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에게 대체되고, AI와 면접을 봤습니다.

그리고 아마 당신도 곧... 대체되겠죠

"일이 있긴 있어요?"


영한 프리랜서 번역가로 10년 이상 먹고살았는데, 몇 달 전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AI가 웬만한 번역을 모두 하는 상황에서 일이 있냐는 질문이었어요. 있긴 있었죠, 그때까지만 해도. 그런데 단 몇 달 사이에 정말 일이 사라졌습니다. 인하우스로 일하던 곳에서 계약 종료를 앞두고 있고, 몇 년간 꾸준히 일해왔던 에이전시에서 클라이언트가 AI 번역으로 대체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언젠가 이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예상은 했지만 이토록 빨리, 갑작스럽게 일어날 줄은 몰랐죠. 번역업계에서 기계 번역이란 수십 년간 존재했던 것이어서, 완전히는 대체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했어요. 그동안은 기계번역이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결과물은 자연스럽지 못했고, 결국 최종 점검자는 인간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AI가 등장하면서 이야기가 달라졌어요. 기계번역의 품질이 급격히 향상했고, 이 과정에서 번역 단가와 수요는 계속해서 줄었습니다. 산소 호흡기에 의존하듯 어떻게든 버텼는데, 결국 여기까지 와버렸네요.


링크드인에서 채용 공고를 살펴봤습니다. 검색어로 "Korean Localization Specialist"나 "Korean Translator"를 치면 8에서 9할은 AI Trainer가 나옵니다. AI 훈련가. 듣도 보도 못한 신종 직업인데 최근 우후죽순 나타나서 채용 공고 페이지를 점령했죠. 최근 번역 에이전시에서도 LLM 훈련 프로젝트가 많아졌고, 몇 개는 참여도 해봤기 때문에 대충 무슨 일을 하는 것인지는 알고 있습니다. 바로 AI에게 먹일 데이터를 생성하는 일입니다. 실제로 쓰이는 텍스트가 아니라, 데이터로 먹일 텍스트를 번역하는 일입니다. 그 데이터를 먹은 AI가 언젠가 제 일을 대체하게 되겠죠. 해당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묘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나를 잡아먹을 호랑이를 기르는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웬만하면 그런 프로젝트는 피해왔죠. 그런데 이제 먹고살기 위해서 해야 하게 되었어요.


신청서를 내고 간단한 질문에 답한 후, AI와 면접을 봤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AI와 면접을 봤어요. 지금 생각해도 헛웃음이 납니다. 이보다 더 디스토피안적인 이야기 전개가 있을까요. AI에게 대체되고 AI와 면접을 봐야 한다니요. 까만 화면을 마주하고 기계가 "자기소개를 해주실래요?" 했을 때 느낀 감정을 뭐라고 해야 할까요. "AI와 면접을 해본 적이 없어서 당황스럽네요."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목소리가 회의적이나 냉소적이 되지 않으려고, 최대한 진지하게 임하려고 노력했어요. AI가 그런 묘한 기운까지 감지했을까요?


합격 발표가 났으니 아마 감지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AI 훈련가가 하는 일이 뭐냐고요? AI 응답을 보고 잘못된 점을 팩트 체크하고, 분석하고, 설명하는 일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AI 성능이 더 나아지도록 하는 것이겠죠. 1-2시간 할애한 후에 이건 내 일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고작 기계 부품이 되려고 석사까지 땄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재밌는, 혹은 무서운 것 하나 더 알려드릴까요? 저 같은 번역가가 제일 먼저, 그리고 빨리 대체되었지만, 곧 다른 직군도 대체될 거라는 거요. 왜냐하면 AI를 교육하는 이 플랫폼에서 시간당 더 많은 돈을 주면서 전문가들을 모집하고 있거든요. 프로그램 개발자, 초중고등학교 교육 분야 전문가, 법률, 의학, 금융 전문가를 비롯해 STEM(과학, 기술, 공학, 수학) 분야 전문가는 시간당 90~180불 수준으로 모집하고 있어요. 그리고 이 플랫폼은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대상으로 각종 분야의 전문가를 모집해 AI를 훈련하고 있습니다.



AI.png AI 교육 전문가 모집 플랫폼 채용 공고

최근 엔트로픽에서 발표한 모델 미토스가 너무 똑똑해서 인간의 힘으로는 27년간 발견하지 못했던 소프트웨어 결함을 이틀 만에 찾아냈다면서요. 이 능력을 취약점 공격 코드로 이용한다면 현존하는 모든 보안 시스템(국방을 비롯한 금융 시스템 포함)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생각해, 백악관과 연방준비제도 등이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고 합니다. 출처: https://www.hani.co.kr/arti/economy/it/1254378.html


... 대략 국가 사이버 보안 체계가 흔들리고 뱅킹 보안이 무너질 위기라네요. 그래요, 그건 그렇고, 자, 이제 전 뭘 먹고살아야 할까요? 20대에 했던 질문을 40대가 다 되어서 다시 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크게 보면 뭘 하든 못 먹고살겠어요. 하지만 닥친 현실은 또 다른 문법입니다.


결론: 아직 AI에게 대체되지 않았다면, 곧 대체될 미래에 대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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