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유학-용기의 등불

by 레옹
7tX7Nl5pEqkoIrGZ2JMNmP_WT7CJx2xVJAQmvrMqc3ICsM0s75hRRmYOjaJUWIhhpO8e-uSu19s2bR9SmyHiRIuO-JontHSeQaiExCm39t-Ka0WCMDlPg1MznuyDRos2KjCmUJ1KZ3W-GzIhY-vqhsKS-afiYHLYQHdLMPwTcPM.jpg

기원전 4세기 아테네 거리를 걸어다니던 한 철학자가 있었다. 그는 왕궁도, 아카데미아의 강단도 거부하고 큰 토기 항아리를 집 삼아 살았다. 사람들은 그를 "개같은 놈"이라 조롱했지만, 그는 오히려 그 별명을 자랑스럽게 받아들였다. 이 남자가 바로 디오게네스(Diogenes of Sinope, c. 412-323 BCE)였고, 그가 창시한 철학이 견유학(Cynicism)이었다.

견유학이라는 이름 자체가 그리스어 'kynikos(개 같은)'에서 유래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디오게네스는 개처럼 소유에 집착하지 않고, 사회적 관습에 얽매이지 않으며, 자연스러운 삶을 추구했다. 하지만 이것이 단순한 반사회적 행동이었을까? 아니면 문명 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철학적 성찰이었을까?


아우타르케이아(Autarkeia): 자족적 삶의 추구

디오게네스가 추구한 첫 번째 원리는 완전한 자족적 삶이었다. 그에게 진정한 자유란 외부 조건에 의존하지 않는 상태였다. 우리가 소유물에 의존할수록, 타인의 인정에 목말라할수록 우리는 더욱 속박당한다는 것이 그의 핵심 통찰이었다. 이건 단순한 관념이 아니었다. 그는 실제로 그렇게 살았다.

이는 단순한 금욕주의와는 다르다. 디오게네스는 쾌락 자체를 거부한 것이 아니라, 쾌락에 대한 의존을 거부한 것이다. 그는 "나는 쾌락의 노예가 되느니 차라리 쾌락의 주인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이러한 태도는 현대인들이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느끼는 공허함과 불안에 대한 예리한 진단이기도 하다.


파르헤시아(Parrhesia): 거침없는 진실 말하기

견유학자들의 또 다른 특징은 사회적 금기를 무시하고 진실을 거침없이 말하는 것이었다. 디오게네스는 권력자든 일반인이든 가리지 않고 그들의 위선과 모순을 신랄하게 지적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그에게 소원을 물었을 때 "햇볕을 가리지 말고 비켜달라"고 답한 일화는 권력에 아첨하지 않는 그의 정신을 보여준다.

이러한 파르헤시아는 단순한 무례함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회의 허상을 벗겨내고 진실을 드러내는 철학적 실천이었다. 현대 사회에서도 우리는 종종 '정치적 올바름'이나 '사회적 예의' 뒤에 숨어 진실을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 디오게네스의 파르헤시아는 이러한 현대적 딜레마에 대한 도전적 답변을 제시한다.


자연에 따른 삶(Kata Physin): 인위성의 거부

견유학의 세 번째 핵심 원리는 자연적 삶의 추구였다. 디오게네스는 사회적 관습과 문명의 복잡함을 거부하고 동물처럼 단순하고 직접적인 삶을 살려 했다. 그는 공공장소에서 식사하고, 성행위를 하며, 배설하는 것을 자연스러운 일로 여겼다. 이는 사회가 만들어낸 '수치심'이라는 인위적 개념에 대한 근본적 도전이었다.

물론 이러한 행동이 현대 사회에서 그대로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이면에 담긴 철학적 메시지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많은 사회적 관습들이 과연 자연스럽고 합리적인가? 아니면 권력과 전통의 산물로서 우리를 억압하고 있는가?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끊임없는 소비를 통해 행복을 추구하라고 강요한다. 더 많이 가질수록, 더 높은 지위를 얻을수록 더 행복해질 것이라는 환상을 심어준다. 하지만 디오게네스의 견유학은 이러한 논리의 허구성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그는 아테네 시장에서 온갖 상품들을 보며 "인간이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라고 탄식했다. 이는 현대인들이 '필수품'이라고 착각하는 수많은 것들에 대한 예언적 비판이기도 하다. 스마트폰, 명품, 자동차 등이 과연 우리의 행복에 필수적인가? 아니면 우리를 더욱 의존적이고 불안하게 만드는 족쇄인가?


견유학자들은 사회적 명예나 지위를 추구하는 것을 어리석다고 보았다. 이는 타인의 평가에 자신의 가치를 의존시키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디오게네스는 "다른 사람들의 칭찬이나 비난에 귀 기울이는 자는 자유로운 자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현대 사회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러한 타인 의존성을 극대화시켰다. '좋아요' 수에 일희일비하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자신을 포장하는 현대인들에게 견유학의 자족적 삶은 중요한 대안을 제시한다. 진정한 자존감은 외부의 인정이 아닌 내적 기준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디오게네스가 가장 혐오한 것은 위선이었다. 그의 가장 통렬한 비판 대상 중 하나가 바로 플라톤이었다. 플라톤이 "인간은 깃털 없는 두 발 달린 동물"이라고 정의했을 때, 디오게네스는 닭의 깃털을 뽑아 아카데미아에 던지며 "이것이 플라톤의 인간이다!"라고 조롱했다. 이는 단순한 장난이 아니라 추상적 관념론의 한계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었다.

