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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이 전사-신앙 군세

by 레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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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기 말 아나톨리아의 황량한 변경지대에서 한 무리의 전사들이 비잔틴 제국의 요새를 향해 말을 몰고 있었다. 그들은 흰 모자를 쓰고 곤봉을 들었으며, 자신들을 가즈이(Ghazi)라 불렀다. 이들은 단순한 약탈자도, 일반적인 용병도 아니었다. 그들은 신앙과 전투를 하나로 여기는 독특한 전사 집단이었으며, 그들의 검끝에서 곧 세계 역사를 뒤흔들 오스만 제국이 탄생하게 된다.

가즈이라는 단어는 아랍어 동사 '가자(ghazā)'에서 유래했는데, 이는 '군사 원정이나 습격을 수행하다'라는 뜻을 지닌다. 하지만 이 단어는 단순한 전투 행위 이상의 의미를 내포한다. 같은 어근에서 파생된 무자히드(Mujahid)처럼, 가즈이는 '분투하는 자'라는 종교적 차원의 의미를 함께 지녔다. 이들이 수행하는 가즈와(ghazwa), 즉 이슬람을 위한 군사적 원정은 세속적 전쟁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성격을 띠었다. 이는 신의 길에서 이루어지는 헌신이자, 이슬람 공동체를 확장하고 방어하는 신성한 의무였다.

가즈이 전사의 기원은 이슬람 초기 역사의 어둠 속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이슬람 시대 베두인 사회에서 가즈와는 정면 대결을 피하고 약탈과 습격을 강조하는 제한적 전쟁 형태였다. 주로 가축을 노획하는 것이 목적이었던 이 관행은 부족 간 갈등의 일상적 표현이었다. 우마이야 시대의 베두인 시인 알-쿠타미는 이러한 문화를 이렇게 표현했다. "우리의 업은 적을, 이웃을, 그리고 우리 형제를 습격하는 것이다. 습격할 형제 외에 아무도 찾지 못한다면 말이다." 이슬람의 예언자 무함마드는 이러한 끊임없는 내부 전쟁을 외부 적으로 돌리는 것이 유용하다고 판단했으며, 이를 전쟁 전략의 기초로 삼았다. 유명한 바드르 전투 역시 이러한 라지아(razzia), 즉 습격 작전의 하나로 시작되었다.


이슬람이 확장되면서 가즈이 제도는 더욱 조직화되고 종교적 정당성을 부여받았다. 사만 왕조 시대에 이르면 가즈이들은 호라산과 트란스옥시아나 지역에서 용병이자 변경 전사로 활동했다. 특히 가즈니의 마흐무드가 인도 원정에 나섰을 때, 무려 2만 명의 가즈이 전사들이 그의 군대에 참여했다. 이들은 전리품을 생계 수단으로 삼았기 때문에 평화 시기에는 도적질과 반란에 가담하기 쉬웠다. 하지만 그들이 조직한 집단은 모든 민족의 모험가, 광신자, 종교적·정치적 반체제 인사들을 끌어들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투르크계 민족 출신의 전사들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는데, 이는 칼리프와 에미르의 맘루크 부대에서 투르크 노예가 점차 증가하는 현상과 궤를 같이했다.

서쪽에서 투르크계 가즈이들은 비잔틴 제국의 변경 지대를 따라 끊임없이 침투했다. 그들은 아크리타이(akritai)라 불리는 그리스 변경 전사들과 마주쳤다. 1071년 만지케르트 전투 이후 이러한 침투는 더욱 격렬해졌으며, 이 지역 사람들은 가즈이 집단들이 반기사도적 형제단으로 결집하는 것을 목격했다. 흰 모자와 곤봉이 그들의 상징이 되었다. 몽골의 침략이 시작되자 페르시아와 투르키스탄에서 많은 가즈이들이 아나톨리아로 도피했고, 이것이 이 조직의 전성기를 가져왔다.


조직으로서 가즈이 집단은 유동적이었으며, 그들의 민중적 성격을 반영했다. 개별 가즈이 전사들은 특정 에미르의 명성과 성공에 따라 집단 사이를 자유롭게 오갔는데, 이는 서방의 콘도티에레를 중심으로 한 용병 부대와 유사했다. 이러한 가즈와를 통해 정복된 아나톨리아 영토에서 오스만 제국이 등장했다. 전설에 따르면 오스만 제국의 창시자 오스만 1세는 세이크 에데 발리의 영감 덕분에 가즈이로 나섰다고 한다.

오스만 제국 초기 역사에서 가즈와 제도는 국가 형성의 핵심이었다. 1337년 부르사 모스크 건립에 관한 비문에서 오스만 왕조의 두 번째 통치자 오르한은 자신을 이렇게 묘사했다. "가즈이들의 술탄의 아들인 술탄, 가즈이의 아들인 가즈이… 지평선의 변경 영주." 이 칭호는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오스만 통치자들의 정체성과 정당성의 핵심을 이루었다. 오스만 역사가 아메디는 가즈이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가즈이는 알라 종교의 도구이며, 다신교의 오염으로부터 대지를 정화하는 신의 종이다. 가즈이는 신의 검이며, 신자들의 보호자이자 피난처다. 만약 그가 신의 길에서 순교자가 된다면, 그가 죽었다고 믿지 말라. 그는 알라와 함께 지복 속에 살며, 영생을 얻은 것이다."

