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정의함에 대한 고찰

by 김승규

최근 있었던 모임에서 ‘호들갑’이라는 키워드가 나왔다. [케이팜 데몬 헌터스]라는 영화가 큰 흥행을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난 유행하는 기류에 동승하는 것을 피한다. 그들이 떠는 호들갑이 싫기 때문이다. 그들과 같은 취급을 받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 말을 하자 ‘호들갑’이라는 키워드에 대한 나만의 정의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어떤 요소에서 호들갑을 느끼고, 왜 그것이 싫냐는 식의 질문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답을 하지 못했다. 나아가, 왜 답을 할 수 없는지 명확하게 설명 마저 못했다. 내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의 말은, ‘호들갑은 그냥 호들갑일 뿐이고, 나는 그게 싫을 뿐이다’였다.

어제 누둔가와의 대화에서 이 부분이 나름대로 정리가 되었고, 오늘 산책하면서도 계속해서 생각해왔다. 이제서야 언어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글로 적어보려 한다.

우선 내가 생각하는 감정과 이성을 나눠보자.

감정 - 비합리성, 의지 밖에 있는, 흐릿한 인과관계

이성 - 합리성, 의지적인, 뚜렷한 인과관계

감정 조절을 잘 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나는 내 감정을 도저히 모르겠다. 파악이 안 된다. 감정에 휘둘리는 게 싫어서 감정을 정의해보려 나름대로 생각해왔다. 할 수록 오류만 생겼다. 끝내 내린 결론은, 감정은 나의 의지 밖에 있으며, 비합리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인과관계를 가졌다는 것이다. 이것을 이성으로 재단하려 하니, 오류가 생길 수 밖에 없었다고 생각이 든다.

내가 호들갑을 정의할 수 없었던 이유를 살펴보자. 분명 호들갑으로 느껴지는 요소가 있다. 예를 들면, 나는 텍스트에 이모티콘을 많이 담는 것이 호들갑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 요소가 항상 호들갑을 뜻하지는 않는다. 상황에 따라서, 사람에 따라서, 이것이 호들갑이 될 수도, 아닐 수도 있다.

A가 이모티콘을 하나만 써도 호들갑처럼 느껴져서 싫어질 때가 있다. 반대로, B가 이모티콘을 수십 개를 써도 호들갑으로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다. 이 간극엔, 그 사람에 대한 나의 평가가 들어가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만 생각해봐도, 내가 호들갑을 정의할 수 없던 이유가 보일 것이다. 변수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이모티콘을 쓰는 것이 호들갑처럼 느껴집니다.’라고 정의를 하는 순간, 듣는 이는 나를 ‘이모티콘 사용을 싫어하는 사람’으로 규정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항상 참을 향하지는 않는다. 누가 쓰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변수가 있다. 나아가, 어떤 상황인지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 변수는 전적으로 감정이 만드는 것이며, 나는 이 감정이 대체 무엇인지 모르겠다. 예상 조차 안 간다. 때문에 나의 오류 가득한 대답으로 나를 규정하려는 타인이 무서워서 답을 피했다고 볼 수 있다.

사랑으로 예를 들어보자. 최근 모임에서 사랑이 무엇이라 생각하냐는 질문이 들어왔고, 나는 정의하는 순간 오류가 생길 수밖에 없다 답을 했다. 똑같은 사고 회로가 돌아간다.

예쁘고 몸매 좋은 여성이 좋다. 그러나 나는 못생기고 몸매가 안 좋은 여성에게도 사랑을 느낀 적이 있다(물론 욕망이라는 단어가 더 잘 어울리겠지만). 똑똑하고 말이 잘 통하는 여성이 좋다. 그러나 멍청하고 말이 안 통하는 여성에게마저 사랑(욕망)을 느껴본 적이 있다.

서로 간 안정감을 주는 관계가 사랑입니다. 라고 정의를 하더라도, 그 조건을 초월한 관계 속에서 역시 사랑을 느낄 여지는 있다. 감정은 비합리적이기 때문이다. 변수가 너무 많은 요소인데, 이것을 정의하라는 요구는 너무나 부조리하다.

감정은 느껴야만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것을 무엇으로 정의내리는 행위는 가치가 없다고 본다. 오류 뿐인 답일 것이며, 이것을 정의내릴 수 있는 자들은 두 가지로 귀결될 것이다. 내 예상을 상회하는, 너무나 훌륭한 언어 능력과 사고 능력을 갖춰, 모든 변수를 고려할 수 있는 초월적 인간이거나, 아니면 그냥 단순한 사람이거나. 전자가 얼마나 있을 지는 모르겠다.

결국, 타인이 내가 느끼는 호들갑을 알고 싶다면, 나와 오랫동안 대화를 하고, 나라는 존재를 느끼고, 나의 생각을 느끼고, 나의 감정마저 느껴야 할 것이다. 언어로 덧씌어지지 않은 호들갑이라는 감정을 느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언어로 표현하는 순간 오류가 생길 것이다. 침묵이 때로는 보다 명확한 뜻을 전달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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