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즈마고리아-5
투정 부리는 아이처럼 땅에 털썩 주저앉거나, 팔을 부러뜨릴 각오로 거칠게 흔들고, 당신은 지금 사람을 잘못 봤다며 못난 비명을 지르는 생각까지 해보았다. 이대로 내 의지와 상관없이 죽음을 맞이하려니 가슴에 쇠공이 떨어져 시퍼런 멍이 든 느낌이다. 아직 일들을 되돌리기에 늦지 않았다고 누군가 얘기해 준다면 좋겠다. 이 손아귀를 풀어헤칠 힘이 주어진다면 분에 넘치게 기쁠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그저 내 아내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고, 우리 딸이 아빠의 긴 여행이 시작되어 오랫동안 집에 모습을 비추지 않는 걸 이해해 주길 기도한다. 자비를 구하는 기도에 반드시 두 손이 다 필요할까.
죽음을 수용하는 단계는 간발의 차이로 버스를 놓치는 것과 꽤나 비슷하다.
1. 문을 닫은 버스는 곧 떠날 거란 사실을 부정하는 것.
2. 욕설을 뱉으며 얄궂은 빨간 후미등을 노려보는 것.
3. 황급히 정거장을 뛰쳐나와 차도 위를 달리며 운전기사의 눈에 띄기 위해 허공에 손을 마구 흔드는 것.
4. 나의 급한 성미를 못 이긴 둔하고 비싼 구두 때문에 점점 다리에 힘이 빠져가는 것.
5. 이내 차선을 바꾸고 힘 있게 나아가는 버스를 지켜보며 걸음을 서서히 멈추는 것.
나는 과거에 버스 정류장에서 어떻게 행동했는지 되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