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왜" 이 선물을 주었나?
최근 선물을 받았다. 다양하고 새로운 감정을 느낀 것만 같다. 이를 기술해 보는 것은 괜찮은 경험이 테다. 적어보자.
우선 선물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나는 선물 받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선물은 상호작용이겠지. 주는 이가 있다면, 받는 이도 필요하다. 주는 이는 기쁜 마음으로, 상대방의 만족을 바라면서 열심히 준비할 것이다. 받는 이는 주는 이의 마음에 감동을 하며, 그에 상응하는 반응으로 보답한다. 이것이 아름다운, 이상적인 상호작용이리라.
상호작용,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과연 받는 이가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때, 그땐 어떻게 반응해야 하나? 예의상 좋은 반응만을 남겨야 할 것이다. 상도덕일 테고, 예의일 테다. 주는 이의 감정선을 배려해야 하며, 그것은 받는 이의 역할일 테다.
벌써부터 머리가 아프다. 마음에 들지 않아도 좋은 척을 하는 것, 누군가에겐 쉬운 일일 테다. 적어도 나에겐 너무나 어렵다. 거짓된 감정을 연기하며, 이것을 상대방에게 들켜선 안 된다. 솔직한 반응은 무례하다 평가받을 것이다. 적어도 주는 이에게 나쁜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선, 나는 노력해야만 한다. 여기까지만 적어도 내가 선물을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이유가 보일 것이다.
이 관계가 극단적으로 치고 나간다면, 항의 역전이 일어난다. 즉, 주는 이는 멋대로 선물을 준다. 받는 이는 억지로 그것을 취해야만 하며, 좋은 척 연극을 해야만 한다. 보통 이러한 상호 작용은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일어날 것이다. 최근 나는 이와 같은 문제로 엄마와 갈등을 빚었다.
어느 어머니가 그러겠지만, 우리 엄마 역시 자식을 챙긴다. 내 딴에는 과하게만 느껴진다. 내가 거절을 해도, 끝까지 챙긴다. 음식을 하던, 밥을 사 오던, 방 청소를 하던. 엄마 딴에는 나를 위한 것일 테지. 내 입장에선 전혀 나를 위한 것이 아닌데 말이다. 주는 이는 받는 이를 위한 선의를 베푼다. 받는 이는 이를 전혀 원치 않는다. 그럼에도 좋은 척 연극을 해야 한다. 부조리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생일 때, 엄마가 올라와서 챙겨주겠다 말했다. 나는 거절했다. 생일에 괜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가 않았다. 혼자 편하게 보내고도 싶었다. 엄마는 그래도 챙겨주겠다며, 내 거절을 무시한다. 엄마가 챙겨주고 싶다면서 굳이 오겠다 말한다. 너무나 부조리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이를 솔직하게 풀었다. 나를 위한 행동들이 전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전혀 고마운 마음조차 들지 않는다고 솔직하게 풀었다. 이 말을 들은 엄마는 눈물을 흘리셨다. 엄청난 죄책감에 나는 괴로웠다. 이 괴로운 마음이 드는 것조차 부조리하게만 느껴진다. 대체 선물이란 무엇인가? 받는 이를 고려하지 않은 선행은, 대체 누구를 위한 것일까?
나아가, 나는 통상적인 예의 역시 싫어한다. 때문에 카톡에 뜨는 생일을 지웠다. 생일이 됐을 때, 그 표시를 보고 생일을 축하하는, 나는 그런 문화가 기이하게만 느껴진다. 통상적인 관계, 진실되지 않아 보인다. 정말 그 사람을 축하하고 싶다면, 적어도 생일은 기억해 둬야 하지 않을까? 때가 됐을 때 뜨는 표시를 보며 축하하는, 적당한 생일 축하 문장과 적당한 기프티콘만을 교환을 하는, 그런 문화를 어떻게 내가 긍정할 수 있을까? 때문에 나는 누군가의 생일을 챙기지도, 나의 생일을 챙겨주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가장 속 편한 방법이다.
이번에 받은 선물은 생일 선물이다. 내가 위에 정리한 선물에 대한 나의 감상을 보면, 이 선물 역시 하나의 시련으로 다가왔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나는 서두에서도 언급했듯, 다양하고 새로운 감정을 받았다. 선물이 이런 감동을 줄 수 있음을 느낀 순간이다.
우선 나는 내 생일을 언급한 적이 없다. 카톡에서도 지웠으니, 내 생일을 알아챌 방법은 전무할 것이다. 상대방은 어찌어찌 내 생일을 알게 됐다. 선물을 준비했고, 생일을 챙겨주고 싶다고 먼저 말을 꺼냈다. 여기서 1차로 놀라움을 느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생일 선물로 땅에 떨어진 돌을 줘도, 정말 기쁘게 받을 수 있다”라 답했다. 진심이었다. 선물을 받지 않아도, 그 마음만으로도 넘칠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여기서 멈췄으면 하는 마음도 생겼다. 나를 위한 선물, 그러나 이 사람은 나의 취향을 얼마나 알까? 하는 불안함. 마음에 들지 않은 선물을 받았을 때, 나는 훌륭한 리액션을 할 자신이 도저히 없다. 상대방의 마음엔 충분한 고마움이 있다. 다만, 선물은 별개다. 나는 선물을 받고 만족스러운 반응을 보여야만 한다. 두려움이 생긴다. 내가 과연 그럴 수가 있을까.
