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버데이 - 머리를 잃고 가슴을 얻은 영화

은행나무의 사랑

by 글 써 보는 의사


냄새를 잃었다.

은행 냄새가 싫었다.


은행나무의 노란 잎만 보고 은행을 피해 다니며 세월이 흘렀다.

때때로 어떤 영화는 잃었던 냄새를 다시 돌려준다.

그렇게 오랫동안 잊었던 내 후각을,

살아있는 것들이 짓이겨지는 그 냄새를.

짓이겨짐 속의 고통과 그 고통으로 기어이 온 세상에 가을을 창조하는 나무의 몸부림.


냄새만으로도 가을을 만들어내는 존재를 본 적이 있는가.

그것은 세상과 사랑한 흔적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흔적을 밟는다.

그 냄새를 어쩌면 나는 싫어했는지 모른다.

한 달의 고통이 싫어 11개월의 사랑을 외면하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머리만 자란 은행나무. 뿌리만 뻗는 은행나무. 열매 없는 은행나무.



후각은 가장 원초적인 감각이다. 후각 신경은 거의 유일하게 바로 대뇌로 진입하는 뇌신경이다.

사랑이 냄새라면 나는 달콤한 냄새가 아닌 은행 냄새라 생각한다.


그래서 로맨스 영화를 안 봤는지도 모른다.

구태의연한 사랑 영화는 식상해서.

깊은 사랑 영화는 고통스러워서.




'레이버 데이'

영화를 보고 은행 냄새가 났다.


어찌 보면 이 영화는 진부한 러브스토리다. 그러나 내 마음속의 진부함을 깨뜨린 영화다.

영화의 진부함은 영화가 준 것이 아니다. 내가 부여했을 뿐이지.


뻔한 단어인 사랑을 뻔하게 만드는 건 사랑이 아니다. 그 사랑을 내뱉는 자들이다. 바로 나 같은.

진부한 이 영화는 그 진부함으로 나의 진부함을 깨부쉈다.

짓이겨진 진부함에서 은행 냄새가 났다.


올 가을 은행을 밟으며,

잃어버렸던 후각이 살아났음을 그리하여 은행의 그 지독한 냄새가 진동함을 다시 느끼게 됐다.

은행나무 역시 살아있으며 그 냄새를 맡음으로써 내가 살아있고, 또 그 은행과 내가 이 순간 그 냄새를 통해 깊은 관계를 맺게 됐음을, 바로 그것이 사랑임을 은행은 알려줬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은행 냄새가 났던 것이다.

이 영화의 감동은 이미 가을부터, 내 발밑에서 깨져 코끝으로 전해지던 은행으로부터 시작됐던 것이다.


진부한 사랑이야말로 살아있는 증거이고 고통의 냄새이며, 대뇌로 직결되는 본능적인 감각이라고, 몸이 반응한 것이다.




영화 샤도우랜드에서

C.S 루이스는 이제 생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랑하는 여인 조이가 행복은 오래가지 않는다고 말을 하자 대꾸한다.

"그런 생각하면 안 돼요. 그건 우리가 함께 하는 시간을 망칠 거예요."

그러나 조이가 말한다.

"나는 망치려는 게 아니에요. 현실로 만들려는 거예요. 그냥 말하고 싶어요, 그때(사별)의 고통은 지금 행복의 일부라는 걸요. 우리는 오늘의 고통 없이 어제의 행복을 가질 수 없죠. 그건 거래예요."


그리고 조이가 죽고 난 후, C.S 루이스는 조이의 그 말을 바꿔서 말한다.

"지금의 고통은 그때 행복의 일부이다. 그건 거래다."



다시 영화 레이버데이.

(간단한 스토리는 남편 없이 엄마(아델)와 아들(헨리)만 사는 가정에 한 탈옥수(프랭크)가 끼어들게 되는 내용이다.)


영화에서 프랭크는 탈옥 후 다시 체포당하며, 3일간의 사랑과 20년의 수감 생활을 맞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과거 같았으면 나는 이 대사가 과잉 감정을 유발하는 대사라고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저 말이 비로소 깊게 다가왔다. 그리고 깊게 다가왔다는 그 사실에 다시 감동했다. 내 가슴이 변하고 있다는 말이니까.)

