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장의 사진으로 시작되는 소설이 있다. 첫 번째 사진 속 소년은 기묘하게 웃고 있다. 두 번째 사진의 청년은 어딘가 불안하고, 세 번째 사진의 남자는 이미 늙어버린 듯하다. 사진을 보는 익명의 화자는 그를 '괴물'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어지는 수기를 읽고 나면, 우리는 전혀 다른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은 이렇게 시작된다. 외부에서 본 모습과 내면의 진실 사이의 끔찍한 괴리, 그것이 이 소설의 본질이다.
수기의 주인공 오바 요조는 유복한 집안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의원인 아버지, 여러 명의 형제들, 하인들이 있는 큰 저택. 겉으로 보기에 그는 모든 것을 가진 아이였다. 하지만 요조에게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다. 그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배고픔이란 무엇인가? 왜 사람들은 화를 내는가? 무엇이 그들을 기쁘게 하는가? 이 모든 것이 요조에게는 수수께끼였다. 어느 날 저녁 식사 자리에서 사자머리 모양의 요리가 나왔다. 요조는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했지만, 입을 열 수 없었다. 그런 질문을 하는 것조차 '정상적이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작은 에피소드는 요조의 삶 전체를 요약한다. 그는 항상 질문을 삼키고, 가면을 써야 했다.
그래서 요조가 선택한 것이 '어릿광대'였다. 학교에서 일부러 계단을 굴러 떨어지고, 이상한 동작으로 친구들을 웃긴다. 사람들이 웃으면, 적어도 그들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같은 반 타케이치라는 아이가 어느 날 그에게 속삭인다. "너, 일부러 그런 거지?" 요조는 온몸이 얼어붙는다. 자신의 연기가 들통났다는 공포, 그것은 평생 그를 따라다닐 악몽이 된다.
고등학교 시절, 요조는 도쿄로 올라간다. 그리고 운명적으로 호리키를 만난다. 호리키는 화가 지망생으로 나이도 많고 세상 물정에 밝다. 그는 요조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다. 술, 담배, 창녀, 그리고 좌익 사상. 요조는 마르크스주의 모임에 참여하지만, 진정으로 신념이 있어서는 아니다. 거기서도 그는 어릿광대를 연기할 뿐이다. 이 시기 요조가 만난 여성이 츠네코다. 긴자의 카페에서 일하는 그녀 역시 삶에 지쳐 있었다. 두 사람은 특별한 애정 없이, 그저 함께 죽기 위해 가마쿠라 바다로 간다.
하지만 죽음조차 요조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츠네코만 죽고 요조는 살아남는다. 자살방조죄로 기소되지는 않았지만, 이 사건은 요조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는다. 고향에서 아버지가 보낸 하인이 요조를 데려가고, 학교에서는 제적당한다. 무엇보다 요조 스스로가 자신을 '인간 실격자'로 낙인찍는다. 죽으려 했던 사람이 살아남았다는 사실, 그것 자체가 수치였다.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은 그를 평생 괴롭힌다.
이후 요조는 아버지의 친구인 히라메의 집에 얹혀 산다. 히라메는 잡지사 사장으로, 겉으로는 요조를 돌봐주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감시자다. 요조는 근근이 만화를 그리며 생활한다. 이 시기 그가 만난 것이 담배 가게 딸 시게코다. 순박한 소녀 시게코는 요조를 진심으로 좋아한다. 하지만 요조는 그녀의 순수함을 이용만 할 뿐이다. 시게코가 임신했다고 말하자 요조는 패닉에 빠진다. 낙태 수술을 받게 하지만, 이 과정에서 요조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혔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타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였지만, 상처를 준다는 것만큼은 너무나 선명하게 느꼈다.
그러던 중 요조는 요시코를 만난다. 열일곱 살의 요시코는 세상의 악을 전혀 모르는 천사 같은 존재다. 그녀의 아버지가 죽은 후, 요조는 그녀를 돌봐주겠다며 결혼한다. 처음으로 요조는 평화를 느낀다. "신뢰. 그것은 아마도 사랑보다 더 깊고 고귀한 감정일지도 모른다"고 그는 생각한다. 요시코의 순수함 앞에서 요조는 자신도 깨끗해질 수 있다고 믿기 시작한다. 이것이 구원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날 밤이 모든 것을 파괴한다. 만화 출판사 일로 늦게 귀가한 요조는 이상한 광경을 목격한다. 요시코는 옷이 흐트러진 채 넋을 잃고 앉아 있고, 히라메가 당황한 표정으로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명백하다. 히라메가 요시코를 성폭행한 것이다. 하지만 요조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히라메를 고발할 용기도, 요시코를 위로할 자격도 자신에게 없다고 느낀다. 더 끔찍한 것은 요조가 요시코를 의심하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그녀가 정말 완전히 결백했을까? 어쩌면 조금은... 이러한 의심은 전적으로 요조 자신의 왜곡된 시각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그는 멈출 수 없다. 요시코의 순수함조차 이제는 믿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신뢰가 무너지는 순간, 세계 전체가 무너진다.
