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죽어야, 잠에서 깨어나

chmm-003.

by 한운후




대장장이, 쇳조각,

어머니, 그리고 꿈.



꿈이었다. 그저 다행이었다.

엄마에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세 달 전의 어떤 아침은 눈물로 하루를 시작했다.


경황이 없고, 땅에서 발이 붕 떠있지만, 정말 다행스러웠다. 자는 동안 보고 들은 것들에 너무 많은 관심을 주지 않으려 했다. 그런 것에서 괜한 실마리를 찾으려는 건 타로 점이나 운세, 심지어는 토요일 저녁의 복권에 기대를 거는 것과 마찬가지란 생각이었다.

8월 26일 월요일, 나는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와 저널을 펼쳤고, 기억이 나는 대로 꿈을 기록했다. 화로에서 닷새를 타고도 남아있는 장작의 불씨처럼, 새벽의 형상과 감정은 여전히 생생했다. 나는 그 저널의 첫 문장을 이런 질문으로 시작했다.


'잠에서 울면서 깨어본 적이 내게 몇 번이나 있었을까?'


꿈 속의 대장장이가 바로 나라고 기억했다. 그는 오직 주조와 망치질 작업에만 몰두해 있었다. 빨간 토끼눈, 나무 껍질같은 손바닥, 주욱 뻗은 거북목. 그의 행실은 가히 집착에 가까워 보였다. 도대체 그는 무슨 쇳덩이를 세상에 선보이고 싶었던 걸까? 그는 과연 무엇을 증명하고 싶어서, 옆에 있는 소중한 사람이 시간과 함께 옅어져 가는 데 아무런 손도 쓸 수가 없었던 걸까?

내가 기억하는 꿈은 슬픈 영화의 한 장면같은 요소를 고루 갖추고 있었다.



'볼 수 없었던 걸 열렬히 뒤따르는 동안, 가까이에 있던 것들이 점차 멀어진다.'



그 뿐만이 아니다.

나는 분명 8월 26일 저녁, 저널 종이의 한 켠에 이렇게 적어 두었다:

'결국, 잊고싶지 않아서 이렇게 적는 것이다.'


그래도, 대장장이는 후회를 피하고 싶었나보다.

간밤의 섬뜩했던 그 꿈이 단순히 어느 피곤했던 날에서 비롯된 망상이 아니라,

대낮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비춘 거울일까봐,

또 급류에 올라타듯 시간을 달리다가,

잠시 멈춰서 숨좀 가라앉힐 폭 넓은 느린 하류의 모래 둔턱을 놓칠까봐,

대장장이는 잠깐 망치를 내려놓고, 주머니를 더듬거리는 것이다.

잃어버린 게 있나 하나씩 곱씹으면서.



[엄마가 죽어야, 잠에서 깨어나]

생각만으로 겁이 나고, 치가 떨리는 문장이다. 그런데, 집을 떠나 홀로 정신 없는 삶을 살아가는 내게 단편적인 그 악몽이 선물해준 가르침은 저런 극적인 제목이 아니면, 또 잊혀질 것만 같았다. 아무리 저널 종이 한 켠에 다짐하는 몇 단어들을 세게 눌러 적었다한들, 가랑비는 우리도 모르게 옷을 적시기 마련이니까.


실은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의 이야기다. 우리의 귀엔 "아이고, 시간도 야속하지." 같은 쓴웃음 지을 표현들이 어쩐지 익숙할 따름이다; 마치 소용돌이같은 일상에서 잠시 고갤 꺼내 들었을때나 나올 법한 말들, 그럼에도 이미 먼 길을 떠나와 돌아갈 길이 없는 뼈아픈 응어리를 어떻게든 해소시키려는 신음.

그 꿈의 맨 마지막은 심하게 훼손된 필름 사진처럼 막연한 형체와 음영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저널에 따르면, 주방 바닥에서 모두가 무너져 엉엉 운 격한 감정들이 이상한 모습으로 눈앞에 나타난 것이고, 그것들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나는 글의 끄트머리에 그 꿈이 내게 가져온 것들이 나를 잠에서 깨어나게 했을 만큼 아름답고, 강렬했다고 남겨두었다. 누가 보면 현실의 의미심장한 투영이라 할 수도 있고, 그저 밤잠을 제대로 설치게 만든 단발적 악몽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정체야 뭐가 되었든, 바삐 살아가는 내게 그 새벽의 꿈은 여전히 '대장장이, 쇳조각, 어머니, 그리고 꿈'같은 단어들로 기억된다.




우리는 순간의 변덕으로 대장간의 화로나, 숫돌 앞을 손쉽게 떠날 수가 없고, 그 것이 어른으로서 최소한의 앞가림이라 배워왔다. 누구는 최고의 쇳조각을 얻기 위해 불 앞에서 넋을 잃고, 시계를 보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가슴 찢어지는 댓가를 치루지 않고도 배울 수 있는 귀중한 교훈이 있다면 우린 얼마나 달라질 수 있을까?


그 날의 저널 속의 꿈 속의 나에게 다시 묻고싶다.












그림 제목:

Norma Jeane.

Procreate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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