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한 감정 표현과 아름다운 장면이 돋보이는 서부극
퍼스트 카우(2019)
여성, 여성적, 비전통적 성 정체성, 유색 인종…이런 단어로 정의되었던 사람들은 백인 남성 중심의 19세기 사회에서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아니, 어떻게 성공할 수 없었을까? 서부 개척 시대의 미국으로 돌아가 이들의 삶의 단편을 아주 섬세한 시선으로 살펴보는 영화, <퍼스트 카우>(2019)를 보았다.
먼저 이 영화에서는 수채화같이 아름다운 화면이 인상적이다. 한땀 한땀 정성 들여 수를 놓은 듯 장면마다 고심하고 조심스럽게 구상한 흔적이 보인다. 포장되지 않은 거친 진흙땅에 상하수도도 아직 들어오지 않은 미개척지의 척박함과 피곤함이 화면을 통해 잘 전해지는데, 이처럼 19세기 서부 개척 시대라는 배경을 사실적이고도 세세하게 잘 표현했다. 서부극임에도 불구하고 주요 인물 간의 대화는 정적이고, 조용하고,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 소리를 지르고, 모욕하고, 폭력 방법으로 갈등을 해결하는 인물들은 주인공을 둘러싼, 전통적 사회를 대변하는, 백인 남성들뿐이다.
흥미로운 점은 두 주인공 중 한 명이 백인 남성이라는 점이다. 하나 이 사람은 전통적인 남성성을 대변하는 어떤 가치도 갖고 있지 않다. 쿠키는 조용하고, 내성적이고, 공감 능력이 뛰어나고, 요리, 청소, 바느질 등 집안일을 하며, 그의 꿈은 시골에서 빵집을 여는 것이다. 이 같은 여성성으로 인해 백인 남성이라는 특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왕따가 된다. 그 와중에 두 번째 주인공인 중국인 킹루를 만나는데, 둘은 아주 친한 사이가 된다.
이 둘 관계는 영화에서 정확히 정의하지 않는다. 보기에 따라 연인 같아 보이기도 하고, 절친한 친구처럼 보이기도 한다. 무엇이 되었든, 둘은 함께 있는 것이 편하다. 서로를 인종이나 성별에 따라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서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남자이기 때문에 강해 보여야 할 필요도 없고, 외국인이라서 차별하거나 다르게 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을 둘러싼 사회는 다르다. 쿠키가 “여성적”이라고 레이블링 된 특성이 있다는 이유로 무시당하고 왕따당하듯, 킹루는 어디에서나 없는 사람 취급당한다. 이 영화상에서 인종 차별은 보일 듯 보이지 않을 듯 미묘하게 일어난다. 예를 들어, 쿠키와 킹루가 함께 외부인과 대화하는 장면에서 100% 사람들은 쿠키를 향해 말하지, 절대 킹루를 보고 말하지 않는다. 킹루가 말을 하면 그 누구도 거기에 응답하지 않고 다른 대화로 넘어간다. 백인 남성들은 “중국 시장” 경제에 대해서 의논하고 “중국 홍차”의 뛰어남에 대해서 논하지만 정작 중국인인 쿠키를 벽 취급한다.
이처럼 미묘한 차별(microaggression)은 내게 익숙한 것이어서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일례로, 백인 남성인 내 파트너와 함께 길을 걷거나 가게에 들어가면 열에 아홉은 내 남자친구에게만 먼저 말을 걸고 인사한다. 유색 인종이며 여성인 나는, 여러 면에서 개선되었지만, 여전히 백인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서 덜 중요한 존재, 혹은 벽이나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잘 보이지 않는(invisible) 존재다. 미묘한 차별은 어떤 사람의 무의식적인 행동이나 언어에서 간접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그와 같은 언사를 한 사람조차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 영화 속에 있는 미묘한 차별을 알아차리지 못한 사람도 있지 않을까 싶다.
두 사람은 척박하지만, 무궁한 가능성이 있는 미개척지에서 함께 꿈을 이루려 의기투합한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 우유. 우유는 마을의 최고 권력자 대장 팩터가 소유하고 있는 암소에게서만 얻을 수 있다. 이 암소에게서 몰래 우유를 짜서 사용하면서부터 본격적인 갈등이 시작된다.
암소와 우유는 무엇을 암시할까? 내 생각엔 백인 남성주의 사회에서 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그도 그럴 듯이, 이 지역에는 원래 소가 없다. 우유로 크림, 치즈, 빵 같은 음식을 먹기 위해 대장 팩터가 무려 프랑스 일부 지방에서만 키우는 유명한 순종 암소를 배에 싣고 이 지역에 들여온 것이다. 그래서 이 지역의 유일한 암소(퍼스트 카우)는 백인 남성이자 특권층인 대장 팩터만이 소유할 수 있다.
우유를 이용해 지역에서 가장 맛있는 케이크와 빵을 구울 수 있는 사람(쿠키), 또 이를 통해 경제적으로 가장 많은 생산과 발전을 이룰 수 있는 비상한 머리와 비즈니스 마인드를 가진 사람(킹 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 둘에게는 우유가 허락되지 않는다. 자원은 능력과 관계없이 특권층에게만 허락된다. 그 특권을 탐한 자에게는 비극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