프랭크는 그렇게 3일간의 사랑을 위해 20년의 고통을 감수한다.

그리고 수많은 아델의 편지에도 한 통의 답장도 하지 않고, 그저 기다린다.



고린도전서의 사랑에 대한 유명한 구절이 따라 떠오른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실 우리는 한순간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 영원한 고통도 참을 수 있는 존재들이다.




지혜로운 어른일수록 한 순간의 기쁨으로 긴 고통의 시간을 희석시킨다. 고통의 시간은 잊고 그 작은 기쁨의 순간만 기억한다. 그것은 살아있음의 증거이고 기적이다.

그들은 힘든 기억을 기쁘게 만드는 고급 기술을 가지고 있다. 세월 속에 익힌 고도의 연금술이다. 버려진 납덩이를 황금으로 만들어버리는.

그래서 그런 어른들 곁에 있으면 든든하고 행복해진다. 함께 하는 고통의 시간들마저 그런 어른과 함께 지내면 먼 훗날 좋은 추억으로만 남는다. 그것이 좋은 어른들의 공통된 특징이다. 나도 아이들에게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



-사랑이 모든 걸 이긴다. 바로 사랑이-

레이버 데이를 보고 잠시 잊었던 구태의연한 사랑을 깊이 느꼈다.

어느 순간 관념과 체험 속을 헤매던 나를 다시 끄집어냈다.



영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무렵,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단단한 현실은 몸의 감각에서 시작하고,

지성과 영성은 머리에서 열리고,

가슴(사랑)이 둘 사이의 괴리를 극복시키는 유일한 수단이 된다고.


사랑은 핵심이다.

사랑이 없으면 현실과 형이상학적 담론은 따로 놀고 아무 의미가 없어지고야 마는 것이다.












오랜만에 이 매거진에 글을 남긴다.

이 글까지 고작 세 편밖에 없다. 가끔 들러줘야겠다.


1월 1일 어쩌다 보니 새해 첫날부터 영화를 보게 됐다.

아내가 영화를 보고 싶어 해 틀었을 뿐인데, 처음에는 웬 미친놈 하나가 나오길래 범죄스릴러인가 보다 하다가 예기치 못한 감동에 잠시 무장해제됐다.


뭔 감상평에 영화 내용, 인물 소개 하나 제대로 없냐 하시는 분들도 있을 게다.


사실 그저 영화 제목은 간판이고, 그 안에서 떠오른 내 감정들을 늘어놓았을 뿐이라 변명을 해본다.

더욱 안타까운 소식은,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ㅎㅎ;;;




이 공간은 영화든 음악이든 그저 제목 하나 걸어놓고 그 매체가 불러온 감정이나 생각들을 마구 늘어놓는 곳이 될 예정이다-기 보다는 이미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괜찮은지 궁금하신 분들이 있을 테니 간단히 말하자면,

imdb 점수 6.9, 과거 네이버 평점 9.52 에 해당한다.

imdb 10점 만점에 저 정도 수치면 로맨스 영화치고는 선방했음을 밝히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냉정하게 얘기해 저건 뭐지, 쓸모없다고 느껴진 장면들이 없느냐? 사실 꽤 있다. 그러나 나는 이미 감동한 상태이므로 굳이 그것들을 꺼내 해부하고 싶진 않다.)



그래, 기왕에 말이 나왔으니 개인적으로 인상적인 몇 장면에 대해 마저 남기고 마치려고 한다.

참고로 나는 이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집중해 보지 않았고, 띄엄띄엄 봤다. 중간중간 놓친 장면들이 꽤 있다. 다른 일을 하면서 봤기에.

그래서 해석에 오해가 있을 가능성이 있으나, 설사 잘못된 해석이라 해도 그 해석이 내게 감동을 줬으므로 그대로 옮기겠다. 게다가 공식 지면에 실릴 영화평도 아니다.

(단, 반전 영화는 아니지만,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 가능성을 품고 있으니 참고하여 보시기를!!!!)




느슨한 끈.

