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의 폭력

by 레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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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칙 위에 서 있다. 우리는 이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과반수가 찬성하면 그것이 정의가 되고, 소수의 의견은 존중받되 결국 다수의 결정에 따라야 한다는 규칙 말이다. 하지만 이 단순해 보이는 원칙 뒤에는 역사가 반복적으로 증명해온 위험한 역설이 숨어 있다. 다수가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며, 때로 다수는 가장 잔인한 폭력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1838년 미국 조지아주에서 체로키 인디언들이 강제로 이주당했을 때, 그것은 합법적인 결정이었다. 의회는 투표를 통해 인디언 이주법을 통과시켰고, 대법원조차 이를 승인했다. 다수의 백인 유권자들은 이 땅이 자신들의 것이라고 믿었고, 원주민들은 '문명화'를 위해 서쪽으로 옮겨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눈물의 길이라 불리는 그 여정에서 수천 명이 목숨을 잃었지만, 이것은 다수의 의지였기에 정당화되었다. 투표용지와 의회 결의안이라는 형식적 절차가 집단 학살을 합법의 외피로 감쌌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다수의 폭력이 가진 첫 번째 특징이다. 그것은 불법이 아니라 합법의 형태로 나타난다. 독재자 한 명의 광기가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동의 속에서 작동한다. 그래서 더 교묘하고, 더 지속적이며, 더 저항하기 어렵다. 폭력을 행사하는 개인을 지목할 수 없을 때, 책임은 희석되고 죄책감은 분산된다. "나 하나쯤이야"라는 생각이 모여 거대한 물결을 이루고, 그 물결은 소수자를 집어삼킨다.


19세기 말 프랑스를 뒤흔든 드레퓌스 사건은 다수의 폭력이 어떻게 한 개인을 파멸시키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유대인 장교 알프레드 드레퓌스가 간첩 혐의로 기소되었을 때, 프랑스 대중의 압도적 다수는 그의 유죄를 확신했다. 증거는 조작되었고 재판은 불공정했지만, 반유대주의 정서에 휩싸인 여론은 진실 따위에 관심이 없었다. 신문들은 앞다투어 그를 매도했고, 거리에서는 유대인을 향한 증오 시위가 벌어졌다. 에밀 졸라가 "나는 고발한다"라는 유명한 공개서한을 발표했을 때, 그를 기다린 것은 감사가 아니라 비난과 소송이었다. 진실을 말하는 것이 다수에 맞서는 것이었고, 다수에 맞서는 것은 곧 사회 전체를 적으로 돌리는 일이었다.


다수의 폭력은 단순히 물리적 강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흔한 형태는 배제와 침묵의 강요다. 미국의 짐 크로 법은 흑인들을 법적으로 격리했지만, 그 배후에는 백인 다수의 암묵적 동의가 있었다. 버스 뒷좌석에 앉아야 했던 것, 별도의 화장실을 사용해야 했던 것, 투표소에서 쫓겨났던 것, 이 모든 일상적 모욕은 법률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었다. 그리고 그 법률은 다수가 선출한 의회에서 만들어졌다. 로자 파크스가 버스 좌석을 양보하기를 거부했을 때, 그녀가 맞선 것은 한 명의 버스 운전사가 아니라 그 뒤에 서 있는 거대한 다수의 체계였다.


역사학자 한나 아렌트는 나치 전범 아이히만의 재판을 참관하면서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수백만 명을 학살한 홀로코스트가 광기 어린 괴물들이 아니라 명령에 복종하는 평범한 관료들에 의해 실행되었다는 통찰이다. 아이히만은 유대인을 증오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저 자신의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의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그는 시스템의 톱니바퀴였고, 그 시스템은 다수의 침묵과 동조 속에서 작동했다. 독일인의 대다수가 적극적으로 학살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무관심과 순응이 기계를 돌아가게 만들었다.


이것이 다수의 폭력이 가진 두 번째 특징이다. 그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도덕적 고민을 요구하지 않는다. "모두가 그렇게 하니까", "법이 그렇게 정했으니까", "나 혼자 반대해봐야 달라지는 게 없으니까"라는 논리로 개인의 책임을 회피할 수 있게 만든다. 다수는 스스로를 폭력의 가해자가 아니라 단지 규칙을 따르는 순응자로 여긴다. 그리고 바로 그 순응이 폭력을 가능하게 만드는 핵심 기제다.


