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은 어떤 상상을 하며 살까?
저는 산책을 즐깁니다. 망상에 빠지기 아주 좋은 환경입니다. 헤드폰을 껴서 주변 소리를 막습니다. 세상에 저 혼자만이 존재합니다. 그 상태에서 백일몽에 잠깁니다. 저만의 세상이 펼쳐지기 시작합니다.
여느 때와 같이, 점심을 먹고 산책 중이었습니다. 까마귀의 사냥 장면을 봤습니다. 비둘기를 사냥하고 있었습니다. 까마귀가 사냥도 하는지 몰랐습니다. 신기한 마음에 사진을 찍었습니다.
꽤나 잔인한 장면이었을 것입니다. 사냥당하는 이의 입장에서 보면 말입니다. 피해자는 비둘기였습니다. 까마귀로부터 깃털이 뽑히고 있었습니다. 꽤나 잔인한 장면이었습니다. 그리고 전 그걸 흥미롭게 지켜보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여기서 저만의 세상이 펼쳐지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 제 앞을 막았습니다. 저는 그녀가 공감 능력이 뛰어난 동물 애호가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제가 만들어 낸 인물이니까요. 그녀는 아니나 다를까, 저에게 잔인하다고, 인간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식으로 말을 걸었습니다. 사냥당하는 비둘기가 불쌍하지 않냐면서, 그것을 흥미롭게 지켜만 보고, 사진 찍는 것이 말이 되냐는 식으로 말입니다.
화가 났습니다. 그녀의 감수성에, 그녀의 잣대에, 그녀에 무지에 화가 났습니다. 말을 뱉어야 했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못 배겼습니다.
“저로 인해 먹이를 놓칠 까마귀는 안 불쌍한가요? 저 까마귀가 현재 엄청난 굶주림에 시달린 상태고, 저 먹이를 놓치면 굶어 죽는 상황이라면? 저의 개입으로써 까마귀는 죽게 될 텐데, 이러한 서사기 있을지도 모르는데 개입하는 것이 맞을까요?
나아가, 당신이 실수로 밟아 죽인 개미, 잠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한 모기는 안 불쌍한가요? 대체 무엇을 불쌍해해야 하고, 무엇을 불쌍해하면 안 되나요? 그것의 절대적 기준이 있나요? 왜 남에게 본인만의 잣대를 들이밀고, 그것이 정답인 것 마냥, 타인에게 돌을 던지시나요? 선량하신가요? 남에게 돌을 던져도 될 정도로? 그 선량함은 대체 누가 부여해준 것인가요?”
혼잣말을 뱉었습니다. 허구의 무언가를 향해 말입니다. 이 말을 끝으로, 당시의 저의 세상은 막을 내렸습니다. 그녀도 무(無)로 돌아갔습니다.
이것이 저의 야릇한 취미입니다. 저만의 세상에 푹 빠져, 무언가의 대상을 상정한 뒤, 그들과 대화를 합니다. 언쟁이 될 때도 있습니다. 타인이 봤을 땐, 저는 미친 자 언저리의 무언가일 것입니다. 그래도 이러한 취미를 멈추지 못하겠습니다. 재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