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과생의 문예창작과 졸업담
수학, 참 지독한 짝사랑 덕분에..
나는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이과 출신으로 수학과 과학을 좋아하긴 했지만, 지독한 짝사랑이었다. 하필이면 수능에서 어긋난 사랑의 짝대기는 언어영역 만점으로 향했고, 그렇게 평생 단 한번도 생각해 본 적 없던 '문예창작'을 전공하는 문학도가 되어버렸다.
적응은 쉽지 않았다. F=ma나 미적분, 이차함수를 풀다가 갑자기 도스토예프스키나 사무엘 베케트라니. 학창시절 내내 이과적 사고로 굳어버린 내게 모순을 예술로 이해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도 글을 읽는 것은 즐거웠고, 특히 글을 읽고 나름의 분석을 하는 비평과 무대 연출을 감안하며 시나리오를 쓰는 희곡이 좋았다. 서로의 글을 보면서 조언과 때로는 비난(?)을 주고 받는 수업 방식도 좋았고, 그 다양한 관점과 생각을 나누는 게 좋았다.
회사 생활 12년차에 접어든 지금, 그렇게 보낸 대학생활은 내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보고서를 쓰거나 타부서와 협의를 하며 생각을 나누거나 조율을 필요로 할 때 특히나 그렇다. 상대방이 내 의견과 다르다고 해도 그것이 나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생각이 다르다는 것이고, 모든 의사결정은 '정-반-합'의 과정을 통해 더욱 성숙한다는 것을 이미 배웠기 때문이다.
결국 글을 배운다는 것은 상대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독서, 경청) 나의 가치관을 더해 이야기를 전하는 법(창작, 콘텐츠)을 배우는 것이다. 독서가 적으면 잠시나마 기교를 통해 글을 쓸 순 있어도, 그 한계가 금방 드러난다. 그런다고 듣기만 하고 쓰지 않으면, 내게 기회가 왔을 때 나의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연습을 할 수 없다. 그래서 두 영역은 필연적으로 병행되어야 한다.
서른 쯤엔 제법 많이 알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마흔이 다가오면서 더 겸손해지는 것을 보면 아직도 세상엔 배워야할 것들이 수없이 많다. 경험이 쌓이고 나의 가치가 단단해질 때, 나의 글과 행동도 깊어진다.
지독한 짝사랑으로부터 시작된 어긋난 인연이지만,
대학 4년 동안 읽었던 수백권의 책과 이야기들 덕분에 겸손하게 익어가는 마흔을 바라보고 있다.
다음 생이 있다면,
그래도 짝사랑이 이뤄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