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적시 명예훼손법은 악법이다

by 레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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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 동료가 묻는다. "우리 부서장이 예전에 횡령으로 징계받았다는 소문이 있던데, 사실인가요?" 당신은 그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다. 실제로 몇 년 전 회사 내부에서 공식적으로 확인된 사실이다. 하지만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 왜일까? 한국에서는 진실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범죄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우리 일상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SNS에 누군가의 과거 행적을 언급하는 것, 동네에서 이웃의 실제 행동을 이야기하는 것, 심지어 피해자가 자신이 당한 일을 공개하는 것까지도 법적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 되었다. 우리는 언제부터 진실을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었을까?


문제의 핵심은 우리나라 형법 제307조에 있다. 이 조항은 명예훼손죄를 규정하면서,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도 처벌한다고 명시한다. 여기서 핵심은 '사실'이라는 단어다. 거짓말로 남을 헐뜯는 것은 어느 나라에서든 처벌받는다. 하지만 진실을 말했는데도 감옥에 갈 수 있는 나라는 그리 많지 않다.

실제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한 여성이 전남편의 가정폭력 사실을 SNS에 올렸다가 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100만 원의 벌금형을 받았다. 노인회 회원이 간부의 폭언과 폭행 사실을 인터넷에 공유했다가 명예훼손 유죄판결을 받았는데, 정작 그 간부는 폭행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상황이었다. 진실을 말한 피해자가 처벌받고, 가해자는 상대적으로 가벼운 처벌을 받는 전도된 현실이다.

이런 판결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품는다. "사실인데 왜 처벌받지?"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당연한 의문이다. 하지만 한국의 법은 이런 상식과 다른 방향으로 작동한다.


물론 법은 예외 조항을 두었다. 형법 제310조는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언뜻 보면 합리적인 기준 같지만, 실제로는 이 '공익성'이라는 개념만큼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것이 또 있을까.

법원의 공익성 판단 기준을 살펴보면 그 모호함이 더욱 분명해진다. 정치인의 부정행위를 폭로하는 것은 대체로 공익적이라고 인정되지만, 일반 기업인의 탈세 사실을 알리는 것은 경우에 따라 다르게 판단된다. 공무원의 비리는 공익성이 인정되지만, 사기업 임원의 비리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오로지'라는 한정 문구다. 형법 제310조는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라고 규정하는데, 이로 인해 피해자가 직접 고발하는 경우 개인적 보상이나 복수 의도가 섞였다는 이유로 공익성이 부정되는 경우가 많다.

누가 공익성을 판단하는가? 결국 법관이다. 그리고 법관의 판단은 시대와 사회의 분위기에 따라 달라진다. 어제는 공익적이었던 것이 오늘은 아닐 수 있고, 어떤 법관에게는 공익적인 것이 다른 법관에게는 아닐 수 있다. 진실을 말할 권리가 이처럼 불안정한 기준에 의존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사실적시 명예훼손법의 가장 큰 문제는 '명예'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출발한다. 과연 명예란 무엇인가? 만약 어떤 사람이 과거에 잘못을 저질렀다면, 그 사실이 알려지는 것이 명예훼손일까, 아니면 그 잘못 자체가 명예를 훼손한 것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 간단한 상황을 가정해보자. 한 의사가 과거에 의료사고를 은폐한 사실이 있다고 치자. 그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을 때, 그 의사의 명예를 훼손한 것은 누구인가? 그 사실을 알린 사람일까, 아니면 의료사고를 은폐한 바로 그 의사일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답은 분명하다. 거울이 우리를 못생기게 만드는 것이 아니듯, 사실을 말하는 것이 명예를 훼손하는 것이 아니다. 명예는 그 사람의 행동에 의해 이미 스스로 결정된 것이다. 만약 그 행동이 떳떳하다면, 그 사실이 알려져도 명예는 훼손되지 않는다. 반대로 그 행동이 떳떳하지 못하다면, 그 순간 이미 명예는 스스로 훼손된 것이다.


사실적시 명예훼손법은 책임의 전도를 만들어낸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보호받고, 진실을 말한 사람은 처벌받는다. 이는 마치 교통사고를 낸 사람보다 그 사고를 목격하고 신고한 사람을 처벌하는 것과 같다.

더 나아가, 이 법은 사회에 왜곡된 메시지를 전달한다. "과거의 잘못은 숨겨져야 하고, 그것을 드러내는 것은 악한 행위다." 하지만 건전한 사회의 원칙은 정반대여야 하지 않을까? "잘못을 저지르지 말고, 저질렀다면 그에 대한 책임을 져라."

이런 법이 존재하는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기보다는, 그 행동이 알려지지 않도록 숨기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쏟게 된다. 결국 투명성과 책임감이 사라지고, 은밀함과 회피가 미덕이 되는 사회가 만들어진다.


