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

판타즈마고리아-6

by 한운후


이 손에 이끌려 가파른 계단을 몇 차례 오른다. 발을 내밀 때마다 턱에 걸리고, 매번 다리에 남아있던 힘마저 풀린다. 하지만 나는 가동 중인 커다란 기계 안에서 쉬지 못하는 제일 작은 톱니바퀴와 같다. 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처음엔 내가 본 걸 의심한다. 단순히 또 다른 홀로그램 허상일 거라 지레 판단하지만, 이곳은 유령의 집이란 사실을 또렷이 기억하고 내 눈을 의심한다. 황금색 노을빛이 나의 얼굴에 파도처럼 밀려든다. 벽의 갈라진 틈사이로 얼어붙은 코 끝, 입술, 볼이 한순간에 녹이는 빛이 멈추지 않고 분출한다. 예상치 못한 빛은 내 온몸을 위로하고, 눈 감게 만든다. 머릿속에 껴있는 어둠과 안개 또한 거둬낸다. 이런 단어를 내뱉는 게 부끄럽다.

"제발, 조금만 더."

갑자기 발을 떠받치던 바닥이 바늘에 찔린 비누 거품처럼 사라졌다. 곧바로 뒷머리와 등에 커다랗고 부드러운 뭔가가 닿는 느낌이 들었다. 그게 천사의 날개라고 믿고 싶지만, 아무래도 빠르게 추락하며 나의 뒷머리에 맞는 공기의 감촉일 거라 짐작했다.

그 손이 나를 놓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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