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1790)하면 대부분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손'과 자유시장경제의 아버지를 떠올린다. 그러나 이는 스미스에 대한 편향된 이해다. 그가 1759년에 출간한 『도덕감정론(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은 『국부론』보다 17년 앞서 발표된 작품으로, 스미스 철학의 진정한 출발점이자 핵심을 담고 있다. 이 책은 단순히 경제학자가 쓴 윤리학 서적이 아니라, 인간 본성에 대한 근본적 탐구를 통해 사회 전체의 도덕적 질서가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밝힌 혁명적 작품이다.
18세기 계몽주의 시대, 전통적 권위가 흔들리고 이성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인간의 도덕성은 어디서 비롯되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이 대두되었다. 종교적 계시도, 절대적 권위도 더 이상 확실한 답을 제공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스미스는 인간 내면의 감정과 상상력에서 도덕의 원천을 찾고자 했다. 그의 접근법은 당시로서는 혁신적이었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통찰을 제공한다.
스미스가 『도덕감정론』에서 제시한 가장 핵심적인 개념은 '동감(sympathy)'이다. 그러나 스미스의 동감은 단순한 연민이나 동정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것은 인간이 타인의 상황을 상상을 통해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 감정을 공유하려는 근본적 능력을 의미한다.
스미스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유명한 사례를 든다. 우리가 누군가 매를 맞는 것을 보면, 실제로 우리가 맞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움츠러든다. 이는 우리가 그 사람의 고통을 상상을 통해 경험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우리는 그 사람이 느낄 분노, 굴욕, 복수심까지도 함께 느낀다. 이러한 동감 능력이야말로 인간을 단순한 이기적 존재가 아닌 도덕적 존재로 만드는 근본 원리라고 스미스는 주장한다.
이는 당시 지배적이었던 도덕철학과 근본적으로 달랐다. 토마스 홉스는 인간을 본질적으로 이기적인 존재로 봤고, 데이비드 흄은 이성보다 감정을 중시했지만 여전히 개인적 쾌락을 기초로 삼았다. 반면 스미스는 인간이 태생적으로 타인과 감정을 공유하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봤다. 이는 도덕이 외부에서 강요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본성 자체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할 수 있을까? 스미스는 여기서 '공정한 관찰자(impartial spectator)'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이는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가상의 제3자로, 편견 없이 상황을 관찰하고 판단하는 존재다.
예를 들어, 내가 분노를 느끼는 상황에서 나는 내 안의 공정한 관찰자에게 묻는다. "만약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이 상황에서 이렇게 분노한다면, 나는 그의 감정에 동감할 수 있을까?" 만약 답이 "예"라면 그 분노는 정당하고, "아니오"라면 과도하거나 부적절한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끊임없이 내면의 공정한 관찰자와 대화하며 자신의 감정과 행동을 조절한다.
이 메커니즘은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다. 공정한 관찰자는 단순히 규칙을 적용하는 기계적 존재가 아니라, 상황의 맥락과 특수성을 모두 고려하는 지혜로운 판관이다. 그는 행위자의 의도, 상황의 긴급성, 사회적 배경, 개인의 능력과 한계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이는 도덕이 융통성 없는 절대적 명령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섬세하게 조율되는 판단임을 보여준다.
스미스는 인간의 도덕감정을 체계적으로 분류한다. 그는 모든 도덕적 승인과 비승인이 네 가지 원천에서 나온다고 본다: 첫째, 행위의 동기에 대한 동감, 둘째, 행위자의 감사함에 대한 동감, 셋째, 행위가 사회 전체에 미치는 유익함에 대한 인식, 넷째, 이러한 유익함이 체계와 아름다움에 기여하는 바에 대한 감각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스미스가 공리주의적 계산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도덕의 전부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인간이 단순히 결과의 유용성만으로 행위를 판단하지 않으며, 의도의 순수성, 감정의 적절성, 미적 조화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고 본다. 이는 도덕이 차가운 계산이 아닌 따뜻한 인간성에 기초한다는 그의 근본 철학을 보여준다.
또한 스미스는 각기 다른 덕목들이 사회에서 수행하는 기능을 분석한다. 정의는 사회의 기본 질서를 유지하는 필수적 덕목이며, 자비는 사회를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장식적 덕목이다. 용기와 현명함은 개인의 탁월성을 나타내며, 절제는 모든 덕목의 조화를 이루게 한다. 이러한 분석은 덕목이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는 실용적 가치임을 명확히 한다.