직접 만나 선물을 받았다. 겁이 났다. 그 자리에서 포장을 뜯고, 선물을 확인한다. 만약 이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나는 어떤 리액션을 해야 할까? 고마운 마음이 충분히 있지만, 선물을 확인했을 때의 반응은 다른 영역이다. 결국 그 자리에서 확인하기를 포기했다. 집에 가서 뜯겠다고 했다. 나는 도망친 것이다. 거짓된 표현은 비대면으로 남기는 것이 더욱 유리하리라.
상대방이 선물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줬다. 포장지는 하늘색 바탕에 희고 반짝이는 점들이 가득했다. 나는 눈을 좋아한다. 상대방은 그것을 기억했다. 눈이 내리는 것을 형상화한 것 같은, 그러한 포장지를 일부러 고른 것이다. 심지어 포장하다 한 번 실패를 해, 두 번의 시도 끝에 완성한 포장이라 했다.
이 말을 들었을 때, 심장이 튀겨지는 느낌이 들었다. 피가 격하게 흐르는 느낌이었을까? 이런 사소한 것까지 기억해 주고, 선물을 포장하는 것에서부터 나에 관한 요소를 심어놨다는, 직접 손수 포장까지 한, 이러한 얘기를 들었을 때 느껴지는 희열이란!
선물은 다음 날 뜯어봤다. 텀블러였다. 무난하고 괜찮은, 그 정도의 선물이라 생각했다. 상대방과 통화를 하고 있었고, 예상한 대로 나는 좋지 못한 리액션을 남겼던 것 같다. 분명 고마운 마음이 있었다. 굉장히 크게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선물의 내용물과는 별개다. 때문에 선물을 확인했을 때, 좋지 못한 리액션을 남겼던 것 같다.
왜 텀블러였나, 이를 설명해 줬다. 나는 평소에 물을 정말 많이 마신다. 곧 나는 학원에 다닐 것이다. 물을 많이 마시는 터라, 학원에서 정수기에 많이 왔다 갔다 할 것을 예상했다는 것이다. 텀블러가 있으면 물을 담아두고 마실 수가 있을 테니. 나아가, 나는 빨대를 잘 쓰지 않는다. 카페에 가서도 나는 빨대를 받지 않는다. 텀블러에도 빨대가 없었다. 상대방은 내가 빨대를 쓰지 않는 것을 기억하고, 일부러 빨대가 없는 모델을 택한 것이었다.
내가 상황 설명을 잘했다면, 읽는 이가 이 글에 제대로 몰입을 했다면, 내가 느낀 감정의 진동을 어느 정도 공명할 수 있으리라. 이 텀블러는 더 이상 평범한 텀블러가 아니다. 무수히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주는 이는 받는 이의 사소한 것까지 전부 고려했다. 내용물부터 포장지까지, 전부 나를 위한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자. 내 생애 이만큼 나를 신경 써준 선물이 있었나? 단연코 없다. 가족끼리도 돈만 주고받는다. 그것이 가장 편하고 좋을 선물일 테니. 과연 돈이 가장 좋은 선물일까? 과연 돈엔 이러한 의미를 담을 수가 있을까? 과연 돈이 이러한 감동을 줄 수 있을까?
선물은 상대방 마음에 들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있다. 때문에 차라리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직접 확인하고 그것을 주는 것이 이상적이지 않을까 싶었다. 이번 선물은 오로지 주는 이의 판단으로 결정된 것이다. 주는 이는 받는 이의 사소한 부분까지 기억을 했고, 그것을 고려하여 텀블러를 택했다. 이런 생각의 과정, 왜 이 선물을 골랐는지를 들으며, 이 또한 선물의 한 요소처럼 느껴졌다. 텀블러 자체도 마음에 들었다. 다만, 나는 상대방의 마음에, 나를 신경 써주는 그 세심한 배려에, 그것이 나에겐 가장 큰 선물이었다.
텀블러를 택한 이유에, “무난하니까”라는 식의 답변이 왔으면 이 정도의 감동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받은 텀블러엔 무수히 많은 의미가 들어있다. 전자든 후자든, 결과적으로 텀블러를 받는 것은 마찬가지일 테다. 그러나 그 텀블러가 품고 있는 의미는 전혀 다르다. 나는 이 텀블러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거기에 담겨있는, 주는 이의 마음이 중요하다. 주는 이가 어떤 생각을 품고, 이 텀블러를 고르고, 이 포장지로 감싸고 했는지, 이 모든 행위들이 나에게 가장 중요하다.
선물이란 무엇인가? “나는 너에 대해 이만큼 알고, 너를 고려하고 배려하는, 그런 물건을 준비했어”라는 표현이 아닐까. 선물이 “무엇인지”는 최우선이 아니다. “누가” 이 선물을 주었는지, “왜” 이 선물을 주었는지, 이 두 가지가 나를 울렸다. 너무나 행복한 경험을 한 것만 같다. “선물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엔, 앞으로 “텀블러”라는 좋은 답안이 떠오를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