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치-기계들의 사회

by 레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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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법치주의를 문명사회의 근간이자 정의로운 사회의 필수조건으로 여긴다. 그러나 인간 사회에서 법치주의의 실현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이 얼마나 이상적이고 비현실적인 개념인지 깨닫게 된다. 법치주의는 기계들로 구성된 완벽한 사회에서나 실현 가능한 이상론일지도 모른다.


법치주의의 첫 번째 한계는 인간의 본성 자체에서 비롯된다. 법은 객관적이고 일관된 적용을 전제로 하지만, 인간은 본질적으로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존재다. 판사는 아무리 공정하려 해도 개인적 경험과 편견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고, 검사와 변호사는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같은 법조문을 정반대로 해석한다.

기계라면 동일한 입력에 대해 항상 동일한 출력을 보장할 수 있지만, 인간이 운영하는 법정에서는 같은 사건도 담당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낳는다. 이는 법치주의가 추구하는 '법 앞의 평등'이라는 이상이 얼마나 공허한 구호인지를 보여준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법 자체가 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일 수 없다는 점이다. 법을 만드는 것도, 해석하는 것도, 집행하는 것도 결국 권력을 가진 인간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고 기존 질서를 유지하려는 본능적 욕구에서 벗어날 수 없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가장 불의한 체제들도 모두 법의 이름으로 자신을 정당화했다. 나치 독일의 뉘른베르크 법,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 법, 미국의 짐 크로 법 등은 모두 당시에는 '합법적'이었다. 이는 법치주의라는 개념이 얼마나 쉽게 권력의 도구로 전락할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현대 사회는 기하급수적으로 복잡해지고 있다. 새로운 기술, 변화하는 사회 관계, 예측 불가능한 상황들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그러나 법은 본질적으로 과거의 경험과 지혜를 성문화한 것이기 때문에 항상 현실보다 한 발 뒤처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인간 언어의 한계로 인해 아무리 정교한 법조문도 모든 상황을 완벽하게 규정할 수 없다. 법조문의 모호함은 해석의 여지를 남기고, 이는 다시 인간의 주관성이 개입할 공간을 만든다. 기계처럼 명확한 논리와 알고리즘으로 작동할 수 없는 인간 사회에서 법치주의는 필연적으로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법치주의는 또한 사회의 현실과 심각한 괴리를 보인다. 경제적 불평등이 극심한 사회에서 가난한 자와 부유한 자가 받는 법적 서비스의 질은 천양지차다. 훌륭한 변호사를 고용할 수 있는 자와 국선변호인에 의존해야 하는 자 사이에는 법 앞의 평등이 존재하지 않는다.

더욱이 사회적 약자들은 법적 지식의 부족, 복잡한 절차에 대한 이해 부족, 시간과 비용의 제약 등으로 인해 법적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 반면 권력자들은 법의 허점을 이용하거나 법적 절차를 지연시키는 전략을 통해 사실상 법 위에 군림한다.


기계들로 구성된 사회를 상상해보자. 그들은 모든 정보를 완벽하게 기억하고, 개인적 이익 없이 순수한 논리만으로 판단하며, 감정이나 편견의 개입 없이 일관된 기준을 적용한다. 기계들에게는 뇌물도 통하지 않고, 인맥도 의미 없으며, 피로나 스트레스로 인한 판단 오류도 없다. 그들은 방대한 법률 데이터베이스를 즉시 검색하고, 수천 가지 유사 사례를 동시에 비교 분석할 수 있다.

이런 기계 사회에서라면 법치주의는 완벽하게 작동할 것이다. 동일한 조건의 사건은 언제나 동일한 결과를 낳고, 사회적 지위나 경제력과 무관하게 모든 개체가 똑같은 법적 대우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 사회는 그렇지 않다. 우리는 감정적이고 이기적이며 불완전한 존재다. 우리의 판단은 주관적이고, 우리의 동기는 복합적이며, 우리의 행동은 예측 불가능하다. 이런 인간들로 구성된 사회에서 기계적 정확성을 요구하는 법치주의는 애초에 불가능한 꿈일지도 모른다.


물론 "불완전하더라도 법치주의가 무정부 상태보다는 낫다"거나 "배심원 제도, 상급심 제도 등 인간의 편견을 견제하는 장치들이 존재한다"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이는 분명 타당한 지적이다.

하지만 이런 반론들조차 법치주의의 근본적 한계를 드러낸다. 우리가 법치주의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그것을 보완하려 노력한다는 것 자체가, 법치주의가 인간 사회에서는 결코 완전할 수 없는 이상임을 시인하는 것이다. 배심원들도 여전히 편견을 가진 인간이고, 상급심 판사들도 하급심 판사들과 같은 인간적 한계를 공유한다. 견제 장치들이 오류를 줄일 수는 있지만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법치주의를 완전히 포기해야 할까? 그렇지는 않다. 비록 완벽한 실현이 불가능하더라도, 법치주의는 여전히 우리가 지향해야 할 가치이자 목표다. 다만 우리는 그것이 인간 사회에서는 결코 완전할 수 없는 이상론임을 인정해야 한다.

법치주의의 한계를 인식하는 것은 그것을 포기하자는 말이 아니라, 보다 겸손하고 현실적인 접근을 하자는 뜻이다. 구체적으로는 법조인 교육에서 편견 인식 훈련을 강화하고, 인공지능을 활용한 판례 분석으로 일관성을 높이며, 시민 참여를 통한 투명성 확대, 그리고 무엇보다 사회적 불평등 해소를 통해 실질적 법적 평등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법치주의는 기계들의 완벽한 사회에서나 가능한 이상일지 모르지만, 그 이상을 향한 인간의 끊임없는 노력 자체가 우리를 조금 더 나은 사회로 이끌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포기할 수 없는 것, 그것이 인간 사회에서 법치주의가 갖는 진정한 의미일 것이다.


(이미지 출처 https://kr.pinterest.com/pin/52846995622987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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