스미스의 통찰 중 가장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는 양심이 형성되는 과정에 대한 분석이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완성된 도덕 의식을 갖고 있지 않다. 대신 다른 사람들과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점차 내면의 공정한 관찰자를 발전시켜 나간다.
어린 시절 우리는 부모와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통해 무엇이 승인받고 무엇이 비승인받는지를 학습한다. 처음에는 외부의 시선을 의식하여 행동하지만, 점차 이러한 외부의 관점들을 내재화하여 자신만의 도덕적 판단 기준을 형성한다. 결국 우리 내면의 공정한 관찰자는 사회의 집단지성이 개인화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접하는 사회적 환경의 질이다. 만약 우리 주변의 사람들이 편협하거나 부도덕하다면, 우리의 양심도 왜곡될 수 있다. 반대로 다양하고 공정한 관점을 가진 사람들과 교류한다면, 더욱 정교하고 올바른 도덕 의식을 발전시킬 수 있다. 이는 도덕 교육과 사회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현대적 시사점을 제공한다.
스미스는 사회 계층에 따른 도덕 의식의 차이도 예리하게 분석한다. 그는 인간이 부와 권력을 가진 자들을 무조건적으로 숭배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는 부분적으로는 그들의 능력과 성취에 대한 정당한 존경이지만, 동시에 부나 지위 자체에 대한 맹목적 숭배이기도 하다.
이러한 경향은 사회의 안정성에는 기여하지만, 동시에 도덕적 부패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부유하고 권력 있는 자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과도하게 찬양받는 것에 익숙해져 진정한 도덕적 성찰을 게을리하게 된다. 반면 가난하고 지위가 낮은 자들은 자신들의 미덕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불공정을 경험한다.
스미스는 이러한 사회적 불평등이 완전히 제거될 수는 없지만, 교육과 문화를 통해 완화될 수 있다고 본다. 진정한 덕목과 허상을 구별할 수 있는 지적 능력, 외모나 지위가 아닌 내적 가치를 볼 수 있는 도덕적 감수성, 그리고 모든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하는 인도주의적 정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도덕감정론』에서 스미스는 종교와 도덕의 관계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다룬다. 그는 종교적 신앙이 도덕성을 강화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도덕이 종교에 완전히 의존적이지는 않다고 주장한다.
스미스에 따르면, 신에 대한 관념은 우리 내면의 공정한 관찰자를 더욱 완벽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인간의 판단은 불완전하고 편파적일 수 있지만, 전지전능한 신의 관점에서는 모든 것이 공정하게 평가된다. 따라서 신을 의식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더욱 정직하고 공정한 도덕적 판단을 내리도록 돕는다.
그러나 스미스는 종교적 광신이나 맹목적 신앙은 경계한다. 진정한 종교는 인간의 이성과 감정을 조화시키며, 관용과 사랑을 실천하게 한다. 반면 왜곡된 종교는 편견과 증오를 부추기고, 진정한 도덕을 훼손한다. 이는 종교의 역할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보여주며, 오늘날의 종교 갈등 문제에도 시사점을 제공한다.
많은 사람들이 『도덕감정론』의 이타적 인간관과 『국부론』의 이기적 인간관 사이에 모순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소위 '애덤 스미스 문제'라고 불리는 논쟁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두 저작이 일관된 인간관에 기초하고 있다.
스미스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동시에 타인에 대한 관심도 갖고 있다고 본다. 문제는 이 두 성향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이다. 『도덕감정론』에서는 개인적 관계에서의 도덕적 행동을, 『국부론』에서는 경제적 관계에서의 합리적 행동을 다룬다. 두 영역 모두에서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지만, 그 과정에서 사회 전체의 이익도 증진시킨다는 것이 스미스의 핵심 통찰이다.
더 나아가 스미스는 경제적 번영이 도덕적 발전의 기초가 된다고 본다. 굶주림과 절망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고상한 도덕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반면 기본적 욕구가 충족되고 여유가 있는 사회에서는 더 높은 차원의 도덕적 실천이 가능하다. 이는 경제 발전과 도덕적 진보가 상호 보완적 관계에 있음을 시사한다.
