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즈마고리아-1
나를 꿈처럼 들어 올려 현실처럼 떨어트린
Phantasmagoria
제 2회 한국작가문학대상 소설 부문 우수상, 단편 <판타즈마고리아>(2025)
나는 이 손을 뿌리칠 힘이 조금도 남아있지 않았다. 추운 겨울날의 서리 낀 쇠 문처럼 내 손에서 떨어지질 않는다. 하지만 이 존재가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아주 어렴풋이 짐작이 간다. 사실, 오늘 아침 아내와 함께 아홉 달 만에 집 밖을 나서는 순간부터 이런 일이 벌어질 걸 알고 있었다.
내가 지금 걸어가고 있는 곳은 그저 어둠이다. 그러니까, 폴리카보네이트처럼 발바닥을 통통 밀어내는 발판이 깔린 복도라 해야 할까? 보이진 않지만 무대 연출용 수증기의 차가운 촉감이 나의 얼굴과 귓불을 만지고 스치는 걸 느낀다. 새벽의 풀길에서 길 잃은 것처럼 가슴 가득 불쾌한 공기를 채우고, 다시 뱉는다. 코 끝에 가장 마지막으로 걸리는 건 그저 곰팡이, 혹은 오래된 차의 콘솔 냄새뿐이다. 가끔씩 천장에 은은한 옥색에 비슷한 빛의 흔적들이 나타나는데 메스껍고, 어지러운 와중 나의 판단을 신뢰해도 괜찮을까? 아마도 이곳의 직원들이 아닌 이상 알아차리기 어려운 일종의 스티커 일테다. 야광, 그렇지. 맞을까? 들어본 적 없는 소리도 들리는데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할까.
이런 생각도 차분히 가져본다. 내가 저 빛들을 따라간다면, 언젠가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있을까? 내가 공식적으로 살아있었던 시기, 그러니까 주민등록표에 등록되어 있고, 친구의 미움을 사지 않고, '세상을 구한 내부고발자'라 불리기 전, 사망 신고가 되지 않았던 바로 그때로. 큰일이다. 원래대로 되돌려 놓아야 할 것들이 참 많다. 더 이상 그들의 원한으로부터 숨어 살지 않아도 되는 일상으로 돌아가려면, 애써 피해온 증오도 다시 마주해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저 야광 스티커를 진짜 별들의 수만큼 세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건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건 후회가 아니다. 눈물 없이, 후회도 없다는 말처럼.
이제 보니 저 스티커들은 별 모양이 맞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