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이상과 광기의 대화

by 레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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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5년, 미겔 데 세르반테스가 세상에 내놓은 『돈키호테』는 단순한 기사소설 패러디를 넘어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문학적 혁명이었다. 이 작품은 출판 즉시 유럽 전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오늘날까지도 세계 문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이 소설이 지닌 진정한 가치는 그것이 제기하는 근본적인 물음에 있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광기와 이성의 경계는 과연 명확한가? 그리고 세상이 조롱하는 꿈을 좇는 것은 정말로 어리석은 일인가?


세르반테스는 57세의 나이에 이 작품을 썼다. 그의 삶 자체가 하나의 모험담이었다. 1547년 9월 29일, 마드리드 근처 알칼라 데 에나레스에서 태어난 그는 가난한 이발외과의의 일곱 자녀 중 넷째였다. 그의 아버지 로드리고 데 세르반테스는 청각장애인으로, 뼈를 맞추고 사혈을 하며 간단한 의료 행위를 하는 하급 의료인이었다. 가족은 아버지의 일자리를 찾아 발라돌리드, 코르도바, 세비야, 마드리드 등 스페인 전역을 떠돌았고, 세르반테스는 1552년에서 1553년 사이 아버지가 채무자 감옥에 갇혔을 때도 그 고난을 함께했다. 그가 어떤 정규 교육을 받았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열렬한 독서가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569년, 22세의 세르반테스는 갑자기 마드리드를 떠나 로마로 향했다. 일부 기록에 따르면 그는 결투로 안토니오 데 시구라를 부상시켜 오른손을 자르고 10년간 추방당하는 선고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로마에서 그는 추기경 줄리오 아쿠아비바의 시종이 되었고, 1570년에는 정규군에 입대했다. 1571년, 그는 디에고 데 우르비나 대위의 중대에 소속되어 돈 후안 데 아우스트리아가 이끄는 함대의 일원으로 레판토 해전에 참전했다. 전투 당일 그는 열병으로 갑판 아래 누워 있었지만, 동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싸우겠다고 고집했다. 그는 갤리선 마르케사호의 가장 노출된 위치에 12명의 부하를 이끌고 배치되었고, 치열한 전투에서 가슴에 두 발의 총상을 입었으며 왼손이 영구적으로 불구가 되었다. 이 부상으로 그는 "레판토의 애꾸손"이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그는 평생 이것을 명예의 표식으로 여겼다.


1575년 9월, 세르반테스는 동생 로드리고와 함께 스페인으로 돌아가던 중 터키 해적들에게 붙잡혔다. 그는 돈 후안 데 아우스트리아가 직접 쓴 추천서를 소지하고 있었는데, 이것이 오히려 화근이 되어 해적들은 그를 중요한 인물로 여기고 높은 몸값을 요구했다. 알제리에서 5년간 노예로 지내는 동안, 세르반테스는 최소 네 차례 탈출을 시도했다. 첫 번째 시도에서 그는 동료 포로들과 함께 오란으로 가려 했지만 안내인이 배신하여 실패했다. 두 번째 시도에서는 숨어 있던 동굴이 발각되었다. 세 번째로는 동료들과 함께 스페인 선박으로 탈출하려 했지만 밀고로 좌절되었고, 네 번째 시도에서는 알제리 총독 관저를 점령하려는 대담한 계획을 세웠으나 역시 실패했다. 놀랍게도 그의 주인인 달리 마미와 하산 파샤는 그의 용기와 리더십에 감탄하여 비교적 관대하게 대했다. 1580년 9월, 마침내 가족과 삼위일체 수도회가 모은 500 금 에스쿠도의 몸값으로 그는 풀려났다. 동생 로드리고는 3년 전에 이미 석방되었지만, 세르반테스의 몸값은 그가 중요 인물로 여겨져 훨씬 높았다.


