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버스 안으로

판타즈마고리아-8

by 한운후


벌써 하늘이 보라색으로 물든 저녁이다. 수 천 개의 노란 전구들이 그 아래서 파도처럼 출렁인다. 의외로 응급차 뒤에 걸터앉아서 구조요원들의 어깨너머로 벌어지는 광경을 보는 건 거실에서 가족들과 한 이불을 뒤집어쓰고 영화를 보는 것만큼이나 포근하다. 무슨 심각한 명령을 받은 것처럼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사람들. 검은 옷에 검은 헬멧. 저 사람 등에 메인 기다란 검은색 총은 진짜 M4일까? 커다란 로브를 뒤집어쓴 사람이 총을 멘 사람들에 이끌려 등 뒤로 수갑을 맨 채 경찰차 뒷좌석으로 들어간다. 그 와중에 빨간빛과 파란빛이 야단스럽게 번쩍인다. 경찰차를 생각하면 무의식적으로 보라색 빛이 떠오르는 이유를 이제야 깨닫는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기억에 온 장면을 한 프레임씩 담아낸다.

노란 폴리스 라인 너머에 호기심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는 수 백명의 단역들이 서있다. 나는 영화를 보면 꼭 주인공만큼이나 그들을 주의 깊게 관찰하곤 했는데, 구경꾼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일이 없었다. 감독은 무슨 의도를 가졌을지 궁금하다. 이 영화의 구경꾼들은 쉬지도 않고 나만 바라본다.

더 이상 오른쪽 눈썹이 움직이지 않는 이유가 뇌에 문제가 생겨서가 아닌, 붕대가 머리를 너무 꽉 조여서라고 믿고 싶다. 앳된 고등학생처럼 보이는 구조요원이 눈을 부릅뜬 채 바들대는 손으로 내 머리를 만지작 거린 지가 십 분이 넘어간 참이었다. 이럴 거면 내가 이 친구를 안심시켜야 하는 게 아닐까.

"저기, 선생님... 지금 혹시 어디 불편한 데가 더 있을까요?"

턱을 움직이기 어려워서 눈을 꼭 감고 손을 저었다. 왠지 모르게 그의 표정 한층 더 어두워진다.



이전 07화환등 幻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