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무요원(공익)의 마지막 날
오늘의 출근길은 유난히 안개가 자욱했다. 적어도 오늘만큼은 밝은 날이길 바랐다. 특별한 날이지 않은가! 인간적인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면, 적어도 특별한 날엔 그것에 상응하는 날씨를 기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리라. 그럼에도 야릇한 감정이 들었다. 안개 역시 하나의 특별한 상황일 테니. 어쩌면 오늘 같은 날과 어울리는 상황일지도 모른다. 행복한 날이지 않은가! 무엇을 긍정하지 못할까?
어제까지만 해도 특별한 감정을 느끼진 못했다. “이제 정말 끝이구나”하는, 건조한 감탄사만이 남았다. 애초에 특별한 감정이 들 자격이 있을까? 그동안 참으로 편한 환경에서 보내지 않았는가? 오히려 슬퍼해야만 하지 않을까? 현실로 돌아올 시간이 되어버렸다. 행복한 꿈에서 깬 느낌이다.
이번 주 내내, 점심은 선생님들께서 사주셨다. 한 분씩 돌아가면서. 그동안 썩 괜찮은 생활을 했나 보다. 얻어먹은 점심이 그것을 증명해 주겠지. 뿌듯했다. 적어도 그들에게 민폐를 끼치진 않았나 보다.
오늘 점심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안내실 선생님께서 사주셨다. 여럿 대화를 나누면서 시간을 보냈다. 선생님은 한때 작가를 꿈꾸셨더랬다. IMF시절, 모든 직업이 무너지고 공무원만이 살아남았던 시절, 어쩔 수 없이 꿈을 포기하고 공무원이 됐다는 사연을 들었다. 20년 넘게 한 일이지만, 아직도 일이 끔찍이 재미가 없다는 말을 하셨다. 작가가 되지 못한 지난날이 너무 아쉽더랬다. 그때 지은 표정이, 그 비애 어린 표정이 아직도 선하다. 나는 꿈꾸는 자들을 좋아한다. 그만큼 꿈이 무너진 자들의 표정은 보기가 힘들다. 그들의 절망이 나에게도 느껴지는 것만 같다.
밥을 얻어먹었으니, 커피는 내가 사고 싶었다. 이것은 의무감이 아니었다. 순수한 감사함에서 기인한 것이다. 내가 커피를 사겠다는 말에 극구 반대하시면서, 나중에 회사 들어갔을 때 후배에게나 사주라면서, 커피까지 선생님이 계산했다. 괜히 커피 얘기를 꺼내서 커피까지 얻어먹은 셈이 됐다. 이런, 의도치 않게 또 하나의 은혜를 입어버렸다. 내가 사드리지 못한 것에 아쉬움을 느꼈다. 참으로 기이한 상황이다.
마지막으로 도서관 전체를 돌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 그때서야 실감이 됐다. 입꼬리가 내려오질 않았다. 의도적으로 올린 것이 아니다. 내 신체의 자연스러운 반응일 것이리라. 오늘 나에겐 행복할 자격이 있을까? 그동안 편하게 생활하지 않았나? 자격이고 자시고, 행복한 것은 사실이다. 이것을 부정하는 것은 미련한 짓이리라.
그동안 많은 것을 받았다. 진심으로 그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있다. 통상적인 감사 인사가 아니었다. 나는 그들에게 진심을 담은 감사의 말을 전했다.
마침내 도서관을 나왔다. 조퇴를 썼기 때문에, 또 선생님들의 배려 덕분에, 기존 시간보다 더욱 이른 시간에 퇴근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밝은 날에 퇴근길을 밟았다. 마지막 퇴근길이기도 하다. 신나는 음악을 틀고 그 순간을 즐기기만 했다. 이 얼마나 행복한 날인가!
21개월을 보냈다. 누군가에겐 긴 시간일 테다. 적어도 나에겐, 순식간에 지나간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그동안 나에게도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생각한다. 외적으로나 사상적으로나.
근무 기간 동안 137권의 책을 읽었냈다. 달에 평균 6권 이상 읽은 것이다. 이것이 가장 큰 성과이지 않을까 싶다. 많은 책을 읽으며 수많은 생각의 변화가 있었다. 아직도 여전히 미숙하겠지만, 나름 성장하지 않았나 싶다. 그동안 아무 걱정 없이 책을 읽었다. 앞으로 이런 시간을 만들긴 힘들겠지. 덕분에 더욱 값진 시간이 될 것이리라.
돈도 꽤나 모았다. 이것도 하나의 목표였다. 더 이상 부모님에게 지원을 받고 싶지 않았다. 효자 노릇을 하고 싶었던 것은 딱히 아니다. 단지 누군가에 기대어 사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부모님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었고, 이젠 어느 정도 독립이 가능하다. 앞으로 다닐 학원이랑 생활비, 전부 내 돈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됐다. 이 역시 꽤나 뿌듯하더라.
운이 좋게 사회복무요원으로 군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들어가기 전부터, 이 시간을 잘 활용해야만 한다 생각했다. 이것은 기회이지 않은가. 누구는 군대에서 시간이 묶일 것이다. 나만이 이 시간 속에서 달릴 수 있다. 이 기회를 버리는 것은 참으로 멍청한 짓이리라.
복기해 보니 만족할만한 성과를 내지 않았나 싶다. 운이 좋게도 편한 근무지에 배정받았고, 그 속에서 만족할만한 성과를 냈다. 먼 훗날, 이 시기를 되돌아보며 삶을 도약한 때로 평가할 수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