귀국 후 세르반테스의 삶은 계속해서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는 극작가로 성공하려 했지만 로페 데 베가의 그늘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다. 1584년 포르투갈 여배우 아나 프랑카 데 로하스와의 사이에서 딸 이사벨 데 사베드라를 얻었고, 같은 해 부유한 농부의 딸 카탈리나 데 살라자르 이 팔라시오스와 결혼했지만 행복한 결혼생활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1585년 그는 첫 소설 『라 갈라테아』를 출판했지만 별다른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생계를 위해 그는 무적함대의 군수품 조달관이 되었고, 나중에는 세금 징수원으로 일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세비야 대성당장의 물자를 압류했다가 일시적으로 파문을 당했고, 회계 부정 혐의로 1597년과 1602년 최소 두 차례 투옥되었다. 한 번은 그가 맡긴 돈을 은행가가 횡령하여 파산한 것이 원인이었지만, 세르반테스가 책임을 졌다.


1605년, 돈키호테 제1부가 출간되었을 때 세르반테스는 58세였고, 여전히 가난했다. 이 작품은 즉시 엄청난 성공을 거두어 그해 안에 여러 판이 인쇄되었고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지만, 당시 저작권 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그는 출판권을 팔고 받은 일시금 외에는 아무런 수익도 얻지 못했다. 1605년 6월, 발라돌리드에서 칼부림 사건이 발생했고 세르반테스의 집 앞에서 부상자가 발견되어 그와 가족들이 조사를 받았다. 그는 혐의에서 벗어났지만, 이 사건 관련 증언록은 그가 제1부 출판 5개월 후에도 여전히 극심한 가난 속에 살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1613년 그는 『모범소설집』을 출판했고, 1614년에는 장편 풍자시 『파르나소스 여행』을 발표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시인으로 여기지 않았으며, 연극에 대한 열정에도 불구하고 그 분야에서도 성공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1614년, 알론소 페르난데스 데 아베야네다라는 필명의 작가가 무단으로 돈키호테 속편을 출판하자, 세르반테스는 서둘러 자신의 정식 제2부를 완성했다. 1615년 제2부가 출간되었고, 이 역시 큰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병들어 있었다. 그의 마지막 작품 『페르실레스와 시히스문다의 고난』의 서문은 문학사에서 가장 비통하고 장엄한 고별사 중 하나로 꼽힌다. 그는 이렇게 썼다. "이미 한 발을 등자에 걸치고 죽음의 고통 속에서, 위대한 군주여, 저는 당신에게 이 글을 씁니다." 1616년 4월 22일, 세르반테스는 마드리드에서 6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공교롭게도 이는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사망한 것과 같은 달이었다. 그는 마드리드의 한 수녀원 묘지에 묻혔지만 정확한 위치는 표시되지 않았고, 후대에 그의 유골을 찾으려는 노력이 있었지만 확실하게 확인되지 못했다.


세르반테스의 삶은 그가 창조한 돈키호테의 삶과 기묘하게 평행한다. 그 역시 이상을 좇았고, 현실에 부딪혔으며, 좌절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레판토에서의 영웅적 행위, 알제리에서의 불굴의 탈출 시도, 문학적 성공을 향한 집요한 추구는 모두 돈키호테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 그는 가난과 무명 속에서 대부분의 삶을 보냈지만, 결국 세계 문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작품 중 하나를 남겼다. 돈키호테라는 인물은 단순히 기사도 소설에 미친 노인이 아니라, 세르반테스 자신의 좌절과 이상, 용기와 끈기, 그리고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이 투영된 복합적 존재다. 라만차의 한 마을에 사는 50세 가량의 양반 알론소 키하노는 『아마디스 데 가울라』를 비롯한 기사도 소설에 빠져 자신의 땅을 팔아가며 책을 사들인다. 밤낮으로 이 책들을 탐독하던 그는 마침내 이성을 잃고, 스스로 편력기사가 되어 세상의 부정의를 바로잡고 약자를 구하기로 결심한다.


