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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본질

by 레옹

여행旅行을 풀이하자면 나그네가 길을 떠나는 것을 의미한다. 시인 두보나 김삿갓이 그랬듯이,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정처 없이 떠돌며 삶을 탐구하는 일종의 순례와 같은 것이다.

프랑스에서 시작하여 스위스, 다시 프랑스 그리고 지금은 스페인. 끊임없는 방랑 속에 가끔 생기는 소소한 인연들과 다사다난한 이야기들은 가나안 땅을 찾아 떠돌던 유대인들과 흡사한 여정이 아닐까 싶다.


바르셀로나 벙커에서 장장 4시간의 기다림. 아름다운 황금빛 야경을 마주하고자 추운 겨울바람을 맞아가면서 기다렸다. 여행 중에 수많은 야경을 보아왔지만 이토록 한 장소에 집착하고 긴 시간을 기다리며 사진을 찍은 적은 없었다. 하지만 바르셀로나의 야경은 그 인고의 시간을 보답받기에 충분했다. 황금의 도시가 있다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고향을 떠나온 지 거의 한 달. 인종차별도 받아보고, 노숙자에게 공격도 당해보고, 특히 바르셀로나에서는 길 잃은 개 세 마리에게 둘러 쌓여 생명의 위협을 느끼기까지. 그에 이어 다른 도시에 와 있는 지금은 벙커의 겨울바람과 그간의 여정에 지친 나머지 감기 몸살이 와서 앓아누웠다.



약 값만 12유로. 한국이면 2천 원, 3천 원이면 구하는 감기약이 스페인에서는 무려 만팔천 원. 대여섯 배의 차이에 아픈 것도 서러운데 금전적이 타격이 더해지고 아픈 몸에 방에서 요양을 하고 있는 처지를 돌아보면 어느새 우울함이 차오른다. 먼 타지에서 원숭이 마냥 손짓 발짓하며 대화를 해서 약을 얻고, 장대한 포부를 가지고 먼 길을 떠나 왔는데 앓아누운 꼴이라니. 비루하고 참담한 꼴이 아닌가.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여행 속에 정말 정처 없이 떠도는 나그네가 되어버린 듯한 기분이 든다. 온갖 박해와 위협 속에 과거 유목민들은 얼마나 힘겨운 삶이었을까 생각이 든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도 자신들을 잃어버리지 않은 그들을 보면 사람의 경이로운 생명력을 느낀다. 천년을 떠돌던 유대인, 황량한 초원에서 세계를 제패한 몽골, 서로마의 악몽이던 훈족이 그러하다. 또한 그렇게 살아남아 이룩한 그들의 역사와 문명을 보면 오히려 이 과정을 겪음으로써 그들이 그러한 업적이 이루어 낸 것이 아닐까 싶다.



흑연은 강한 열과 압력이 있어야만 다이아몬드가 되고, 소년은 모진 풍파를 겪어야 사내가 되는 법. 세상일이 내 마음대로만 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아프고 싶어서 아픈 것도 아닌 것을. 뭐 하러 우울해하며 고뇌에 빠져 있단 말인가? 내가 모든 것이 내 마음대로 되어야 행복한 사람이라면 나는 오히려 늘 불행한 사람일 것이다. 차라리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오히려 행복해지는 길이 될 것이다. 나는 마음대로 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하나하나를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과정 속에 의미를 쌓아가는 것이 이 여행의 본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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