1994년 르완다에서 벌어진 대학살은 불과 100일 만에 80만 명 이상이 살해된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의 집단 학살이었다. 후투족이 투치족을 학살할 때, 라디오 방송은 "바퀴벌레를 제거하라"고 선동했다. 이웃이 이웃을, 동료가 동료를, 때로는 친구가 친구를 죽였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 답은 집단 정체성의 동원에 있다. "우리"라는 범주가 명확해지고, "그들"이 위협으로 규정되면, 평범한 사람들도 상상할 수 없는 잔혹함을 발휘할 수 있다. 다수는 소수를 인간 이하의 존재로 규정함으로써 폭력의 도덕적 장벽을 무너뜨린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수와 소수가 단순히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에서 백인은 인구의 소수였지만 권력의 다수였다. 그들은 법과 제도를 장악했고, 그것을 통해 압도적 인구 다수인 흑인을 억압했다. 여기서 다수의 폭력이란 단순한 인구 비율이 아니라 힘의 불균형, 권력의 집중, 그리고 그것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ギ를 의미한다. 백인 정권은 인종 분리를 신의 뜻이라고, 자연의 질서라고, 문명의 필수 조건이라고 선전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많은 사람들이 이를 받아들였다.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에서 "다수의 폭정"을 경고했다. 그는 민주주의가 단순히 다수결로 운영될 경우, 소수자의 권리가 짓밟힐 위험이 있다고 보았다. 정부의 권력만이 아니라 사회 여론의 압력, 관습의 힘, 집단의 편견이 개인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밀이 살던 19세기 영국에서도 종교적 소수자, 성적 소수자, 정치적 반대자들은 법적 처벌 이전에 사회적 낙인과 배척으로 고통받았다. 다수는 자신들의 도덕 기준을 절대화하고, 그것을 벗어난 모든 것을 일탈로 규정했다.


현대 사회에서 다수의 폭력은 더 세련된 형태로 진화했다. 직접적인 물리력 대신 구조적 차별이, 명시적인 법률 대신 암묵적인 규범이, 노골적인 증오 대신 무의식적 편견이 작동한다. 채용 과정에서 특정 이름을 가진 지원자가 체계적으로 배제되고, 승진 심사에서 여성이나 소수 인종이 보이지 않는 장벽에 부딪히며, 교육 기회에서 경제적 약자가 구조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인다. 이 모든 것은 누구 한 사람의 악의가 아니라 시스템 전체에 스며든 다수의 무관심과 편견이 만든 결과다.


소셜 미디어 시대는 다수의 폭력에 새로운 차원을 더했다. 온라인에서 형성된 다수 의견은 순식간에 폭발적으로 확산되고, 그에 반대하는 소수 의견은 집중적인 공격을 받는다. 익명성은 공격성을 높이고, 군중 심리는 개인의 판단력을 마비시킨다. 한 번의 실수, 한 번의 부적절한 발언이 영구적인 디지털 낙인이 되고, 집단적 분노는 맥락이나 비례성을 고려하지 않고 대상을 파멸시킨다. 이것을 우리는 때로 정의라고 부르지만, 실상은 린치에 가깝다.


그렇다면 다수의 폭력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역사는 몇 가지 교훈을 제시한다.

첫째는 제도적 장치다. 미국 헌법의 권리장전, 독일 기본법의 인간 존엄성 조항, 국제인권선언의 보편적 권리 규정은 모두 다수라 할지라도 침해할 수 없는 소수자의 권리를 명문화한 것이다. 사법부의 독립, 언론의 자유, 시민사회의 감시 기능은 다수의 의지가 폭정으로 변질되는 것을 견제하는 안전장치다.

둘째는 교육과 성찰이다. 우리 각자가 자신이 속한 다수의 특권을 인식하고, 그것이 만드는 불평등을 자각할 때 변화가 시작된다. 독일이 홀로코스트를 철저히 교육하고 기억하는 이유, 미국이 시민권 운동의 역사를 끊임없이 환기하는 이유는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함이다. 역사 교육은 단순한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도덕적 성찰의 훈련이어야 한다.

셋째는 연대와 용기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가 이끈 시민권 운동에는 백인 동조자들이 있었다. 넬슨 만델라의 투쟁에는 양심적인 백인 활동가들이 함께했다. 다수에 속한 사람이 소수자의 편에 섰을 때, 그것은 단순한 동정이 아니라 정의를 위한 선택이었다. 다수의 폭력은 다수 내부의 균열, 즉 양심적 이탈자들에 의해 비로소 약화된다.


우리는 모두 어떤 맥락에서는 다수이고, 다른 맥락에서는 소수다. 국적, 인종, 성별, 성적 지향, 종교, 계급, 나이, 장애 유무 등 수많은 정체성의 교차점에서 우리는 때로는 힘을 가진 쪽에, 때로는 취약한 쪽에 서게 된다. 다수의 폭력을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이 언제든 가해자가 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내가 다수에 속한다고 해서 내 의견이 옳은 것은 아니다. 내가 소수에 속한다고 해서 내 권리가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내면화할 때, 비로소 진정한 민주주의가 가능해진다.


알베르 카뮈는 "페스트"에서 이렇게 썼다. "이 세상에는 페스트와 희생자들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가능한 한 페스트 편에 서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다수라는 이름의 페스트는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 그것은 정의의 탈을 쓰고, 민주주의의 언어로 말하며, 다수의 의지라는 정당성을 주장한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역사상 가장 끔찍한 범죄들이 바로 그런 명분으로 저질러졌다는 사실이다. 다수는 언제나 옳다는 믿음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착각이다. 진정한 용기는 다수에 맞서는 것이며, 진정한 민주주의는 소수를 보호하는 것이다. 그것을 잊는 순간, 우리는 모두 가해자가 되거나 방관자가 되어 다음 세대에게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기게 될 것이다.


(이미지 출처 https://ko.wikipedia.org/wiki/%EB%8B%A4%EC%88%98%EC%9D%98_%ED%9A%A1%ED%8F%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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