알론소 키하노가 돈키호테 데 라만차로 거듭나는 과정은 정교하게 묘사된다. 그는 증조부의 녹슨 갑옷을 찾아내 광을 내고, 마분지로 투구의 얼굴 가리개를 만든다. 하지만 그것이 너무 약해 칼로 한 번 내려치자 산산조각이 나버린다. 그는 다시 만들되 이번에는 튼튼함을 시험하지 않기로 한다. 이 장면은 그의 모험 전체를 예고한다. 그는 현실을 시험하지 않으려 하며, 자신의 환상이 깨지지 않도록 세심하게 관리한다. 그는 자신의 여윈 말에 로시난테, 즉 "이전에는 둔한 말이었으나 이제는 모든 말 중 으뜸"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그리고 기사에게는 숭배할 귀부인이 필요하다며, 이웃 마을의 농가 처녀 알도사 로렌소를 둘시네아 델 토보소라는 이름의 공주로 승격시킨다. 그는 한 번도 그녀에게 말을 걸어본 적이 없지만, 상상 속에서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결한 여인이 된다.


첫 번째 출정에서 돈키호테는 혼자 길을 나선다. 그는 여관을 성으로 착각하고 여관 주인을 성주로 본다. 그는 주인에게 자신을 정식 기사로 서임해달라고 간청하고, 황당해하면서도 호기심을 느낀 주인은 그의 청을 들어준다. 여관 뜰에 세워둔 돈키호테의 갑옷을 노새 몰이꾼들이 치우려 하자, 돈키호테는 그들을 공격하고 소동이 벌어진다. 여관 주인은 서둘러 의식을 진행하고 그를 내보낸다. 길에서 돈키호테는 주인에게 매를 맞고 있는 어린 목동 안드레스를 발견한다. 그는 주인 후안 알다도를 위협하여 소년을 풀어주고 밀린 임금을 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낸다. 하지만 돈키호테가 떠나자마자 주인은 소년을 더 심하게 때린다. 돈키호테의 선의가 오히려 더 큰 해악을 낳는 것이다. 이어서 그는 톨레도의 상인들을 만나 둘시네아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인정하라고 강요한다. 상인들이 조롱하자 돈키호테는 그들을 공격하지만, 로시난테가 넘어지며 그도 함께 쓰러진다. 상인의 하인이 그를 무자비하게 구타하고, 그는 만신창이가 되어 이웃 농부에게 발견되어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서 회복하는 동안, 돈키호테의 조카와 가정부, 그리고 마을의 신부와 이발사는 그의 서재를 조사한다. 그들은 돈키호테를 미치게 만든 원흉으로 기사도 소설들을 지목하고 대부분을 불태워버린다. 하지만 돈키호테가 깨어났을 때, 그는 이를 마법사의 소행으로 해석한다. 그리고 그는 두 번째 출정을 계획한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다. 그는 이웃 마을의 순박한 농부 산초 판사를 종자로 삼는다. 산초는 둔하고 무식하지만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인물이다. 돈키호테는 그에게 섬 하나를 주겠다고 약속하고, 산초는 이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 당나귀를 타고 주인을 따른다.


풍차 에피소드는 소설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이다. 들판에서 서른서너 개의 풍차를 발견한 돈키호테는 이들을 흉악한 거인들로 착각한다. 산초가 저것들은 풍차라고 말하지만, 돈키호테는 산초가 전투를 두려워한다고 생각하며 홀로 돌격한다. 그는 창을 풍차 날개에 꽂지만, 바람에 돌아가는 날개가 그를 공중으로 띄워 올렸다가 내동댕이친다. 산초가 달려가 주인을 일으키며 자신의 경고를 무시했다고 말하자, 돈키호테는 마법사 프레스톤이 거인들을 풍차로 변신시켜 자신의 승리를 가로막았다고 주장한다. 이 장면은 단순한 희극이 아니다. 돈키호테는 물리적으로 패배하지만 정신적으로는 굴복하지 않는다. 그의 세계관은 어떤 반증에도 흔들리지 않도록 완벽하게 자기완결적이다.


