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 와트

앙코르 와트

by 양윤화


2015년 12월, 꿈에 그리던 앙코르 와트 여행이 시작되었다.

예전에 가족과 함께 ‘앙코르-경주 세계 문화 엑스포’를 관람하기 위해 경주를 여행했었다. 너무나 신비스러워서 집에 돌아온 후, 관련 서적들을 찾아 읽어 보았다. 알수록 앙코르 문명이 궁금증을 자아냈다. 앙코르 와트의 웅장함에 매료되어, 애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캄보디아로 여행을 가기로 계획했다.


기다리던 캄보디아, 베트남 여행이 시작되었다. 6박 7일 여행이었지만, 아이들이 자기 물건들은 각자 챙겨주었기에 내 수고를 많이 덜 수 있었다. 우리 가족은 마시는 물을 유난히도 중요시해서 캐리어마다 2L짜리 삼다수 두 병씩 넣었고, 500mL 물병을 각자 가방에 챙겼다. 지금은 제주 직항도 있는데, 그때 당시에는 제주 직항 편이 없어서 인천 공항에서 출발하는 여행 상품뿐이었다. 제주에 살고 있음에 늘 행복하지만, 해외여행을 다닐 때 이러한 불편한 점도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실감했던 순간이었다. 인천 공항에서 가이드와 일행들을 만나서 인사를 나누고, 국제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여행 삼일째 되던 날,앙코르 와트 관광이 시작되었다. 앙코르 와트 주변을 더 자세히 관광하기 위해 오토바이 투어를 한 후 버스로 이동했다. 햇볕이 강렬해서 베트남에서 받은 밀짚모자를 챙기고 내리는데, 가이드분이 캄보디아와 베트남 양국은 서로 감정이 좋지 않기에 캄보디아에서 베트남 밀짚모자는 쓰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그래서 모자를 사야 했다. 아기자기한 물건들도 많이 판매하고 있어서 이것저것 구입하고 나서 모자를 사려고 했는데, 주변을 보니 일행들이 떠나고 있었다. 다급한 마음에 모자를 구입하는 것을 포기하고 일행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그들을 따라갔다. 그런데, 조금 전에 모자를 팔려던 아주머니가 우리를 부르며 뒤따라오고 있었다. 일행들과 만나서 안심하며 숨을 가다듬고 있는데, 뒤따라오던 아주머니가 도로에서 건너오지 않고 맞은편 도로에서 모자를 사달라고 애원했다. 궁금해서 가이드에게 물어봤다.


“지금껏 모자 3개를 팔려고 저희를 따라 달려왔는데, 왜 저기서 건너오지 않죠?”

“노점상들끼리의 룰입니다. 앙코르 와트 도로를 중심으로 앙코르 와트 노점상 공간이므로 넘어올 수 없는 겁니다.”


딸들이 아주머니가 안쓰럽다며 도로를 건너서 모자를 사자고 했고, 결국 도로를 건너가서 모자 세 개를 샀다. 그런데, 바가지를 쓰고 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앙코르 와트 앞에서 파는 모자보다 50% 더 비싸게 계산된 상태였다. 관광지라 여기서도 비싼 가격이었을 텐데 여기보다 더 비싸게 산 거였으니 후회는 됐지만, 열심히 달려오신 그분에게 도움을 드렸다고 생각하고 햇빛을 가려주는 모자에 감사하기로 했다.


앙코르 문화의 대표적 유적, 앙코르 와트, 들어가는 입구에 강처럼 널따란 인공호수를 지나서 한참을 걸어가니 드디어 앙코르 와트 본 건물에 도착했다. 왕궁을 관람하기 위해 긴 행렬이 이어졌다. 두 시간 이상 기다리던 중에 작은 애가 사진을 찍다 휴대폰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돌에 부딪히는 바람에 액정이 깨지고 말았다. 마냥 신나서 깔깔 웃던 작은애가 뾰로통해 있는 모습에 가이드는 조금 당황한 모습이었다. 의아해서 큰애에게 물어보았고 뾰로통한 이유를 알고는 작은애를 달래주시는 자상함에 감동이었다.


