영화 <컨택트> (드니 빌뇌브, 2016)


<서툰 아빠의 마음공부>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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