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방위 고찰

by 레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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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 골목길에서 괴한에게 쫓기는 한 사람이 있다. 그는 가방 속 열쇠로 상대방을 찔러 위기를 모면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법정에서 그는 가해자가 되었다. "과잉방위"라는 판결이 내려진 것이다. 상대방의 의도를 정확히 알 수 없었고, 도주할 다른 방법이 있었을지도 모르며, 열쇠라는 '흉기'를 사용한 것이 과도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것이 바로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다. 정당방위라는 개념이 존재하지만, 그것은 마치 사막의 신기루처럼 멀고 모호하다. 위급한 순간 자신을 지키려 한 행동이 오히려 범죄가 되어 돌아오는 아이러니한 상황. 우리는 언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본능적 행위를 이토록 복잡하고 까다로운 법적 계산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렸을까?


현행 형법 제21조가 규정하는 정당방위의 세 가지 조건—"현재성", "필요성", "상당성"—을 들여다보면, 이것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진 기준인지 알 수 있다. 마치 화재가 난 건물에서 탈출하려는 사람에게 "질서정연하게, 적절한 속도로, 정확한 경로를 통해서만 나오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다.

생각해보자. 누군가 당신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는 순간, 당신의 뇌는 무엇을 계산하고 있을까? "이 공격이 현재 일어나고 있는가? 피할 다른 방법은 없는가? 내 반격이 상대방의 공격과 비례하는가?" 이런 법학과 교수의 사변적 질문들을 떠올리고 있을까? 아니다. 당신의 뇌는 오직 하나의 명령만을 내린다. "살아남아라."

특히 '상당성' 요건은 그 모호함으로 인해 정당방위를 가장 크게 제약하는 장벽이 되고 있다. 법관은 편안한 법정에서 모든 정황을 차근차근 따져가며 "그때 그 정도까지는 필요하지 않았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극한의 공포 속에서 생사를 가르는 순간을 경험한 당사자에게는 그 '적절한 정도'라는 것이 사치스러운 계산일 뿐이다. 결과적으로 정당방위가 인정되어야 할 수많은 상황들이 '과잉방위'라는 이름으로 처벌받고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현재의 정당방위 개념이 19세기의 물리적 폭력 중심 사회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위협은 주먹과 칼만이 아니다. 직장에서의 조직적 괴롭힘은 한 사람의 정신을 파괴할 수 있고, 지속적인 스토킹은 일상을 지옥으로 만들며, 온라인에서의 악의적 명예훼손은 사회적 존재로서의 삶 자체를 무너뜨릴 수 있다. 그런데 현행법은 이런 현실적 위협들에 대한 방어를 여전히 '정당방위'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제 근본적인 질문을 해보자. 정당방위란 무엇인가? 그것은 법률이 시혜적으로 허용해주는 예외적 행위일까, 아니면 인간이라면 누구나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기본권일까?

답은 명확하다. 정당방위는 생존권의 핵심 요소이자, 인간 존재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다. 어떤 생명체도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는 진화가 우리에게 선사한 가장 원초적이면서도 신성한 권리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정당방위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방어기제다. 위험을 감지하는 순간 자동으로 활성화되는 즉시성, 위협의 크기에 따라 조절되는 비례성, 오직 자신의 안전만을 목적으로 하는 목적성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학습된 행동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종족이 수만 년 동안 생존해온 생물학적 메커니즘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이토록 자연스러운 인간의 반응을 복잡한 법적 잣대로 재단하려 하는가? 왜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범죄의 관점에서 평가하려 하는가? 이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근본적인 오해에서 비롯된다.