사실적시 명예훼손법을 옹호하는 이들은 종종 프라이버시 보호를 내세운다. 과거의 실수를 계속 들춰내는 것은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물론 프라이버시는 중요한 가치다. 하지만 이것이 진실을 말할 권리를 제한하는 근거가 될 수 있을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균형과 구분이다. 개인의 사소한 실수나 개인적 취향, 사생활의 영역까지 무한정 공개하자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공적 관심사가 되는 사안이나, 다른 사람들의 안전과 이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보에 대해서는 투명성이 우선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음식점 사장의 개인적 취향은 보호받을 프라이버시다. 하지만 그 음식점에서 식중독 사고가 났다면, 그 사실은 공중보건과 관련된 공적 정보가 된다. 의사의 사생활은 보호받아야 하지만, 의료사고나 의료윤리 위반 사실은 환자들의 알 권리와 직결된다.


사실적시 명예훼손법은 언론 자유에 치명적인 위협이 된다. 기자들은 진실을 보도하면서도 항상 명예훼손 소송의 두려움에 떨어야 한다. 이는 필연적으로 자기검열을 낳고, 결국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런 법이 권력자들에게 진실을 은폐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가 된다는 점이다. 자신에게 불리한 사실이 보도되면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위협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언론사들이 위축된다. 특히 자원이 부족한 소규모 언론사나 개인 기자들은 이런 위협 앞에서 더욱 무력해진다.

민주주의는 정보의 자유로운 유통을 전제로 한다. 시민들이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판단할 수 있어야 민주적 의사결정이 가능하다. 하지만 사실적시 명예훼손법은 이런 정보 유통을 가로막는다. 진실이 억압받는 사회에서 어떻게 건전한 민주주의가 작동할 수 있겠는가?


흥미롭게도, 사실적시를 명예훼손죄로 처벌하는 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많지 않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진실을 말하는 것 자체를 범죄로 보지 않는다. 미국은 물론, 많은 유럽 국가들도 진실 적시에 대해서는 형사처벌을 하지 않는다.

이는 단순한 법체계의 차이가 아니라,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의 차이를 반영한다. 서구 사회는 개인의 명예보다는 진실과 투명성을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체면과 명예를 중시하는 전통적 가치관이 법에 반영되어 있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여러 차례 한국의 사실적시 명예훼손법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국제 인권 기준에서 볼 때, 이 법은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것이다. 국제사회의 이런 비판이 단순한 외부 압력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진지한 제언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그렇다면 사실적시 명예훼손법을 폐지하면 무법천지가 될까? 그렇지 않다. 다른 나라들의 사례를 보면, 진실 적시에 대한 형사처벌 없이도 충분히 개인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들이 있다.

먼저 민사상 손해배상 제도가 있다. 진실이라 하더라도 불필요하게 타인의 사생활을 침해했다면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다. 이는 형사처벌보다 더 균형 잡힌 접근법이다. 또한 허위사실 유포에 대한 처벌은 여전히 유효하다. 거짓말로 남을 헐뜯는 것은 당연히 처벌받아야 한다.

스토킹 방지법, 모독죄, 협박죄 등 다른 법률들도 악의적인 괴롭힘을 방지할 수 있다. 진실을 말하는 것과 악의적으로 괴롭히는 것은 구별될 수 있고, 구별되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법의 목적이 무엇인지 명확히 하는 것이다. 법은 진실을 억압하는 도구가 아니라, 정의를 실현하는 도구여야 한다. 사실을 말하는 것이 죄가 되는 사회는 건전한 사회가 아니다.


다시 처음의 상황으로 돌아가 보자. 직장 동료가 부서장의 과거 횡령 사실을 묻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답해야 할까?

잠시 생각해보자. 그 사실을 말하면 당신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로 처벌받을 위험이 있다. 침묵하면 법적으로는 안전하다. 하지만 그 부서장과 함께 일해야 하는 동료들은 어떻게 될까? 그들은 알 권리가 없는 것일까? 투명성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건전한 직장 문화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현재의 법체계 하에서는 침묵하는 것이 안전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사실적시 명예훼손법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철학에 기반한다. 명예는 타인의 침묵으로 보호받을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올바른 행동으로 쌓아가야 할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과거의 잘못 때문에 명예가 훼손된다면, 그 책임은 그 사실을 알린 사람이 아니라 그 잘못을 저지른 바로 그 사람에게 있다.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진실이 억압받지 않는 사회, 정직한 사람이 보호받는 사회여야 한다. 거짓말쟁이는 처벌받고,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보호받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사실적시 명예훼손법은 이런 상식을 뒤집어놓는다.

법은 사회의 거울이다. 우리 사회가 어떤 가치를 중시하는지, 무엇을 보호하고 무엇을 처벌하는지가 법에 반영된다. 만약 우리가 진실보다 체면을, 투명성보다 은밀함을 중시하는 사회라면 현재의 법도 나름의 논리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정의롭고 투명한 사회를 원한다면, 법부터 바뀌어야 한다.

진실을 말하는 것이 죄가 되는 한, 우리 사회는 진정한 의미의 정의로운 사회가 될 수 없다. 사실적시 명예훼손법의 폐지는 단순히 법 조항 하나를 없애는 것이 아니다. 진실이 승리하는 사회, 정직한 사람이 보호받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첫걸음이다.

우리는 더 이상 진실을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 그것이 바로 건전한 민주주의의 기초이자, 정의로운 사회의 출발점이다.

(이미지 출처 https://kr.pinterest.com/pin/534732155775825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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