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병원에 갔다가 병원비로 2천만 원 청구받은 하루

미국의 보험과 병원비 이해하기

by Non Resident Alien

올해 초 건강에 대한 염려가 정점을 찍었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과로와 더불어 상사의 폭언으로 신체적,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너무 심했다. 건강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아 (혹은 생길 것 같아서) 건강 검진을 예약하고 집에서 가까운 클리닉으로 향했다.


클리닉이지만 University of Chicago 대학병원과 연계되어 있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던 내가 너무 순진했던 걸까. 의사는 피검사 후 간 수치가 조금 높으니 CT Scan를 권유했다. 보험이 있어서 검사비는 일부 커버될 것 같았고, 한국에서는 의사가 필요 없는 검사를 권유한 경험이 거의 없어서, 의사가 하자는 모든 검사에 okay를 외쳤다.


CT 스캔 후 의사는 간에서 작은 병변을 발견했다. (이때 사진을 요청하고 한국에 있는 의료진에게 검사를 요청하거나 한국에서 재검을 받았어야 했는데) 나는 혹시나 암일 수도 있다는 걱정에 사로잡혀 의사의 두 번째 검사를 하겠냐는 물음에 비용도 묻지 않고 yes라고 대답했다.


첫 번째 검사인 CT Scan으로 청구된 비용은 $2,415, 두 번째 검사로 찍은 MRI는 약 $11,500불의 비용이 들었다. 이후 병원에서 의사와 상담으로 청구된 돈은 약 $950. 이 외에도 자잘히 청구된 검사 관련 비품, 의사 소견비 등으로 세 번의 검진 후 총비용 약 $15,000가 들었다.


한국 돈으로 약 2천만 원 이상이 청구된 MRI 검사의 결과는 간에 작은 혈관종이 있을 뿐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의사들이 혈관종 소견을 보일 때 피검사, 초음파, CT Scan으로 진행하는 것과 비교하면 다분히 과다 검사, 과다 청구한 경황이 보였다. 하지만 미국 보험의 특성상, 보험 회사에서 총 청구된 비용을 병원과 네고했고 실제로 내가 내야 할 금액은 약 $700로 처음 청구된 비용보다는 혁신적으로 줄어들어 있었다.


올해 중순 여성의학과 (산부인과)를 방문해 검진을 받으면서도 동일한 일이 벌어졌다. 생리 불순 해결과 피임을 목적으로 IUD (자궁 내 피임기구)를 착용한 지 약 8개월째인데, 해당 병원에서 IUD 교체를 진행했음에도 육안으로 IUD가 확인되지 않으니 초음파를 해야 한다는 의사의 소견을 받았다. 거의 없어진 월경과 몸의 변화가 IUD는 잘 정착했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어 추가 검사는 안 하려고 했지만, 일하는 중에도 시도 때도 없이 병원에서 문자, 전화가 왔고 결국 의사가 권유하는 모든 검사를 하기로 했다. 초음파를 진행 후 당연하다는 듯 병원에서 조직 검사도 권유했고 총 $7000달러의 비용을 청구했다.




이때쯤 나는 호구가 아닌가 싶을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의 보험은 deductible이라는 한도가 있다. 내가 든 보험은 총 deductible이 $1,200로 낮게 설정되어 있어 해당 금액 이상의 검진료, 병원비, 약값의 대부분을 보험회사가 부담하게 된다. 처음 간 혈관종을 진단받은 이후 내 deductible은 한도에 가까워졌고 여성의학과에서 진단받은 검진비 $7,000 중 내가 부담한 금액은 약 $270 뿐이었다.


미국의 의료 시스템은 왜 이렇게 진화한 걸까. 미국 보험 시장을 레몬시장 이론으로 설명하는 사례도 있다. 레몬 시장 이론은 경제학에서 정보 비대칭 때문에 좋은 품질의 상품이 시장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레몬시장 이론에서 건강한 시민은 보험이 필요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보험 상품의 가입을 거부한다. 시장에는 저품질의 레몬 (=병원 진료가 필요한 환자)만 남게 된다. 환자가 늘어나면 보험 회사의 지출이 커지고 보험료는 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건강한 사람이라고 해서 정말 보험 가입을 거부할까?


건강한 사람이라도 사고나 질병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특히 미국에서 태어나서 한 번도 걸리지 않았던 연쇄상구균, 결핵에 걸려본 나로서는 언제나 보험을 꼼꼼하게 검토하고 가입해 왔다. 현재 가입한 보험은 UnitedHealth에서 제공하는 보험이다 (올해 CEO가 맨해튼 힐튼 호텔 앞에서 총기 저격으로 사망한 그 보험사가 맞다).


월 보험료는 약 $130달러로 비싼 편이지만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사고와 질병의 위험에서 나를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보험이라고 생각하고 당연히 가장 안전한 옵션을 선택하는 게 현명하다고 본다.

(참고로 내년 보험 갱신을 하려고 보니 내년부터 보험료가 월 $160로 오를 예정이었다. UnitedHealth에서 Blue Cross Blue Shield로 바꿔서 월 보험료는 $140로 낮추고 동일한 커버리지로 선택했다.)




내가 느끼기에 미국 보험이 비싼 이유는 1) 국가 건강보험의 부재 2) 국가에서 제약회사들과 보험료 협상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첫 번째 이유: 미국도 Medicare, Medicaid라는 (일명 오바마 케어) 국가 보험이 있지만 Medicare는 65세 이상 고령자, 장애인 대상이고 Medicaid는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다. 대부분의 근로자들은 고용주가 제공하는 보험에 가입해서 보장을 받는다. 국가에서 제공하는 보험이 대부분의 국민을 대표하지 못하다 보니 사기업에서 보험을 제공하고, 보험료는 높아지고 보장내역 줄어드는 결과를 낳는다.


두 번째 원인은 국가와 제약회사 간의 가격 협상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미국에서는 전통적으로 Medicare, Medicaid로 보장받는 국민들의 약값을 협상하지 못했다. 2003년 제정한 Non Interference Clause 때문인데, 정부가 제약회사와 직접적으로 협상을 통해 가격을 내리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이다. 덕분에 타이레놀과 같이 대중적인 약을 처방받을 때도 보험 회사 혹은 정부에서 수백 불의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미국은 로비가 합법이다. 제약회사들의 로비스트가 정치권에 로비를 통해 제정한 법 하나로 아직까지 미국의 재정의 1/4이 미국 국민의 대다수를 보호하지 못하는 반쪽짜리 의료보험에 사용되고 있다 (2024년 기준 미국 총재정의 24%가 Medicare, Medicaid에 사용되었다). 장기간 해외에서 살며 다양한 질병과 사고를 겪었지만 미국에서 살게 된다면 미국 내 보험은 필수, 그리고 추가 보험으로만 커버되는 않는 안과, 치과 진료를 위해 한국 보험회사에서 보장하는 장기 여행자 보험에 가입하는 것을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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