진정한 정당방위를 이해하려면, 상황을 하나의 연속된 흐름으로 봐야 한다. 마치 강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가듯, 정당방위도 원인-과정-결과라는 필연적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

원인의 단계에서는 부당한 침해와 그로 인한 절박한 위험이 존재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위험의 객관적 존재뿐만 아니라 당사자가 느끼는 주관적 위협감이다. 체격이 작은 사람에게는 별것 아닌 상황이 더 큰 위협으로 느껴질 수 있고, 과거 폭력의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에게는 작은 위협적 행동도 극도의 공포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나이가 많거나 신체적 조건이 불리한 사람, 또는 특정 질병이나 장애를 가진 사람에게는 동일한 상황이라도 전혀 다른 수준의 위험으로 다가올 수 있다. 이런 개인적 차이를 무시하고 획일적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정의가 아니라 또 다른 폭력이다.

과정의 단계에서는 방어 행위의 선택이 이루어진다. 이때 핵심은 "그 순간 그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 무엇이었는가"이다. 도망갈 수 있었는가?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는가? 다른 방법으로 위험을 모면할 수 있었는가? 만약 이 모든 선택지가 봉쇄된 상황이었다면, 설령 그 방어 행위가 강력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봐야 한다.

결과의 단계에서는 방어 행위가 실제로 위험을 제거하거나 완화했는지를 확인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결과의 크기가 아니라 방어 목적의 달성 여부다. 설령 상대방이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자신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불가피한 결과였다면 정당방위의 범위를 벗어난 것이 아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간의 존엄성과 생존권을 중심에 둔 새로운 정당방위 개념이다.

"정당방위란 개인이 자신 또는 타인에 대한 부당한 침해로부터 발생하는 현실적이고 절박한 위험을 인식하고, 그 위험을 회피하거나 제거하기 위해 당시 상황에서 합리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을 통해 수행하는 방어적 행위로서, 그 결과가 침해의 저지나 피해의 최소화라는 방어 목적과 합리적 연관성을 갖는 행위이다."

이 정의의 핵심은 정당방위를 '허용되는 행위'가 아닌 '보장되어야 할 권리'로 보는 관점의 전환이다. 국가는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할 의무가 있지만, 그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순간 시민은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자연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사회계약론의 기본 원리이기도 하다.


이론적 논의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개혁 방안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판단 기준의 근본적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현재의 사후적이고 객관적인 판단에서 벗어나, 당시 상황에서 합리적인 개인이 느꼈을 위험도와 선택 가능했던 대안들을 중심으로 평가해야 한다. 이를 위해 사건 재구성 시 당사자의 심리상태, 신체조건, 과거 경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전문가의 심리적 평가를 의무화해야 한다.

입증 책임의 구조도 바뀌어야 한다. 정당방위가 기본권적 성격을 가진다면, 이를 제한하려는 측에서 그 제한의 정당성을 입증해야 한다. 즉, 검찰에서 정당방위가 성립하지 않음을 명확히 증명하지 못한다면 정당방위로 인정되어야 한다는 원칙이 확립되어야 한다.

또한 시민교육의 확대를 통해 사회 전반의 인식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방어권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하고, 위급한 상황에서 당당히 행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동시에 경찰, 검찰, 법원 등 법집행기관 종사자들에 대한 전문교육을 통해 정당방위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정착시켜야 한다.


결국 정당방위의 문제는 우리가 어떤 사회를 원하는가의 문제다. 불의 앞에서 움츠러들고 침묵해야 하는 사회인가, 아니면 당당히 자신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인가.

한 개인이 위험에 처했을 때,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완벽한 계산이나 예술적인 비례성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그 순간 그 사람이 보여준 생존 의지와 용기를 인정해야 한다. 그것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일이다.

정당방위는 법률 조문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 속에 새겨진 자연법이다. 자신을 지키려는 노력이 범죄가 되는 세상이 아니라, 그 노력이 존중받고 보호받는 세상을 만드는 것. 그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정의이자,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의 기초이다.

우리 모두는 존엄한 존재로서 자신을 지킬 권리가 있다. 이제 그 권리를 당당히 행사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갈 때이다.


(이미지 출처 https://www.iusm.co.kr/news/articleView.html?idxno=484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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