이어지는 모험들에서 돈키호테와 산초는 수많은 충돌을 겪는다. 돈키호테는 먼지를 일으키며 다가오는 양 떼를 거대한 군대로 착각하고 공격한다. 양치기들이 돌을 던져 그의 이를 부러뜨리지만, 그는 이 역시 마법의 탓으로 돌린다. 그는 장례 행렬을 보고 악당들이 귀부인의 시체를 운반한다고 생각하여 습격한다. 그는 이발사가 머리에 쓴 놋쇠 대야를 전설적인 맘브리노의 투구로 착각하여 빼앗는다. 산초가 그것이 대야라고 지적하자, 돈키호테는 자신에게는 투구로 보이지만 산초에게는 대야로 보이는 것이 마법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흥미롭게도 산초는 점차 주인의 논리에 익숙해지고, 심지어 그것을 내면화하기 시작한다.


가장 중요한 에피소드 중 하나는 갤리선 죄수들을 풀어주는 장면이다. 돈키호테는 죄수들이 자신의 의지가 아닌 왕의 명령에 의해 끌려간다는 이유로 그들을 억압받는 자들로 간주한다. 그는 경비병들을 공격하여 죄수들을 풀어주고, 그들에게 둘시네아를 찾아가 자신의 공적을 전하라고 명령한다. 하지만 죄수들은 그런 위험한 일을 할 수 없다고 거부하고, 돈키호테가 화를 내자 그와 산초에게 돌을 던지고 그들의 소지품을 빼앗아 달아난다. 돈키호테의 정의감은 순수하지만, 그는 인간 본성의 복잡성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는 자신이 풀어준 죄수들이 감사할 것이라 믿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시에라 모레나 산맥에서 돈키호테는 둘시네아를 위해 고행을 하기로 결심한다. 그는 전설적인 기사 아마디스가 사랑하는 이에게 거부당했을 때 그랬던 것처럼 광기를 연기하려 한다. 그는 산초를 둘시네아에게 보내 자신의 사랑을 전하라고 명령한다. 산초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 채 떠났다가, 신부와 이발사를 만나 돈키호테의 상황을 설명한다. 그들은 돈키호테를 집으로 데려오기 위한 계략을 꾸민다. 신부와 이발사는 도움이 필요한 공주로 변장하고, 돈키호테에게 자신들을 구해달라고 간청한다. 돈키호테는 기꺼이 이를 받아들이고, 결국 우리에 갇혀 수레에 실려 마을로 돌아온다. 그는 자신이 마법에 걸려 이동한다고 믿는다.


1615년에 출간된 제2부는 제1부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성찰적이다. 이제 돈키호테와 산초는 유명인사가 되었다. 제1부가 출판되어 스페인 전역에서 읽혔고, 사람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안다. 세 번째 출정에서 돈키호테와 산초는 자신들에 대한 책을 읽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이는 전례 없는 메타픽션적 구조로, 허구와 현실의 경계를 의도적으로 무너뜨린다. 돈키호테는 책 속의 자신에 대한 설명이 부정확하다며 불평하고, 산초는 자신이 책에서 어리석게 묘사되었다고 불만을 표한다.


두 번째 출정의 중심에는 둘시네아를 찾아가는 여정이 있다. 산초는 실제로 둘시네아를 본 적이 없지만, 돈키호테는 그를 엘 토보소로 보내 그녀에게 경의를 표하려 한다. 당황한 산초는 기지를 발휘한다. 그는 지나가는 세 명의 농촌 처녀 중 한 명을 가리키며 둘시네아라고 주장한다. 돈키호테는 자신의 눈에 보이는 것은 볼품없는 농촌 처녀일 뿐이라며 혼란스러워한다. 이제 산초가 환상을 만들어내고 돈키호테가 현실을 보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진다. 산초는 이것이 마법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돈키호테는 악한 마법사들이 둘시네아를 천한 모습으로 변신시켰다고 결론짓는다. 이 장면은 두 인물의 역할이 점차 뒤바뀌기 시작함을 보여준다.