요조는 요시코를 떠나 교외의 허름한 집으로 간다. 근처 술집의 마담 시즈코가 그를 아들처럼 돌봐준다. 시즈코는 과거가 있는 여자지만, 요조를 판단하지 않는다. 이곳에서 요조는 처음으로 '어릿광대'를 연기하지 않아도 되는 안식을 얻는다. 하지만 이것은 회복이 아니라 포기다. 요조는 더 이상 인간이 되려 노력하지 않는다. 그저 존재할 뿐이다.
기침 때문에 산 진해제, 그 안에 든 모르핀이 요조의 마지막 도피처가 된다. 처음에는 기침을 멈추기 위해서였지만, 곧 그는 약 없이 견딜 수 없게 된다. 환각을 보고, 밤중에 약을 찾아 헤매는 그의 모습은 이미 인간이 아니다. 시즈코가 형들에게 연락하고, 요조는 강제로 정신병원에 입원한다.
정신병원의 철창 안에서 요조는 항변한다. 자신은 미치지 않았다고. 하지만 아무도 믿지 않는다. 형이 면회를 와서 말한다. "더 이상 집안에 폐를 끼치지 마라. 넌 이제 폐인이야." 이 말은 최종 선고처럼 들린다. 가족으로부터도, 사회로부터도 완전히 버림받았다는 선고.
병원에서 나온 후 시즈코의 집으로 돌아온 요조는 이미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스물일곱 살에 그는 자신을 '늙은이'라고 부른다. 수기는 이렇게 끝난다. "지금의 나는 죄악 없는 인간이다. 불행도 아니다. 모든 것이 지나갔다." 이것은 평화가 아니라 공허다. 더 이상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영혼이 죽은 상태.
여기서 소설의 천재성이 드러난다. 에필로그에서 마담 시즈코는 요조를 이렇게 평가한다. "우리 요짱은 정말 착한 애였어요. 신 같은 아이였죠." 이 한 마디가 모든 것을 뒤흔든다. 괴물인가, 천사인가? 파멸한 폐인인가, 순수한 영혼인가? 다자이는 답을 주지 않는다. 요조를 괴물로 보는 세상의 시선, 자신을 실격자로 규정하는 요조 본인의 시선, 그를 천사로 기억하는 시즈코의 시선. 어느 것이 진실인가?
어쩌면 모두가 진실이다. 인간이란 한 가지 시각으로 규정될 수 없는 존재다. 요조의 비극은 그가 너무 인간적이었다는 데 있다.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성'의 가면을 쓰지 못했고, 그래서 추방당했다. 동물은 자신의 존재 의미를 묻지 않는다. 오직 인간만이 '나는 인간답지 못하다'고 스스로를 판결할 수 있다. 요조가 '인간 실격'을 선고한 것은 역설적으로 그가 가장 인간적이었다는 증거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현대인의 초상을 발견한다. SNS 시대를 사는 우리 역시 끊임없이 가면을 쓴다. 행복한 척, 성공한 척하면서 진짜 자신을 감춘다. 요조의 어릿광대 전략은 극단적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우리 모두의 생존 전략과 다르지 않다. 다만 요조는 이 가면과 진짜 자신 사이의 괴리를 견디지 못했다. 그는 우리보다 정직했고, 그래서 파멸했다.
다자이 오사무는 이 소설을 통해 전후 일본 사회의 혼란을 담아냈다. 전쟁으로 모든 가치가 붕괴된 시대, 사람들은 무엇이 옳은지 알 수 없었다. 요조의 정체성 혼란은 개인의 문제이자 시대의 문제였다. 그가 좌익 사상에 흥미를 느끼다가 곧 환멸을 느끼는 과정은, 이념조차 구원이 될 수 없었던 시대를 반영한다.
하지만 『인간실격』은 단순히 절망만을 말하지 않는다. 요조는 파멸했지만, 그의 수기는 남았다. 우리는 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자신 안의 가면을 발견하고, 타인과의 진정한 소통이 얼마나 어려운지 깨닫는다. 이 불편함이야말로 이 소설의 가치다. 다자이는 우리에게 상처를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상처 입은 존재임을 인정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인정이 어쩌면 치유의 첫걸음이 될 수 있다.
다자이 오사무는 이 소설을 완성하고 한 달 후 여인과 함께 다마가와 운하에 투신했다. 요조처럼, 그 역시 인간 사회에서 끝내 자리를 찾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남긴 이 작품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전 세계 독자들에게 읽힌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고독과 아픔은 시대를 초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는 요조다. 다만 우리 대부분은 그만큼 정직하지 못할 뿐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 '정직하지 못함'이 우리를 살아있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미지 출처 https://namu.wiki/w/%EC%9D%B8%EA%B0%84%EC%8B%A4%EA%B2%A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