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아름다움

<퍼펙트 데이즈> 2023

by 김민지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듯 반복되는 일상이 지겹다고 느낀 적이 있나요? 아침에 일어나 양치하고, 씻고, 옷 입고, 아침 먹고, 출근하고, 매일 보는 사람과 다시 아침 인사를 나누고, 컴퓨터를 켜고, 점심을 먹고, 일하고, 퇴근하고, 집에 와서 저녁 먹고 잠을 잡니다. 다음 날 같은 일상이 반복됩니다.


그러다 어느 날인가엔 "대체 언제까지 이런 짓을 반복해야 하지? 이러려고 태어났나? 이게 인생의 전부일까?" 이런 회의적인 질문이 마음속에 일어날 때가 있지 않나요? 하지만 곧 고개를 저어 그런 쓸데없는 생각일랑 날려버립니다. 이런 근본적인 질문은 중요하지만 동시에 위험합니다. 그 생각 자락의 끝에는, 그것이 무엇이든, 일상을 파괴해 버릴 무언가가 있다는 걸 어렴풋이 알기 때문이 아닐까요?


영화 <퍼펙트 데이즈>는 그런 인생의 권태기가 찾아왔을 때 한 번쯤 볼만하지 않을까 합니다. 이 영화에는 특별한 갈등 구조나 드라마가 없습니다. 그저 담담하게 도쿄에 있는 공중 화장실 청소부 히라야마의 일상을 보여줍니다. 어슴푸레한 새벽, 비 쓰는 소리에 눈을 떠 양치와 세안 후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집 앞 자판기에서 커피 한 캔을 꺼내 마신 후 봉고차를 타고 출근길에 오릅니다. 히라야마의 취미는 올드 팝송 듣기. 이제는 골동품이 되어버린 카세트테이프들, 그중에 마음에 끌리는 것 하나를 골라 오디오에 넣습니다. The Animals의 House of Rising Sun이 흘러나옵니다. 창 밖으로 동이 튼 아침, 도쿄의 풍경이 스쳐 지나갑니다. 정제된 도시이지만 그 속에 도시를 움직이는 사람들의 활력이 느껴집니다. 아무것도 아닌 일상인데, 아름답습니다.


영화는 이렇게 히라야마의 아무것도 아니면서도 아름다운 일상을 따라갑니다. 도쿄의 공중 화장실을 청소하는 그는, 성심을 다해 그 일을 합니다. 같이 일을 하는 젊은 이 타카시가 "이 일을 왜 그렇게 열심히 하느냐"라고 놀릴 정도죠. 마치 자기 집 화장실을 청소하듯 진심으로 일하는 그를 보며, 저는 부처님의 제자 쭐라빤따까가 떠올랐습니다. 쭐라빤따까는 4개월 동안 경전 4구절도 외우지 못할 정도로 아둔한 제자였다고 합니다. 스스로의 아둔함과 주위의 경멸에 실망해 환속하려던 그에게 부처님은 그에게 정사에 남아 청소와 빨래를 하되, 일을 하면서 “티끌을 털고 때를 닦아라”라는 말을 반복해서 외우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정사에 남아 청소와 빨래를 수행으로 삼아하다가 깨달은 제자가 바로 쭐라빤따까입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간혹 무시받기도 하는 일이지만, 마음의 티끌을 털고 때를 닦는 경건한 자세로 임하는 히라야마가 마치 수행자 쭐라빤따까 같았습니다. 돈과 명예를 얻거나 인정을 받으려는 기대 없이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히라야마. 불평 없이 기꺼운 마음을 내어 일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과연 나는 어떤 자세로 일하고 있나 돌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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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히라야마도 아픔과 흠결이 있는 인간입니다. 멜로디 변주처럼 비슷하지만 다른 하루하루 속에서 그의 과거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는데요. 어느 날 갑작스레 십 대 조카 니코가 가출하여 히라야마를 찾아옵니다. 니코가 왜 가출을 했는지 영화는 자세히 설명해주지 않습니다. 히라야마도 묻지 않아요. 하지만 둘은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어떤 동질감을 느낍니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아마 이 영화를 시청하는 관객이라면 모두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바쁜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피로감이랄까, 생산적이어야 한다는 병적인 집착 같은 것이랄까... 멈추지 않는, 혹은 멈출 수 없는 거대한 기차에 연료가 계속 필요한 것처럼, 우리는 막대한 신체적, 정신적 에너지를 무엇인가를 생산하기 위해 붓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기계가 아니잖아요. 언젠가는 지칠 수밖에 없습니다. 1970년대에 처음 등장한 ‘번아웃 증후군’도 아마 이런 맥락에서 나타나지 않았을까요?


그런 니코와 함께 같은 듯 다른 듯한 일상이 다시 흘러갑니다.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할 것인지에 관한 논의와 질문 없이, 그저 “다음은 다음, 지금은 지금”에 충실한 나날들이 흘러갑니다. 니코의 엄마가 비싼 자동차를 타고 나타나기 전까지요. 그녀는 앗아가듯 니코를 데려가며 히라야마를 딱한 눈으로 바라봅니다. ‘겨우 여기에서 이렇게’ 살고 있느냐는 눈빛으로요. 영화는 자세히 설명해주지 않지만, 여기에서 히라야마의 과거를 짐작해 볼 수 있죠. 부유한 가정집에서 태어나 좋은 교육을 받고, 특정한 기대를 받으며 살았을 것이라고, 또 어쩌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지위에 오른 적도 있을 것이라고요. 그러나 어떤 일을 계기로 히라야마는 다른 삶을 택했고, 가족들과도 등을 지게 되지 않았을까요? 알 수 없지만,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익숙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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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누가 감히 ‘더 나은 삶’을 정의할 수 있나요? 만약 있다면 그 기준은 무엇인가요? 돈, 지위, 명예, 권력, 인기? 그 기준은 또 누가 정하나요? 부모님, 친구들, 사회? 사실은 그런 기준 같은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그 자체로 가치가 있고 소중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단,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부도덕하거나 불법적인 일이 아닌 일에 한해서요.) 그것이 하등 알게 모르게 무시받는 공중 화장실 청소일이라도요. 히라야마의 일상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보상이나 인정을 바라지 않고 진심을 다해 일하는 자세와 작은 것에서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느낄 줄 아는 소탈한 모습이요. 더하고 더해야 행복할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물질주의적 사회에서,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고 살아가는 히라야마의 삶이 오히려 가볍고 자유로워 보입니다.


영화의 마지막도 히라야마의 출근길 모습으로 끝이 나는데요. 특히 히라야마의 마지막 표정이 압권입니다. 마치 우는 것 같기도 하고, 웃는 것 같기도 한, 오묘한 표정을 짓습니다. 저는 이 표정이 마치 희로애락이 공존하는 우리의 복잡 미묘한 삶을 표현하는 것 같았습니다. 삶은 아름답지만 동시에 고통스럽고, 고통스럽지만 동시에 아름답습니다. 이 오묘함을 잘 담아낸 배우 야쿠쇼 코지의 연기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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