현대 사회에서 알고리즘은 점점 더 많은 도덕적 판단을 내리고 있다. 채용 시스템, 대출 승인, 형사처벌 결정에 이르기까지 인공지능이 인간을 평가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근본적 문제가 발생한다. 스미스의 공정한 관찰자는 상황의 맥락과 개인의 특수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존재인데, 알고리즘은 기본적으로 과거 데이터의 패턴을 반복할 뿐이다.
예를 들어, AI 채용 시스템이 과거 성공한 직원들의 데이터를 학습했다고 하자. 만약 그 회사가 역사적으로 특정 성별이나 인종을 차별했다면, AI는 그 편향을 그대로 학습하여 재생산한다. 스미스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공정한 관찰자가 아니라 편견에 사로잡힌 부당한 관찰자다. 진정한 공정함은 각 개인을 고유한 존재로 바라보고, 그들의 잠재력과 상황적 맥락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스미스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그는 공정한 관찰자가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존재라고 봤다. 따라서 알고리즘 역시 고정된 규칙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기 성찰하고 개선하는 시스템이어야 한다. 더 나아가 알고리즘의 판단 과정에 다양한 관점의 인간들이 참여하여 집단지성을 구현해야 한다. 이는 알고리즘이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사회적 도덕 의식의 확장된 형태가 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소셜미디어 시대의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온라인상의 혐오와 갈등이다. 스미스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동감 능력의 체계적 마비 현상이다. 사람들은 화면 너머의 상대방을 실제 인간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단순한 아이콘이나 텍스트로 축소시켜 바라본다.
특히 익명성은 내면의 공정한 관찰자를 무력화시킨다. 스미스가 강조했던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이 사라지면서,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말들을 쏟아낸다. 더 심각한 것은 알고리즘이 자극적인 콘텐츠를 우선적으로 노출시키면서, 극단적 의견들이 증폭되고 중도적 목소리들이 묻혀버리는 현상이다.
스미스라면 이 문제를 어떻게 접근할까? 그는 먼저 온라인 공간에서도 구체적인 인간의 얼굴을 상상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추상적인 '진보주의자' '보수주의자'가 아니라, 실제로 걱정과 희망을 가진 개별 인간으로 상대방을 바라보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온라인 담론의 구조 자체를 바꿔서, 극단적 대립보다는 상호 이해를 촉진하는 방향으로 플랫폼을 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현대 세계는 전례 없는 수준의 전지구적 연결성을 갖고 있지만, 동시에 극심한 불평등도 존재한다. 한쪽에서는 우주여행을 꿈꾸고, 다른 쪽에서는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스미스의 동감 이론은 이런 글로벌 격차에 대해 어떤 답을 제공할 수 있을까?
스미스는 동감이 물리적, 심리적 거리와 반비례한다고 봤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의 고통에는 즉시 반응하지만, 지구 반대편 사람의 고통에는 상대적으로 둔감하다는 것이다. 이는 인간 본성의 한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극복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현대의 미디어와 기술은 이 거리감을 줄일 수 있는 강력한 도구다. 아프리카의 기아 현실을 생생한 영상으로 접하거나, 시리아 난민의 일상을 SNS로 실시간 지켜볼 때, 우리는 그들의 고통에 동감하게 된다. 그러나 여기에는 함정도 있다. 미디어에 의해 선택적으로 편집된 현실만 접하게 되면서, 왜곡된 동감이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이다.
스미스라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육받은 상상력'의 중요성을 강조할 것이다. 단순히 감정적 반응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체계적인 학습과 성찰을 통해 전지구적 상황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개인적 차원의 동감을 제도적 차원의 정의로 연결시키는 중간 매개체들(NGO, 국제기구, 시민사회 등)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ChatGPT와 같은 대화형 AI가 일상화되면서, 아이들이 인간이 아닌 기계와 대화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다. 이는 스미스의 관점에서 보면 매우 우려스러운 현상이다. 도덕 의식은 다른 인간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되는데, 기계와의 대화에서는 진정한 동감이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AI는 인간의 감정을 시뮬레이션할 수는 있지만, 실제로 고통을 느끼거나 기쁨을 경험하지는 못한다. 따라서 AI와의 관계에서는 일방적인 투사만 있을 뿐, 상호적인 동감은 불가능하다. 만약 아이들이 주로 AI와 대화하며 자란다면, 타인의 감정에 대한 민감성이 떨어질 위험이 있다.