오스만 제국의 처음 아홉 명의 수장들은 모두 그들의 완전한 칭호에 가즈이를 포함시켰다. 비록 이것이 술탄 울 무자히딘(Sultan ul-Mujahidin)처럼 공식 칭호로 굳어지지는 않았지만, 가즈이로서의 명성은 오스만 술탄들에게 정치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결정적 요소였다. 칼리프의 마지막 왕조이기도 했던 오스만 술탄들은 이슬람 세계에서 가즈이로서 누리는 명성을 수호하고 강화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발칸 반도에서 승리를 거둘 때마다 그들은 동방의 이슬람 군주들에게 승전보(페트나메)와 함께 노예와 전리품을 보냈다. 1396년 니코폴리스에서 십자군을 격파한 바예지드 1세가 카이로, 바그다드, 타브리즈로 보낸 기독교 기사들은 거리를 행진했으며, 오스만 제국을 지지하는 대규모 시위를 촉발했다.

가즈이라는 칭호는 나중에 오스만 제국에서 비이슬람 적과의 전투에서 탁월한 업적을 세운 고위 장교들에게 주어지는 영예의 칭호가 되었다. "승리자"로 번역되는 이 칭호는 불가리아의 플레브나를 유명하게 방어한 오스만 파샤에게 수여되었으며, 사카리아 전투를 승리로 이끈 무스타파 케말 파샤(훗날 아타튀르크)에게도 수여되었다. 케말 파샤는 단순한 군사 지도자가 아니라 터키 민족의 생존을 위해 싸운 현대의 가즈이로 칭송받았다.


가즈와의 전술적 측면을 이해하는 것은 이 제도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중요하다. 이슬람 전쟁의 맥락에서 가즈와의 기능은 적의 방어를 약화시켜 궁극적인 정복과 복속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전형적인 가즈와 습격대는 군사적·영토적 목표를 장악할 만한 규모나 힘이 없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약하게 방어된 목표물(예: 마을)을 기습 공격하여 적의 사기를 꺾고 그들의 군사력을 지원할 수 있는 물자를 파괴하는 것을 의미했다. 이슬람의 전쟁 규칙은 여성, 수도승, 농민 같은 비전투원을 살해할 수 없도록 보호했지만, 그들의 재산은 여전히 약탈되거나 파괴될 수 있었고, 그들 자신도 납치되어 노예가 될 수 있었다.

이러한 가즈와의 공포를 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이슬람 국가의 신민이 되는 것이었다. 비이슬람교도들은 딤미(dhimmi)라는 지위를 얻어 국가의 보호 아래 살았다. 대부분의 기독교 문헌은 오스만 정복의 이 두 단계를 혼동한다. 그러나 오스만 제국은 이러한 규칙을 주의 깊게 준수했다. 가즈이들의 무시무시한 맹공에 직면한 '전쟁의 땅'에 살던 주민들은 종종 기독교 국가들의 무능한 보호를 포기하고 오스만 제국의 신민이 되는 것에서 피난처를 찾았다. 특히 개방된 시골의 농민들은 이러한 변화로 인해 잃을 것이 거의 없었다.


19세기에도 가즈와 개념은 여전히 살아있었다. 북카프카스의 이슬람 전사들이 러시아의 군사 작전에 저항하며 러시아 정교 침략에 맞서 가자왓(gazawat, 가즈와의 방언형)을 선포했다. 1825년 야라그 마을의 울레마 회의는 러시아에 맞서 가자왓을 선언했다. 첫 번째 지도자는 가지 무함마드였고, 그의 죽음 후 이맘 샤밀이 이를 계승했다. 이들은 제국주의 팽창에 맞서 자신들의 땅과 신앙을 지키기 위해 싸웠으며, 가즈이 정신이 단순한 중세적 유물이 아니라 억압에 맞선 저항의 원동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현대 터키에서 가지(gazi)라는 단어는 재향군인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된다. 9월 19일은 터키의 재향군인의 날로 기념된다. 이는 가즈이 개념이 종교적 정복 전쟁에서 민족적 방어와 군사적 희생에 대한 존경으로 진화했음을 보여준다. 한때 비잔틴 제국의 변경을 누비던 전사들의 후예는 이제 국가를 위해 복무한 이들을 기리는 날에 그 흔적을 남겼다.

가즈이 전사들은 단순히 칼을 든 종교적 광신자도, 탐욕스러운 약탈자도 아니었다. 그들은 복잡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 신앙, 생계, 정체성을 결합한 독특한 사회적 존재였다. 아나톨리아의 황량한 변경에서 시작된 그들의 움직임은 결국 600년 동안 세 대륙을 지배한 제국의 토대가 되었다. 오스만 제국의 창립자 오스만 1세부터 근대 터키 공화국의 아버지 무스타파 케말까지, 가즈이라는 칭호는 이슬람 역사에서 전사, 영웅, 그리고 국가 건설자를 의미하는 강력한 상징으로 남아있다. 그들의 이야기는 종교적 신념이 어떻게 군사적 조직과 결합하여 역사를 형성할 수 있는지, 그리고 변경의 전사들이 어떻게 제국의 건설자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이미지 출처 https://ko.wikipedia.org/wiki/%EC%98%A4%EB%A5%B4%ED%95%9C_%EA%B0%80%EC%A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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