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노(Vivino)의 함정

4.2점의 달콤한 거짓말

by 디코드

대중의 입맛은 설탕을 원한다!


​1. 와인 쇼핑의 나침반, 비비노의 탄생
​2010년 덴마크의 하이니 자카리아센(Heini Zachariassen)과 타이스 쏜더가드(Theis Søndergaard)가 비비노를 세상에 내놓았을 때, 와인 시장의 정보 불균형은 단숨에 해소되는 듯했다. 스마트폰으로 라벨만 찍으면 전 세계 사용자들이 남긴 별점과 가격이 쏟아졌다. 복잡한 소믈리에의 설명 없이도 대중의 집단지성을 빌려 와인을 고를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 편리한 도구가 보편화되면서 기묘한 현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와인 숍의 매대에는 4.0점 이상의 스티커가 도배되었고, 소비자들은 평점 3.8점 이하의 와인을 마치 결함이 있는 물건처럼 취급하기 시작했다. 비비노 점수가 와인의 품질을 결정하는 절대적인 계급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2. 설탕이 지배하는 집단지성
​비비노 점수가 높은 중저가 와인들을 분석해 보면 흥미로운 공통점이 발견된다. 대개 잔당감이 높고, 알코올 도수가 높으며, 오크 칩 향이 강렬한 와인들이다. 이탈리아의 프리미티보나 아파시멘토 양조법으로 만든 와인들이 비비노에서 유독 높은 점수를 받는 이유다.
​대중의 입맛은 본능적으로 단맛과 진한 풍미에 반응한다. 비비노는 와인계의 쿠팡이츠나 배달의민족과 같다. 리뷰 수가 많고 별점이 높은 음식은 자극적이고 달고 매운 떡볶이나 치킨이다. 슴슴하고 섬세한 육향을 즐겨야 하는 평양냉면은 대중적인 배달 앱 별점 경쟁에서 떡볶이를 이길 수 없다. 와인 역시 마찬가지다. 섬세한 산도와 우아한 밸런스를 갖춘 와인은 자극적인 단맛으로 무장한 와인들의 별점 공세에 밀려 3점대에 머물기 일쑤다.


​3. 디지털 파커라이제이션: 전문가 vs 대중
​중저가 시장에서 비비노의 영향력은 일종의 디지털 파커라이제이션이다. 과거 로버트 파커가 고득점을 주어 와인의 스타일을 획일화했다면, 이제는 비비노의 별점이 와이너리들로 하여금 대중이 좋아하는 달콤하고 진한 스타일로 와인을 빚게 만든다.
​독일의 마스터 오브 와인(MW) 콘스탄틴 바움은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비비노 고득점 와인들을 블라인드 테이스팅하며 이 맹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그는 비비노에서 4점대 중반의 찬사를 받는 저가 와인들이 대개 복합미가 부족하고 단조로운 단맛에 의존한다는 점을 꼬집으며, 대중이 열광하는 와인에 80점대 중반의 박한 점수를 주기도 했다. 전문가의 미각과 대중의 투표 결과가 전혀 다른 두 개의 세상에 살고 있음을 증명한 셈이다.


​4. 3.8점 와인에 숨겨진 미식의 가능성
​결국 비비노 점수는 품질의 척도가 아니라 대중적 선호도의 통계일 뿐이다. 만약 당신이 와인에서 산도와 타닌의 조화, 그리고 대지에서 오는 복합적인 향을 기대한다면 오히려 3.8점에서 4.0점 사이에 머무는 와인들을 주목해야 한다. 이들은 떡볶이의 단맛 대신 평양냉면의 깊은 육향을 품고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비비노는 훌륭한 도구이지만, 그 평점에 당신의 취향을 가두는것은 좋지 않다. 4.3점의 와인을 마시며 남들과 똑같은 단맛에 안도하기보다, 누군가 3.5점을 주며 시큼하다고 투덜댄 와인에서 당신만의 우아한 산도를 발견하는 것이 진짜 와인을 즐기는 법이 될수도 있다.


본 연재글은 향후 도서 출판을 목적으로 기획/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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