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이야기
그는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며칠 째 그녀의 물음에 대꾸도 하지 않고
살림에 손도 대지 않았다
그녀가 주방으로 오면 노골적으로 그 자리를 피했다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기 위해 우당탕 소리도 내보았다
이때쯤이면 그녀가 먼저 말을 걸며
미안하다는 말을 할 때가 되었는데
이상하다
그녀가 너무 잠잠하다
잠잠할 뿐 아니라 묵묵히 모든 걸 다 해내고 있다
그녀의 얼굴은 오히려 평안해 보이기까지 한다
결혼 초
그는 임신 7개월인 그녀를 꺾었다
2주간 말을 하지 않았고 투명인간처럼 굴었다
처음 며칠은 그리 느끼지 못하는 거 같던 그녀도 일주일이 되어가자 그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야? 왜 대답을 안 해?
답답해하는 그녀의 눈에 때론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하지만 아직이었다
그녀가 스스로 무릎을 꿇어야 끝나는 줄다리기였다
2주
결국 그녀는 7개월의 무거운 배를 하고 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바로 괜찮다고 하면 안 돼
그는 무릎 꿇은 그녀를 두어 시간 더 무시했다
울고 울어 힘이 다 빠져 그저 축 쳐져 흐느끼고 있는 그 어깨 뒤로 그는 그녀가 무엇을 얼마나 잘못했는지 오목조목 따졌다
그녀는
미안해요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라고 조용히 같은 말만 읊조리며 어깨를 들썩일 뿐이었다
한없이 읊조리는 그녀의 말을 듣던 그의 가슴이 갑자기 뜨겁게 차오르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됐다
그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활짝 웃으며
배고파 밥 먹자
라고 말했다
여태 앉아 흐느끼던 그녀의 어깨가 멈추고 일어나 밥을 하기 시작했다
밥을 하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직도 울음이 끝나지 않아 들썩이는 어깨를 바라보며
그는 생각했다
어림도 없지
함께 살아가며 비슷한 일들은 계속 반복되었고 그때마다 그는 그녀를 못 본척했다
그녀가 사과하는 시간이 짧아졌다
이제 그는 안다 어떻게 하면 그녀를 굴복시킬 수 있는지
헌데 이번엔 그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
무시하면 무시할수록 그녀의 발걸음은 가벼워 보이고 심지어 행복해 보이기 까지 한다
그녀가 그의 손에서 벗어난 느낌이다
그가 그녀를 무시하자 그녀도 그녀를 무시한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그녀를 굴복시킬 다른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무시, 투명인간 취급하기의 약빨이 떨어졌다면 다른 자극을 그녀에게 주어야 했다
한번 더 그녀를 무릎 꿇려야 했다
아, 맞다 그게 있었지
그는 지난 두어 달간 사용된 그녀의 카드 내역을 꼼꼼히 살폈다
알만한 내역도 있고 아리송한 것들도 있었다
모두 아이들을 위해 사용한 듯했지만
명확히 알 수 없었다
아이들 교육비 명목으로 받아가는 현금도 점차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녀가 내려왔다
당신, 생활비 좀 줄여. 이번 달부터 현금 찾아서 당신 계좌에 넣고 당신이 쓰는 카드 그걸로 결제해.
순간 그녀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그걸로는 아이들 교육비랑 식비만 커버가 돼요. 나머지 생필품이나 아이들이 필요한 옷가지들은 살 수가 없어.
그는 확신했다. 바로 이거다. 그녀를 굴복시키는 새로운 방법!
의심이 확신이 되는 순간, 그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당신 지난 두어 달간 얼마나 쓴 줄 알아? 지출이 너무 커.
안돼. 지금 이 정도에 맞춰서 써.
그녀는 순응할 수 없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말없이 그에게서 돌아섰다.
패가 다시 그에게 돌아왔다 싶었다.
돈으로 그녀를 흔들면 분명 그녀가 굴복할 것이다. 그것이 그의 강한 믿음이었다.
이제, 그에게는 기다림의 시간만 남았다.
14년 전, 무릎 꿇어 미안하다 사죄하던 그녀의 모습이 오버랩되며 가슴이 뜨거워졌다.
곧 그녀가 다가올 것이다. 그리고 미안하다 사죄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못 이기는 척, 그녀를 안을 것이다. 그것이 그의 확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