드디어 하이라이트,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 왕조들이 지냈던 곳에 도착했다. 옛날 왕조들이 지냈던 일명 왕궁이었다. 건물로 빙 둘러싸인 가운데에는 물로 채워져 연못이었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그곳에서 바라본 주변 광경은 웅장한 숲 속에 길게 늘어진 앙코를 와트 모습뿐이었다. 12세기 성벽 안에 수로를 이용해 교통수단까지 갖춘 완전한 도시 형태를 갖춘 세계 최대의 도시였다는 사실에 놀라움은 더해갔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앙코르 돔을 통해 지나가다 보았던 ‘바이욘’ 유적이다. 우리말로는 ‘사면상’이다. 네 면을 돌아가며 사람 얼굴 형상을 한 석상들이 중앙 성소를 따라 열 개가 우후죽순으로 솟아 있었다. 어떻게 사람 얼굴을 커다란 바위에 네 개의 면으로 조각해서 저렇게 만들었을까, 하는 감탄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또 하나의 신비로움, 따 프롬 사원에서 본 엄청난 나무들. 유적을 감싸고 있는 나무를 스펑 나무라고 한다. 어마어마하게 크고 강한 나무인데 그 나무가 유적을 거의 휘감아 붙잡고 있었다. 그런 유적지가 두 군데 있다. ‘따 프롬’이랑 ‘따 솜’이라는 유적지이다. 나무의 크기에 놀랐고, 저렇게 둘이 붙어 있는 채로 오래 세월 하나가 되어있는 풍경에 또 한 번 놀랐다. 사람들은 유적을 보호하기 위해 어느 정도는 나무를 자르고 있다고 하는데, 문제는 그 나무를 다 치우면 유적이 무너져 내려버린다고 한다. 세월의 흔적만큼이나 사원에 뿌리를 감고 건물과 하나를 이루며 거의 공생하는 관계가 되어버린 것이다. 경이로운 모습에 우리를 포함한 수많은 관광객들은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렸다.


캄보디아 여행에서의 공연 관람은 또 다른 놀라움을 자아냈다. 무희들의 유연한 손놀림과 웨이브, 화려한 무대 의상과 장신구, 무대 장치까지, 화려함 그 자체였다. 놀라웠던 공연이 끝난 후에는 야시장에 방문했는데, 그곳에서 정말 큰 충격을 받았다. 뼈만 앙상한 모습이 마치 해골을 연상시켰던 사람들 중에서 한쪽 팔이 없던 사람이 딸의 다리를 확 잡았다. 딸이 너무 놀라 바르르 떨었다. 순간 몸이 굳어 버렸다. 우리 딸들과 나는 캄보디아 야시장 투어 후 며칠 동안 놀란 가슴이 진정되지 않았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생각하면 뒷골이 서늘해진다.


내가 캄보디아에서 받았던 또 다른 감동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해맑은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톤레샵 호수(바다처럼 보이는 인공호수)에서 아이들이 물에 대한 두려움 없이 자유롭게 물놀이하며 너무나 신나게 놀고 있었다. 그리고 한 곳에서는 7~8세쯤 되어 보이는 애들이 소쿠리에 담은 물건들을 들고 팔고 있었다. 본인이 만들었다는 말에 우리는 물건을 열심히 골랐다. 그런데, 갑자기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다. 순식간에 아이가 가게로 숨었다. 단속반이었다. 단속 차량이 지나가자 아이가 가게에서 나왔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가족의 생계를 위해 고생하는 아이가 안쓰러워 물건 값의 두 배를 지불했다. 솜씨가 좋다고 칭찬을 해주자 고맙다고 미소를 지어 보이는데, 그 미소가 너무나 아름다웠다.


공항에서 돌아올 때 공항 직원이 해맑게 농담을 해주었다. 딸과 자매 같다며 기분 좋은 농담을 시작으로, 캄보디아 여행이 즐거웠는지, 어디에 갔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재밌게 주고받았다. 처음 보는 사람이었는데도 친한 사람 대하듯 그분의 등을 툭 치며 웃으면서 얘기를 나누자, 딸들은 나보고 엄마는 낯선 곳에서도 잘 살 것 같다고 웃으며 이야기했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사람들과 열악한 환경에서도 밝게 웃고 즐겁게 생활하는 캄보디아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던 여행이었다.


여행에서도 도전이 있다. 체력도 받쳐줘야 하고, 여러 조건이 되어야만 가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앙코르 유적지는 두발로 걸어야만 갈 수 있는 곳이다. 캄보디아 여행에서 만난 순수하고 해맑은 사람들과 그들이 빚어낸 문화와 풍경, 건축물, 새로운 것들을 만날 때 느끼는 경이로움과 호기심, 그리고 여행에서 돌아와 느끼는 내 집의 편안함이 있기에 계속 성장하며 살고 있다. 여행이란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다름을 알고 인정하며, 다시 돌아올 일상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것, 나만의 세상을 넓혀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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