숲속의 거울의 기사 에피소드는 제2부의 백미 중 하나다. 화려한 갑옷을 입은 기사가 나타나 자신이 모든 기사를 이겼으며, 돈키호테의 둘시네아보다 자신의 귀부인이 더 아름답다고 주장한다. 돈키호테는 이에 격분하여 결투를 벌인다. 거울의 기사는 실은 돈키호테의 친구인 삼손 카라스코 학사로, 돈키호테를 패배시켜 집으로 돌려보내려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하지만 결투에서 돈키호테가 승리하고, 카라스코는 도망친다. 이 장면은 현실이 돈키호테의 환상에 우연히 들어맞는 순간이다. 그는 정당한 이유로 싸웠고, 정당하게 이겼다. 그의 광기가 일시적으로 정당화되는 것이다.


가장 정교한 에피소드는 공작과 공작부인의 성에서 벌어진다. 제1부를 읽은 귀족 부부는 권태를 달래기 위해 돈키호테와 산초를 초대하여 온갖 장난을 꾸민다. 그들은 하인들을 동원하여 둘시네아가 마법에 걸렸다는 거짓 예언을 만들어낸다. 한 마법사로 분장한 하인은 둘시네아의 마법을 풀기 위해서는 산초가 스스로 삼천삼백 번 채찍질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산초는 당연히 거부하지만, 결국 받아들인다. 공작은 산초를 바라타리아라는 가짜 섬의 총독으로 임명한다. 이는 산초를 조롱하기 위한 장난이었지만, 놀랍게도 산초는 훌륭한 통치자가 된다. 그는 솔로몬 왕처럼 지혜롭게 재판을 진행하고, 공정하게 판결하며, 백성들을 사랑으로 대한다. 단순하고 무식한 농부였던 산초가 돈키호테의 영향으로 도덕적으로 성장한 것이다.


한편 돈키호테는 공작부인의 시녀 중 한 명인 알티시도라가 자신에게 반했다는 거짓 연극에 시달린다. 이는 그의 둘시네아에 대한 충성을 시험하기 위한 장난이지만, 돈키호테는 흔들리지 않는다. 그는 자신은 둘시네아만을 사랑하며, 다른 어떤 여인도 그녀와 비교될 수 없다고 단호하게 선언한다. 이러한 장면들에서 우리는 누가 진정으로 어리석은가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이상을 좇는 돈키호테인가, 아니면 타인의 고귀한 믿음을 조롱거리로 삼는 귀족들인가?


돈키호테의 마지막 모험은 바르셀로나에서 일어난다. 해변에서 그는 다시 한 번 거울의 기사, 이번에는 흰 달의 기사로 변장한 삼손 카라스코와 대결한다. 이번에는 카라스코가 승리한다. 카라스코는 패배한 돈키호테에게 일 년간 기사 활동을 중단하고 집으로 돌아갈 것을 명령한다. 돈키호테는 기사의 명예를 걸고 이를 받아들인다. 이 패배는 단순한 물리적 패배가 아니라 정신적 패배다. 그는 자신의 정체성, 자신의 존재 이유를 잃는다. 그는 목동이 되어 전원생활을 하자고 산초에게 제안하지만, 그것은 공허한 대안일 뿐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돈키호테는 점점 더 침울해진다. 그는 열병에 걸리고, 며칠간 깊은 잠에 빠진다. 깨어났을 때 그는 변해 있었다. 그는 자신이 알론소 키하노이며, 기사도 소설에 미쳐 어리석은 짓을 했다고 고백한다. 그는 자신의 광기를 회개하고,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용서를 구하며, 유언을 작성한다. 그는 조카가 기사도 소설을 읽는 사람과 결혼하면 유산을 받을 수 없다고 명시한다. 산초는 눈물을 흘리며 주인에게 다시 나가서 기사가 되자고, 혹은 목동이 되자고 애원한다. 하지만 돈키호테는 고개를 젓는다. 그는 이제 "알론소 키하노 엘 부에노", 즉 선량한 알론소 키하노이며, 돈키호테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평온히 눈을 감고, 세상을 떠난다.