탈옥수 프랭크가 인질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엄마(케이트 윈슬렛) 손에 묶은 이 느슨한 끈은 선택과 신뢰를 느끼게 해 준다.

당신들을 해치지 않겠다. 동시에 선택하시오.

나를 믿을지 말지. 내 사랑을 받을지 말지 선택하시오. (실제 대사는 아니다)

건강한 관계는 언제나 느슨한 끈과 같다. 그를 구속하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놔두지도 않는다.

그 느슨한 끈 속에서 상대는 끈을 풀고 탈출할지, 그 안에 남아 있을지, 아니면 끈을 풀고 대신 서로의 팔이 끈이 되어 서로를 안아줄지 선택할 수 있다.

(이 장면은 그날 꿈에서 다시 반복됐고, 꿈을 통해 관계의 의미는 상대에게 선택권을 남겨두는 데 있음을 알게 됐다.)



파이.

파이는 아들(토비 맥과이어)이 남자가 됐음을 알게 해 준다.

프랭크와 함께 한 3일간 그는 어쩌면 진정 아버지와 사랑을 만났고, 그로 인해 비로소 사회적인 남자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됐다.

이 파이는 그가 사랑을 하고 가족을 이루고, 마땅히 책임을 지는 가장이 됐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상징으로 읽힌다.

그리고 그가 이 파이를 모두의 앞에서 '공식적으로' 만듦으로써 그 자신이 사회 속에서 건강한 성인임을 공표하고, 또 이 공개로 인해 결국 어머니와 프랭크도 남은 삶을 온전히 살 수 있게 된다.



편지.

토비 맥과이어가 자기 아내와 함께, 프랭크가 감옥에서 보낸 편지를 함께 읽으며 웃는 장면.

격한 감동은 없을지도 모르지만 이 영화 속에서 가장 '건강한' 장면이다.

그리고 이 평범하기 그지없는 건강이 얼마나 소중한 삶의 핵심인지 느끼게 해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여기서 건강은 몸의 건강이 아니다. 영화를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체포.

프랭크의 체포 장면.

절망 끝에 기다린 희망이 순식간에 다시 좌절되는 장면.

그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다만 두 주연 배우의 표정이 모든 걸 말해준다.

절망하던 자가 기적처럼 찾아온 기회에 희망을 품다가, 다시 그 희망이 무참히 꺾일 때, 과연 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

어떤 방법으로 저걸 또 이겨낼 수 있을까, 아니, 이겨낼 수 있기는 할까?

엔딩이 어느 쪽으로 흐를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봤던 장면이다.



마지막 포옹.

이건 굳이 말이 필요 없다.

수십 년의 세월이 단 몇 초 안에 담겨 있다.

수십 년의 고통과, 지금 이 순간의 환희와, 동시에 미래의 희망이 이 한 장면 안에 다 들어 있다.



그리고...

어쩌면 가장 중요한 사실.

극중 인물 중 어느 누구도, 그 괴로움 속에서 삶을 놓지 않고 현실을 살아갔다는 것이다.

그 고통은 결국 무엇보다 아름다운 열매로 끝이 난다.


(참고로 장면 나열은 시간 순이 아니다. 떠오르는 순으로 했다.)




하나 더, 행여 이 브런치 공간의 관념적인 글들에 익숙해진 분들을 위해 간단히 소개하자면 이 매거진은 원래 찐한 감성 위주의 공간이다. 감성 인격이 연기하는 곳이다.

혹시 다양한 인격들에 대해 궁금한 분은 아래 글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감성 인격이 활개치는 곳이므로 때로는 느끼할 수도 있다.

속을 미리 비워내고 오시기를 추천한다~~




그럼 다음에 또 필 꽂힐 때 돌아오도록 하겠다.

책도 하나 했고 이제 영화도 했으니 다음에는 음악이 등장하면 딱일 듯한데 어찌 될지 모르겠다.




끝으로 영화 OST 일부를 링크 건다.

Frank Is Arrested - Rolfe Kent

프랭크의 체포, 가장 고통스러운 장면에 흐르는 음악. 그러나 언제나 고통에 내포된 희망 때문에 이 곡을 택했다.



그리고 감동적인 엔딩 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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