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을 조금만 더 오래 잡아주실래요?

시간, 할아버지, 손, 여행

by 한운후



나를 알아보신지도 꽤 시간이 지났다.

할아버지는 돌덩이같던 손을 느슨히 풀고,

두껍고 뿌연 벽 너머로 걸어가고 있었다.



"더 먹어. 이거 더 먹어."


내가 그의 손을 잡으면, 웃으며 눈을 껌뻑이신다. 늠름한 사내가 바로 옆에서 떠나질 않으니 부끄러우신가보다. 이미 텅 빈 두유팩을 두세 번 들이밀며, 더 먹으라 하신다. 더 더 먹으라며, 저기에 많이 있다며 호기롭게 말씀하신다. 그가 내 이름을 다시 한번 불러주길 기대하는 건 이미 지나친 기대였으니, 나는 대답보다 그의 손을 더 잡고있으려 한다.




그의 손은 쇠도, 나무도 가볍게 우그러뜨리던, 나의 세상에서 제일 따듯한 지붕같았다. 이제 내가 그 손을 덮는다.


일부러 그가 생각에 빠진듯 보일때 갑작스런 질문을 하기도 했지만, 그의 머릿속은 매일같이 빈 방이 나오는 것처럼 어제보다 조용해지고 있었다. 시설 내의 여느 분들과 마찬가지로 할아버지 역시 눈에 보이지 않는 공간에 존재하듯 혼자만의 순간에 자주 계셨고, 그런 그를 처음 마주했을땐 숨을 쉬어도 허파가 부풀지 않는듯, 가슴이 미어지기도 했다.

그는 나와 우리 가족에게 무심하고, 같이 있어도 멀리만 느껴지는 때가 계속 이어졌다.

하나같이 자기좋은줄만 아는 표정으로.


1960년대, 철도 청원경찰로 양평 인근 양수리에 근무했던 할아버지/ 터널에서 열차가 나오는 순간을 기다리다 촬영한 사진


근데 우린 그들이 정말 어디에 있을지 알기나 할까?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가늠할 수 없을 것들을 경험하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들의 가장 순수하고 밝은 빛(영혼)은 여러 겹의 두툼하고 뿌연 잿빛의 벽 속에 갖혀, 사랑하는 가족들의 목소리에 외마디 대답조차 꺼낼 수도 있다.


아니면, 미로같은 거대한 회색의 벽들이 매 순간 새롭게 모양을 바꾸는 탓에, 우릴 향한 그들의 대답은 튕겨진 메아리로만 안에서 맴도는 것을 우리는 알 리가 없을테다.


이런 생각은 어떨까?

그들은 머릿속 더 깊고 컴컴한 구덩이로 빨려들지 않기 위해 천둥, 폭풍, 지진을 피해서 이리저리 뛰고, 밖으로 나가기 위한 시도를 한 시도 멈추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겉으로 평온한 표정을 하고있는 그들의 이면에, 죽음과 살 떨리는 불안에 저항하며 묵직한 벽을 밀어내려는 사람의 인상이 저절로 그려진다.


생각을 멈추고 싶어도, 눈이 감기지 않는다. 길잃은 어린애들같은 그들이 우리가 곁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길 바랄 뿐이다.


내 손을 잡으시라고,

우리는 여기 함께 있다고,

내 손이 닿을 수 있는 데까지 어루만져주고 싶은 마음은 도무지 사라지질 않는다.




[2022. 3. 19. Sat. 08:03AM/ 네이버메모]


그 두껍고, 뿌연 벽 너머로 길을 떠나려는 사람들을 붙잡지 마라. 그저 그들이 우리에게 선물해준 기쁨과 아픔, 그리고 사랑을 기억하라. 그들은 회색 커튼을 제치고, 돌아오지 않는 긴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할아버지가 예전처럼 나에게 특유의 양반탈같은 웃음을 보이기 어려워하던 때, '회색 커튼'이라는 표현이 떠올랐다. 알츠하이머를 겪는 가족을 둔 누구든 그들이 예전처럼 돌아올 수 없을 거란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기에, 우리가 어떤 값을 치뤄도 넘을 수 없는 경계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싶었다.

위 메모는 그가 어릴적 창씨개명 당시의 일본식 이름과, 늘 자랑스러워 하셨던 젊은날 미 8군 하사관 복무시절의 기억들을 평소처럼 조금의 오류도 없이 줄줄 얘기했을때 적어둔 것이었다. 할아버지가 여전히 기억할 수 있었던 것들 중엔, 자녀, 손주, 사촌들, 심지어는 10여년 전 먼저 세상을 떠나신 할머니의 이름조차도 남아있지 않았는데, 내게 어릴적부터 들려주신 흥미로운 일화들은 얼기설기 할 것 없이 온전한 상태라는 점이 신기했다.

그가 우리를 새 병실의 간호사 대하듯 쑥스럼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수 십년 전 어느 동네의 어느 개울가 위치는 손으로 가키며 알려줄 수 있을 만큼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11일 월요일, 나는 강원도 원주의 한 요양원 앞에서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에게 할아버지의 사진들을 나눠주었다. 방금 4인 1조로 하루에 단 한 번만 허락된 방문을 마친 뒤였다. 한겨울의 기찻길 앞에 서있는 사진, 혼례를 치르던날, 어느 가을 할머니 옆에 선 채 나무에 왼 손을 얹고 있는 사진 등. 약 2주 전 부터 의식이 희미해져, 수척한 모습으로 누워만 계시던 할아버지의 젊은 시절이라고 믿기 어려웠다.

삼촌과 이모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아무리 불러도 게슴츠레 눈만 겨우 감았다 뜨는 게 전부였던 할아버지가 손바닥 크기 사진 속에서 잔뜩 긴장한 얼굴로 고운 한복차림의 할머니와 팔짱을 낀 바로 그 청년이였다는 사실을 새삼스러워했다. 뻣뻣한 표정으로 한 눈에 보더라도 두 치수는 더 커다란 양복에 흰 장갑을 낀 사내 옆에서, 나의 할머니는 더 할 나위 없이 수줍고 기쁜 얼굴이었다. 우리는 흐느끼진 않았지만, 조용히 눈물을 닦았고,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그 자리에 그대로 계셨다.


늘 현재가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믿음으로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지만, 그 때 만큼은 격한 어리광을 피워도 예쁘게만 받아주던 조부모와 어린아이 시절에 머물던 날이었다. 할아버지는 더이상 내 손을 잡을 수 없고, 우리는 힘든 순간을 마주할 준비를 하지만, 어디 가지 않을 기억들이 내 안에서 더더욱 선명해지는 걸 느꼈다.





[그는 투박하고, 큰 손을 가졌고,

두 귀는 멀리서도 눈에 띄는 부처님같은 귀였다.

웃을 땐 눈이 사라지는 눈웃음이고,

왼쪽 검지에 큰 점이 있어서 내가 어릴적에 길을 잃는다면,

그 점을 기억하고 찾아오라며 장난스레 당부하곤 하셨다.

목수처럼 톱질과 망치질을 곧잘 하셔서 물건을 만드는 재주가

있으시고, 가는 몸통에 비해 손목과 팔목은 나무 뿌리처럼 굵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때 그의 황소같은 울음을 처음 들었다.

말도 걸음도 느리셨지만, 생각은 천리를 더듬듯 침착했다.

내가 그의 손을 잡아당기면, 그도 내 작은 손을 잡아주었다.]







그림 제목:

익숙한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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