스미스의 해법은 명확하다. 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인간 간의 직접적인 상호작용의 중요성을 재확인하고, 이를 의도적으로 늘려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AI는 정보 제공이나 효율성 증대에는 유용하지만, 도덕성과 인간성의 발달에는 결코 인간을 대체할 수 없다. 오히려 AI 시대일수록 인간다운 교육과 관계의 가치가 더욱 부각된다.
기후 변화는 현재와 미래, 그리고 서로 다른 지역 간의 복잡한 도덕적 딜레마를 제기한다. 현재 세대의 편리함이 미래 세대의 생존을 위협하고, 선진국의 산업화가 개발도상국의 환경 재앙을 가져온다. 스미스의 동감 이론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접근할 수 있을까?
스미스는 시간적 거리 역시 동감을 약화시키는 요인이라고 봤다.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는 현재의 일보다 상대적으로 덜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교육과 상상력을 통해 이런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기후 위기의 경우, 우리는 미래 세대의 관점에서 현재의 행동을 평가하는 '시간적 공정한 관찰자'를 발전시켜야 한다. 100년 후의 관찰자가 현재 우리의 행동을 어떻게 평가할지 상상해보는 것이다. 또한 현재 이미 기후 변화의 피해를 받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더욱 귀 기울여야 한다. 이들의 경험을 통해 미래의 위험을 현재의 현실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러한 현대적 딜레마들은 스미스의 이론이 단순히 18세기의 유물이 아니라, 21세기의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에도 유용한 틀을 제공함을 보여준다. 물론 스미스의 이론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지만, 적어도 문제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과 접근 방법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가치가 있다.
위에서 살펴본 현대적 적용 사례들을 통해 스미스 이론의 한계도 명확해진다. 그의 도덕감정론은 기본적으로 18세기 스코틀랜드의 문화적 맥락에서 발전된 것이므로, 현대의 다원적이고 급변하는 사회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특히 젠더, 인종, 종교 등에 대한 그의 관점은 당시의 한계를 반영하고 있다.
또한 스미스는 기본적으로 점진적 개혁을 통한 사회 발전을 믿었지만, 때로는 급진적 변화가 필요한 구조적 불의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자세를 보인다. 현대의 인권 운동이나 사회 정의 운동의 관점에서 보면, 스미스의 접근법은 다소 온건하다고 평가될 수 있다.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은 단순한 18세기 도덕철학서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란 무엇인가, 사회란 무엇인가, 그리고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 탐구다. 스미스는 인간을 이기적이지도 이타적이지도 않은, 복합적이고 모순적인 존재로 파악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복잡성에서 도덕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많은 문제들 - 양극화, 혐오와 갈등, 도덕적 상대주의, 기술 발전에 따른 윤리적 딜레마 - 은 모두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이해를 요구한다. 스미스의 통찰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완벽한 해답을 제공하지는 못하지만, 그것들을 바라보는 지혜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도전들, 알고리즘의 편향성 문제부터 온라인 혐오 현상, 그리고 기후 위기까지, 모든 것이 결국 우리가 서로를 어떻게 이해하고 공감하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스미스의 동감 이론과 공정한 관찰자 개념은 이런 현대적 딜레마들을 해결하는 데 여전히 유효한 틀을 제공한다. 비록 그의 이론이 완벽하지는 않고 시대적 한계를 갖고 있지만, 그 핵심 통찰은 인간 본성의 불변적 측면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도덕감정론』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은 인간에 대한 희망이다. 스미스는 인간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개선 가능하며, 사회가 이상적이지는 않지만 발전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의 근거를 인간의 내면에서, 우리가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끝없는 노력에서 찾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도덕감정론』은 비관과 낙관을 넘어선 현실적 희망의 철학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인간과 사회에 대한 환상을 버리라고 하면서도, 동시에 절망하지 말라고 격려한다. 그리고 각자의 자리에서 조금 더 공정하고 관대한 관찰자가 되어, 조금 더 따뜻하고 지혜로운 사회를 만들어 가자고 제안한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스미스가 남긴 가장 소중한 교훈은 바로 이것이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하고 사회가 아무리 복잡해져도, 결국 모든 도덕적 진보는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려는 작은 상상력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상상력이 모여 만들어내는 집단지성이 바로 우리 시대의 공정한 관찰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애덤 스미스가 260여 년 전에 우리에게 건네준, 여전히 빛나는 인간에 대한 믿음이다.
(이미지 출처 https://ko.wikipedia.org/wiki/%EC%95%A0%EB%8D%A4_%EC%8A%A4%EB%AF%B8%EC%8A%A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