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역지사지

짧은 이야기 5

by 이아진

바야흐로 민족의 대 명절 추석이었다. 날짜도 보지 않고 티켓을 끊었더니 공교롭게도 추석 연휴 전 날에 인천공항에 내리게 되었다. 몇달 전, 이제는 아이들이 다 컸다는 이유로 뜬금없이 일산에 학원 하나를 인수하고는 학원에서 본가인 청담동인 오가기 멀다는 이유를 또 보태 골고루 하느라 오피스텔까지 하나 얻어 두고 두달에 한 번씩 토론토에서 서울을 오가는 생활을 시작했다. 의욕은 한껏 충만했으나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내 나이는 50도 중반을 넘어 가고 있었고 비행 시간은 평균 14시간이었으니 말이다.


어쨋거나 한국에서 추석과 마주쳐진고로 엄마를 위해 추석 음식이나 좀 해 보자고 마음 먹었다. 존재 자체로 효도가 되는 우리 엄마의 아들이 좋아하는 동그랑땡을 비롯하여 몇가지의 전과 나물, 그리고 잡채, 궁중 떡볶이, 소고기 무국 등으로 메뉴를 정했다. 한국의 시장이 익숙지도 않거니와 식구라곤 별로 없어 양을 많이 할 필요도 없고 게다가 이미 연휴가 시작되었으니 얼마나 복잡하겠는가 싶어 인터넷으로 주문을 하기로 했다. 한국에 올 때마다 느끼는 건데 쿠팡이 참 기특하다. 오늘 주문하면 내일 새벽에는 문앞에 내 원하는 물건이 떡허니 도착해 있으니 말이다. 이것저것 주문을 하고 내일 엄마 집으로 도착이 되게끔 배송지를 설정하고 결제를 하려는데 그 사이 부추와 깻잎이 품절되었다고 뜬다. 함께 나와 잠시 내 오피스텔에 머무는 아들랭이는 새로 산 컴퓨터를 세팅한다고 책상 겸 밥상 겸 사용하는 식탁에 나와 마주앉아 있어서 어, 엄마가 심혈을 기울여 실컷 골라 놓았는데 몇개가 금방 품절됐어 라고 그 아이에게인듯 혼자말인듯 이야기했다. 흘끗 나를 한번 쳐다보고 아들은 제 일을 계속했다. 가장 소량으로 포장되어 있는 로켓 프레쉬 상품들이 실시간 품절이 되고 있었다. 주문을 하는 사이 골라놓은 고기나 다른 야채들이 품절되는 사태를 두어번 겪은 후에야 깻잎을 제외한 모든 물건을 주문 완료할 수 있었다. 드디어 품절된 몇몇 아이들을 겨우 주문했다고 말했더니 엄마가 주문하는 그 순간 누군가는 품절이 떠서 물건을 사지 못했을 거예요 라고 아들애가 대답한다. 잠시 마주보다 우리는 웃음을 터뜨렸다.


집안에 앉아 손가락만 까닥여 명절 음식 재료를 주문하고 문까지 몇 발짝만 나가 픽업하면 되는, 내가 살아온 세월만 두고 보아도 무섭도록 계속 편리해지는 세상을 살면서 맞은 어느 추석 연휴의 첫날, 역지사지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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