더 나아가 그는 플라톤이 이상국가를 논하면서도 시칠리아의 폭군 디오니시오스에게 아첨하며 권력에 빌붙는 모습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지혜를 팔아 권력에 기생하는 자가 무슨 철학자냐"는 것이 그의 일침이었다. 이러한 비판은 현대 사회의 여러 영역에서도 발견되는 문제다. 환경보호를 외치면서도 과도한 소비생활을 하는 모순, 평등을 주장하면서도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위선을 예견한 셈이다.

견유학의 진정성 추구는 이러한 현대적 위선에 대한 날카로운 메스가 될 수 있다.


견유학이 가진 가장 큰 한계는 극단적 개인주의에 빠질 위험성이다. 사회적 관습과 제도를 전면적으로 거부하는 태도는 공동체의 결속과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사회적 동물이며, 완전한 고립은 인간성의 중요한 측면을 포기하는 것일 수 있다.

또한 디오게네스의 극단적 행동들은 종종 사회적 약자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었다. 그의 도발적 행위가 기득권층에게는 철학적 메시지를 전달했을지 모르지만, 일반 시민들에게는 단순한 민폐였을 가능성도 있다.


견유학의 또 다른 문제는 사회 개혁에 대한 소극적 태도다. 문제가 있는 현실을 개선하려 노력하기보다는 그저 거부하고 도피하는 태도를 보일 수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불의한 현실을 방조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현대적 맥락에서 보면, 정치나 사회 활동을 포기하고 개인적 깨달음만 추구하는 것이 과연 윤리적으로 정당한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현대의 미니멀리즘 운동은 견유학의 정신을 계승한 측면이 있다. 물질적 소유를 최소화하고 진정 중요한 것에 집중하려는 시도는 디오게네스의 자족적 삶 추구와 맥을 같이 한다. 다만 현대의 미니멀리즘은 견유학보다 더 세련되고 실용적인 접근을 보여준다.

견유학의 '자연에 따른 삶' 개념은 현대 환경운동과도 공명한다. 과도한 소비와 인위적 생활양식이 환경파괴를 초래한다는 인식은 디오게네스의 통찰과 일치한다. 다만 현대의 환경주의는 개인적 실천을 넘어 사회적 변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견유학보다 더 적극적이다.

견유학의 파르헤시아 정신은 현대 사회에서 비판적 사고와 독립적 판단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미디어의 조작, 권력의 선전, 다수의 편견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기준으로 판단하려는 태도는 견유학이 현대에 주는 소중한 유산이다.


디오게네스의 견유학은 24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날카로운 질문들을 던진다. 우리는 정말 행복한가? 우리가 추구하는 것들이 진정 가치 있는 것인가? 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운가? 하지만 나는 이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우리는 과연 정직한가?"라는 것이다.

견유학의 모든 실천을 그대로 따를 필요는 없다. 시대가 다르고 상황이 다르다. 하지만 그들이 제기한 근본적 문제의식만은 시공을 초월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을 속이며 살아간다. 성공이라는 이름으로, 안정이라는 핑계로, 현실적이라는 변명으로 진짜 하고 싶은 일을 미루고 진짜 되고 싶은 사람이 되기를 포기한다.

디오게네스가 통 속에서 살았던 것은 가난해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선택이었다. 세상이 만들어놓은 '성공'의 기준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 통은 감옥이 아니라 자유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미래 사회는 어떨까? 인공지능이 발달하고 메타버스가 현실이 되는 시대에도 견유학의 정신은 여전히 유효할 것이다. 아니, 오히려 더욱 절실해질 것이다. 기술이 발달할수록 인간다운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성찰이 더욱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가상현실 속 화려한 아바타와 현실의 진짜 자아 사이에서 우리는 또다시 디오게네스의 질문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견유학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유산은 바로 '용기'다. 남들과 다르게 살 용기, 불편한 진실을 마주할 용기, 기존 질서에 맞서는 용기. 때로는 모든 것을 버려야 진정 소중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는 역설적 지혜.

결국 디오게네스의 통은 물리적 공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유의 공간이었고, 성찰의 공간이었으며, 무엇보다 진실과 만나는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 통 속에서 발견한 진리들은 이제 통 밖으로 나와 우리 시대를 비춘다.

어둠 속에서 등불을 들고 "정직한 사람을 찾는다"며 아테네 거리를 헤매던 그 철학자의 외침이 지금 우리 귓가에 울린다. 우리는 그 등불을 이어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미지 출처 https://namu.wiki/w/%EB%94%94%EC%98%A4%EA%B2%8C%EB%84%A4%EC%8A%A4)

keyword
작가의 이전글도덕감정론-인간학 고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