솜반천의 물소리를 들으며 겨울 끝자락에서 이월을 맞이했다. 투명하고 맑은 물은 쉼 없이 흐르며 지난 계절의 시간을 씻어낸다. 돌에 부딪혀 부서지는 물빛을 바라보았다. 마음속에 묵혀 두었던 생각들도 하나둘 물살에 실려 떠나보냈다. 겨울은 끝까지 차갑지만, 물은 이미 봄의 방향을 알고 흐른다. 자연은 언제나 먼저 움직이고, 우리는 그 뒤를 천천히 따라간다.
하천을 지나 산책로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매화 향이 먼저 다가와 바람의 속눈썹 위에 내려앉는다. 햇살은 꽃잎 끝에 조용히 머물며 숨을 고른다. 앙증맞은 매화는 빛을 꼭 쥔 채 빙그레 웃는다. 아직 공기는 서늘하지만, 꽃은 이미 봄을 믿고 피어났다. 아름드리 펼쳐진 꽃가지 앞으로 다가서는 순간, 향기가 먼저 말을 걸며 내 코끝을 자극하며 피부로 스며들었다.
가지마다 꽃이 가득한 나무도 있고, 아직 단단한 꽃봉오리로 숨을 고르는 나무도 있다. 잎 하나 없이 꽃으로만 절정을 이루는 모습은 오히려 더 당당하다. 사람의 삶도 그러하지 않을까. 누군가는 먼저 꽃을 피우고, 누군가는 조금 늦게 피어난다. 그러나 계절은 서두르지 않는다. 저마다의 속도를 존중하며, 각자의 절정을 기다려 준다.
매화꽃으로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걸매생태공원은 그래서 더욱 특별하다. 해마다 이맘때면 이곳을 찾는 일은 나에게 작은 의식과도 같다. 산책하며 사진을 찍고, 고요히 사색하며 마음을 다독이는 시간. 계절이 건네는 위로를 고스란히 받는 순간이다.
매화정원 둘레로는 커다란 동백나무 숲이 펼쳐진다. 붉은 토종 동백꽃은 겨울의 끝을 붙잡고 선 채 마지막 열정을 태운다. 그 위로 펼쳐진 파란 하늘은 새로운 계절의 문을 연다. 동백은 떨어질 때조차 고요하다. 소리 없이 내려앉으며 한 생을 다했다는 듯 담담하다. 그 아래, 노란 유채꽃이 연둣빛으로 까치발을 세운다. 아직은 작고 여리지만 분명한 시작이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꽃들은 제 몫의 빛을 피워낸다.
겨울은 스러짐을 가르치고, 봄은 다시 피어남을 가르친다. 흐르는 물처럼, 피고 지는 꽃처럼, 삶 또한 멈춤 없이 이어진다. 공기는 여전히 서늘하지만, 꽃들의 향연 속에서 내 마음은 이미 봄 한가운데 서 있다. 계절은 변하고, 우리는 그 안에서 조금씩 자란다. 겨울 끝자락에서 맞이한 봄은 그래서 더욱 고맙고 따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