세르반테스는 이 결말에서 명확한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돈키호테의 이성 회복은 승리인가, 패배인가? 그는 마침내 현실을 보게 되었지만, 동시에 그를 고귀하게 만들었던 모든 것을 잃었다. 산초의 슬픔은 독자의 슬픔이기도 하다. 우리는 돈키호테가 제정신으로 돌아온 것을 기뻐해야 하는가, 아니면 그가 꿈을 포기한 것을 슬퍼해야 하는가? 세르반테스는 답을 주지 않고, 이 질문을 독자에게 남긴다. 그리고 바로 그 열린 결말이 이 작품을 시대를 초월한 걸작으로 만든다.


작품의 구조 자체가 혁명적이다. 세르반테스는 자신이 이 이야기를 아랍 역사가 시데 아메테 베넹헬리의 기록에서 발견했다고 주장하며, 작가와 서술자, 번역자를 분리한다. 이는 당시로서는 매우 실험적인 서사 기법이었으며, 현대 소설의 메타픽션적 요소를 예고한다. 더 나아가 제2부에서는 제1부가 이미 출판되어 유명해진 상황을 설정함으로써, 허구와 현실의 경계를 의도적으로 흐린다. 실제로 1614년에 알론소 페르난데스 데 아베야네다라는 필명의 작가가 무단으로 돈키호테 속편을 출판했고, 세르반테스는 제2부에서 이 가짜 속편을 직접 언급하며 비판한다. 돈키호테와 산초는 자신들에 대해 쓰인 가짜 책에 분노하고, 그 책의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자기참조적 구조는 21세기 독자들에게도 여전히 신선하고 도발적이다.


『돈키호테』의 영향력은 측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방대하다. 이 작품은 근대 소설의 탄생을 알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플로베르는 이 책을 읽고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했고, 도스토예프스키는 이를 인류 문학의 정점으로 꼽았으며, 보르헤스는 세르반테스의 서사적 혁신을 끊임없이 탐구했다. 하지만 이 작품의 진정한 힘은 문학사적 중요성을 넘어선다. 돈키호테는 원형적 인물이 되었다. 돈키호테적이라는 형용사는 이제 불가능한 이상을 좇는 사람을 지칭한다. 이는 때로 조롱의 의미를 담지만, 동시에 존경의 의미도 담는다.


21세기 독자들에게 이 작품은 여전히 살아있다. 우리는 여전히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등한다. 우리는 여전히 물질적 실용성과 도덕적 이상주의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다. 우리는 여전히 광기와 이성의 경계가 어디인지 확신하지 못한다. 소셜 미디어 시대에 우리는 자신만의 둘시네아를, 자신만의 풍차-거인을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돈키호테가 책을 읽고 현실을 잃었다면, 우리는 스크린을 보며 무엇을 잃고 있는가? 혹은 반대로, 돈키호테처럼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상상하는 능력이야말로 우리가 지켜야 할 가장 인간적인 자질은 아닐까?


세르반테스는 답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는 단지 거울을 제시한다. 그 거울 속에서 우리는 돈키호테를 보고, 산초를 보며, 궁극적으로 우리 자신을 본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위대한 문학이 하는 일이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동시에, 세상이 될 수 있는 모습을 상상하게 만드는 것. 돈키호테가 풍차와 싸우며 땅에 쓰러질 때, 우리는 웃으면서도 눈물을 머금는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 언젠가는 자신만의 풍차와 싸우며 쓰러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서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일어섬이, 그 계속되는 시도가, 비록 세상이 조롱할지라도,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다.


(이미지 출처 https://ko.wikipedia.org/wiki/%EB%8F%88%ED%82%A4%ED%98%B8%ED%85%8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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