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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게임 체인지

by 레옹

돈이 수단에서 목적으로 자리를 바꾼 순간, 우리 사회는 예측 가능한 파국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현대 화폐시스템의 가장 큰 모순은 인플레이션이다. 돈이 많아질수록 돈의 가치는 떨어진다. 과거 금이나 은은 물리적 한계가 화폐 가치의 안정성을 보장했지만, 현대의 돈은 중앙은행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언제든 찍어낼 수 있는 숫자에 불과하다.


문제는 돈이 주인이 된 사회에서 이 무한 증식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경제성장 압박 → 더 많은 유동성 필요 → 화폐 공급 증가 → 인플레이션 → 더 큰 성장 압박

이 악순환에 개인도, 기업도, 국가도 모두 갇혀 있다.


인플레이션의 진짜 문제는 구매력 하락이 아니라 불평등 심화다. 부모 세대가 1000만 원으로 살 수 있었던 것을 현세대는 3000만 원을 내야 산다. 능력이나 노력과 무관하게 '언제 태어났는가'가 계급을 결정하는 부조리한 상황이 벌어진다.

특히 부동산에서 이 현상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같은 집을 두고 10년 차이로 산 사람들 사이에 수억 원의 차이가 발생한다. 이는 개인의 능력과는 전혀 무관한, 순전히 시간적 운에 의한 격차다.



현대 사회에서 가장 충격적인 현상은 '부의 신계급'의 등장이다. 이들의 핵심 특징은 실제 가치를 생산하지 않으면서도 가장 많은 부를 축적한다는 점이다.


농부: 곡식을 기른다 (실물 가치 창조)

의사: 병을 고친다 (생명 가치 창조)

엔지니어: 기술을 개발한다 (혁신 가치 창조)

부의 신계급: 돈으로 돈을 만든다 (가치 이동만 존재)


역설적이게도 마지막 그룹이 가장 많은 부를 축적한다. 평생 환자를 치료한 의사보다 의료 주식을 거래한 투자자가, 수십 년간 기술을 개발한 엔지니어보다 적절한 타이밍에 주식을 산 사람이 더 부자가 된다.


부의 신계급의 진짜 힘은 규모의 경제와 복리 효과에 있다.


1억 원 투자로 10% 수익 → 1000만 원 이익

100억 원 투자로 10% 수익 → 10억 원 이익


같은 비율이라도 절대적 규모에서는 비교할 수 없는 차이가 난다. 더 중요한 것은 일정 규모 이상의 자산을 가지면 그것이 스스로 증식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는 점이고 이것을 세습하며 결과적으로 부의 신계급은 새로운 형태의 세습 귀족이 되었다.



중간층의 가장 큰 착각은 "나도 투자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이다. 하지만 이는 게임의 기본 룰을 오해한 것이다.

부의 신계급은 중간층이 접근할 수 없는 3가지 핵심 우위를 갖고 있다


정보 우위: 상장 전 주식, 정책 변화 사전 정보, 업계 내부 소식

자본 우위: 대형 프로젝트 참여 기회, 기관투자자 전용 상품 접근

네트워크 우위: 핵심 의사결정자들과의 직접적 관계


더 근본적인 문제는 게임 자체가 구조적으로 불공정하다는 점이다


중간층: 잃을 수 없는 돈(생활비, 노후자금)으로 이길 수 없는 게임을 한다

부의 신계급: 여유로운 돈(잉여 자본)으로 이길 확률이 높은 게임을 한다


중간층이 투자에서 손실을 보면 생활에 직접적 타격을 받지만, 부의 신계급에게는 그런 손실이 전체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하다.



이 구조적 불평등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게임의 룰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남들이 만든 게임에서 경쟁하지 말고, 아예 새로운 게임을 만들어서 그 게임의 창시자가 되는 것이다.

핵심은 '시장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시장을 만드는 것'이다. 부의 신계급이 '돈으로 돈을 만드는' 방식에 매몰되어 있는 동안, 우리는 '독점적 가치를 창조해서 돈을 버는' 방식으로 승부해야 한다.


기존의 투자 게임에서 벗어나려면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해야 한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이 생각하는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이 실제로는 이미 포화 상태라는 점이다. 진짜 기회는 불편하고 복잡하고 지저분한 곳에 있다. 모든 사람이 피하고 싶어 하는 그런 영역에서만 독점적 지위를 확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누구나 유튜브 크리에이터나 인플루언서가 되려고 하지만, 정작 산업폐기물 처리나 노인 돌봄 같은 분야는 기피한다. 하지만 후자야말로 진짜 수요가 있고, 경쟁이 적으며, 사회가 반드시 필요로 하는 영역이다.


핵심은 '싫어하지만 필요한 것'을 찾는 것이다.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일수록 그것을 잘하는 사람의 가치는 높아진다. 그리고 그런 영역에서는 자본의 힘보다 실제 역량이 더 중요하다.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원칙들이 유효하다


복잡성을 활용하라: 규제가 복잡하고 진입장벽이 높은 분야일수록 기회가 크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복잡성 때문에 포기하기 때문이다.

시간차를 이용하라: 모든 사람이 눈치채기 전에 미리 준비해야 한다. 하지만 너무 앞서가면 시장이 형성되기 전에 지쳐버린다. 3-5년 정도의 시간차가 적당하다.

네트워크를 자산으로 만들어라: 돈은 누구나 가질 수 있지만, 신뢰와 관계는 쉽게 복제할 수 없다. 특정 분야에서 '그 사람이면 해결할 수 있다'는 평판을 쌓는 것이 가장 강력한 자산이다.


물론 이런 개인적 전략들이 사회 구조 전체를 바꾸지는 못한다. 부의 신계급이 갖고 있는 시스템적 우위는 여전히 남아있고,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이 결합된 구조를 개인이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이유는 없다. 거대한 시스템을 바꿀 수는 없어도, 최소한 우리 개인의 삶에서만큼은 돈을 다시 도구의 자리로 되돌려 놓을 수 있다.


우리는 수단이 목적을 완전히 전복시킨 전례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과거 권력자들은 적어도 '무언가'를 했지만, 지금의 부의 신계급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가장 많은 것을 가져간다.

이는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니다. 창조가 투기에 밀리고, 실제 가치가 숫자 놀음에 패배하는 상황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이런 시스템은 결국 스스로를 파괴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파괴를 기다려야 할까? 아니다. 지금이야말로 새로운 게임의 규칙을 만들 기회다. 개인의 선택이 모여 시대를 전환시키는 힘이 된다.

도구는 도구의 자리에, 인간은 인간의 자리에. 이것이 바로 우리가 되찾아야 할 세상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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