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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가 편하다.

by 레옹

여행 초반에는 고독함에 취해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았다. 파리의 우울한 날씨도, 스위스의 자욱한 안개도, 리옹의 사무친 추위도 다 나를 약하게 하는 이유일 터였다. 화장실은 돈 내고 써야 해서 돈을 안내도 되는 화장실을 찾으러 사방을 쏘다니고, 처음인지라 어려운 대중교통과 한국과 다른 여러 현지 문화들은 나를 더욱 고립시켰다.



도와주는 사람은 없다. 다 혼자 해결해야 한다. 어글리 코리안이라고 힐난받을지라도 상관없다. 이것은 생존. 누군가의 도움을 기다리며 집 잃은 강아지처럼 낑낑대느니, 차라리 들개처럼 무례하더라도 원하는 것을 얻어내고야 만다.

다가오는 잡상인을 냉정하게 무시하고, 손목끈을 강매하는 흑인들에게 쌍욕을 퍼부어주고, 술병을 휘두르는 노숙자에게서 나를 지켰다.

모르는 게 있으면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노린다. 어르신들은 겉모습 멀쩡한 외국인이 길을 물어보면 흔쾌히 정보를 내어주었다. 전자 세계에서의 상황은 젊은이들에게 다가간다. 어설픈 영어와 프랑스어로 애써 물어보면 그들도 최소한이라도 아는 바를 설명해 준다.

레스토랑에 들어서면 웨이터의 안내에 모든 주문과 계산을 하지만, 나는 애써 그들을 기다리지 않았다. 눈을 마주쳐도 주문을 받으러 안 온다거나 계산서를 안 주면 내가 찾아가서 말을 했다. 무례하다 느껴도 어쩔 수 없다. 그들의 문화에 치여서 나를 챙기지 못하는 것은 멍청한 짓이다.

처음에는 워킹홀리데이 정착을 염두에 두었기에 열심히 적응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배움의 자세는 가끔 스스로를 낮추게 된다. 어느새인가 나를 모든 사람에게 맞추려고 하는 나 자신을 바라보자니 머리가 아팠다. 그들은 그들 그대로를 드러내면서 살고 있었다. 나는 왜 나를 드러내지 않는가. 잃을 수 있는 것을 모두 잃고 나면 결국 남는 것은 나뿐. 그들에게 모든 것을 얻어도 나보다 중요하지는 않을 터였다.



고독을 삼킨다. 행동원리를 정립하고, 목표를 설정하면, 행동한다. 먼 타지에서 이 한 몸 보중하려면 불필요한 허례와 허식은 덜어내는 것이 유리했다. 먹고 자고 입는 것 이외에 체면이나 품격은 내려놓는다. 다리가 아프면 계단이나 난간, 벤치를 찾아 털썩 앉는다. 배가 고프면 식료품 마트에서 바게트를 사서 곧장 뜯어먹는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노곤함을 느끼면 바로 퍼질러 잔다. 그야말로 짐승. 장기 여행에 필요한 것은 단 하나, 나의 생존이었다.



한 달이 다 되어 갈 즈음. 그래도 외로운 것은 방도가 없다. 카톡으로 가족과 친구들에게 연락을 해도, 얼굴을 마주하고 여행의 경험을 공유하고 긴 대화를 나누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는 커뮤니티를 활용해 여행을 함께할 사람을 구했다.

바르셀로나에서의 6박 7일. 하루도 빠짐이 없이 당일이든 식사든 동행을 구해서 외로움을 달래 보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동행을 함으로써 나는 내가 혼자여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일 동행을 구하면 상대와의 페이스 차이로 서로 피곤해지고, 서로가 원하는 것을 충족시켜 주지 못하는 상황에 불만이 생긴다. 그러므로 한두 번의 당일 동행 이후에는 식사 동행만을 시도했다.

식사 동행은 매우 수월했다. 마음에 맞는 사람들이 모이면 펍으로 2차를 가서 더 놀면 되고, 마음이 안 맞으면 식사를 마치고 헤어지면 되니까. 하지만 모든 것에는 적당히가 있는 법. 다양한 사람들과의 인연은 생각보다 피곤한 일이었다. 그 잠시의 식사 동안에도 서로를 가늠하려 하고 우열을 정하려고 하는 모습들. 애써 작은 떡고물이라도 취하려고 가짜 웃음을 지어내는 면모들. 서로가 자기 잘났다고 자랑하기 바쁜 꼴이라니.

어딜 가나 비슷한 광경들. 한국의 피곤한 일면을 먼 곳까지 와서 봐야 하다니 골치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결국 나는 외로움을 달래는 것 이상으로 외로움을 그리워하며, 말을 줄이고 정보 수집만 하며 동행을 마무리했다.



역시 불필요한 것들을 모두 빼고 나면 나만 남는 것. 나의 고독은 외로움이 아니고 처음 마주한 상황에 생소함을 느끼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과정의 일부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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