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하지 말아야할 어느날..
토요일, 수업을 전담하는 부원장이 휴가를 낸 탓에 종일 혼자서 수업을 했다. 밥도 굶은채 연짝으로 4시간을 설치고 나니 학원 불을 끄면서 벌써 집에 빨리 가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 같았다. 나이 탓인가 오랜만의 활동 탓인가 요새는 쉬이 피곤해졌다. 어떤 날은 물에 젖은 솜이 되는 신기한 경험을 하기도 한다. 어제 세마리 값을 치르고 사온 물고기가 집에 오니 두마리밖에 들어있지 않아서 오늘 퇴근길에 한마리를 찾아 와야겠다 맘 먹고 있었다. 거의 도착했는데 갑자기 복잡한 시장 옆에 차를 대고 어쩌고 하는게 너무 고단하게 느껴져서 차를 돌렸다. 그래, 밥 한 술 뜨고 슬슬 걸어서 찾아 오지 뭐..
떡 예닐곱개를 넣어 떡볶이를 만들고 뚝배기에 컵라면 하나를 끓여 대강 허기를 떼웠다. 그게 무슨 중요한 할 일이라고 기어코는 숙제가 되어 버린 탓에 버린다고 현관에 내어 놓은 쓰레기 봉지를 들고 나는 물고기를 찾겠다고 집을 나섰다. 1층에서 쓰레기를 버리고 그 옆에 우편함이 보여서 무심코 열어 본다. 작은 잡지가 있기에 꺼내 보니 이아진 선생님 귀하라는 글씨와 월간 에세이라는 표지가 눈에 날아와 박혔다.
몇달 전 어떤 잡지의 편집장으로부터 원고를 청탁하는 이메일을 받았다. 이건 또 무슨 신종 사기인가 싶으면서도 설마? 하는 마음에 답 메일을 보냈더랬다. 외국으로 돌며 의심만 많아진 나 답게 나를 어찌 알았으며 랜덤 발송인지 진짜 나를 콕 찝어 청탁을 한 것인지 그렇다면 왜 나 인지, 내 글은 평가 후 실리는 것인지 무조건 실리는지 등등을 주제도 모른채 넘버까지 매겨가며 질문을 했다. 심지어 원고료도 지급하겠다고 한다. 편집장이라고 하시는 그 분은 브런치 스토리에 올려 놓은, 읽은 사람도 몇명 안되고 채 몇 자 되지도 않는 내 짧은 글 서너편을 보고 내 글이 그 잡지와 결이 맞을 것 같아서 컨택했다는 친절한 답 메일을 보내 왔다. 평소 크게 소리 내 웃는 일도 없고 크게 화를 내는 일도 없이 감정 기복이 별로 없는 나인데도 옆방의 딸랭이에게 뛰어가 그 일을 말할 때는 목소리 톤이 조금 높아져 있었다. 마음이 설렜다. 중학교때 상투적인 스토리의 소설을 한 편 써 본 경험이 있는, 애기때부터 책을 좋아하던 나는 오랜시간 작가가 꿈이었다는 사실이 그 때 떠올랐다. 삶의 순간 순간 몸이 휘청 할 정도로 커브를 크게 트는 바람에 살짝은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다보니 나는 어릴 때 그 꿈을 아마 잊고 살고 있었던 것이다. 주변 지인들과 대화를 하다가 우연히 이 이야기를 꺼내 놓고 보니 거의 나만 모르는? 그 잡지는 월간 에**라고 꽤 유명한 잡지라고 한다. 나는 진짜 그 잡지의 편집장에게 원고 청탁을 받은 것이다!!!
당시 너무 바빠 기한 안에 글을 쓰지 못할거라는 결론을 낸 내가 마감 한 주 정도를 남겨 놓고 원고를 보내지 못할 것 같다는 이메일을 보낼 때는 내장 어느 부분이 진짜로 쓰리다고 느껴질만큼 속이 상했다. 나에겐 다시 없을지 모를 이 기회를 날리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실력도 없는 내가 실어 주겠다 한다고 아무렇게나 써서 보낼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편집장님은 나의 안타까움을 읽었는지 마감일을 두달이나 연장해 주었지만 나는 어찌 어찌 두번째 기한에 맞추어 글을 썼으되 그 짧은 글도 완성도 있게 쓰지는 못했다고 생각한다. 학원 때문에 정신없이 바빴고 마음이 유난히 강퍅해 정서가 메말랐으며 마음도 시간도 여유가 없었다는 핑계를 구차하게 얹었다. 세상이 좋아 이런 기회를 얻었으나 나는 SNS상에 올릴 짧은 글을 재미지게 쓸 수 있는 그냥 그 정도의 재간이 있는 사람인가보다는 자존심 상하는 결론은 덤으로 얻어 들었다.
그렇게 마음에는 차지 않는 부끄러운 글이나마 목차에 내 이름과 내 글의 제목이 버젓이 활자로 실린 잡지를 받아 들고는 설레는 마음에 오늘의 피로를 깜빡 잊어 먹었다. 그 책을 옆구리에 끼고 시장에 가서 옐로우 구피 한마리를 찾아서 돌아온다. 오는 길에는 조그만 봉지 하나에 담긴 군밤을 만원이나 주고 샀는데 실은 너무 비싸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래 나는 군밤을 좋아하니까 하는 통 큰 위안을 해 본다. 원고료 받고 글 청탁 받아서 꽤 유명하다는 잡지에 내 글이 실린 인생 최고의 경험을 했으니 오늘은 다른 불평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월간 에** 김신* 편집장님께 마음 깊이 감사 인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