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에 의미를 부여하는 마음에 대하여
아침, 커튼 사이로 흘러드는 빛 한 줄기가 거실 바닥에 길게 드리웠다. 깊은 겨울인데도 공기에는 묘하게 포근한 온기가 감돌아, 마치 봄이 살짝 앞당겨 온 것처럼 느껴졌다. 소파에 앉아 무심코 창밖을 바라보다가, 새하얀 햇살 속으로 먼지 알갱이들이 어지럽게 흔들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작은 입자들은 투명한 빛 속에서 잠깐 반짝이곤 이내 사라졌다. 딱 한순간의 반짝임이었지만, 그걸 지켜보는 나에게는 꽤나 근사한 장면처럼 보였다.
언젠가부터 나는 이런 순간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게 되었다. 작은 기쁨의 순간에 분명 무언가 특별한 뜻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곧잘 붙이는 것이다. 마트에서 마지막 남은 달콤한 빵을 딱 하나 남겨둔 채로 발견하는 일이 그렇고, 서둘러 길을 나섰는데 이상하게 한 번도 신호에 걸리지 않고 목적지에 도착하게 되는 일도 그렇다. 언뜻 보면 그저 일상 속 사소한 우연일 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건 조금 더 힘내보라는 세상의 메시지일 거야' 하고 마음속으로 웃어버린다. 그런 예감에 잠깐이라도 기대어 보면, 내 하루가 더 따뜻해지는 기분이 든다.
매사에 시큰둥하게 반응하는 것보다는, 순간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느끼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산다. 버스 창문으로 비치는 저녁노을이 유난히 붉고 화려할 때면, '이건 단지 오늘 기분이 좋아지라고 펼쳐진 풍경일지도 몰라'라며 스스로 의미를 붙여보는 나다. 사실 아무 의미도 없을지 모르지만, 그런 상상을 한 번쯤 해보는 것만으로도 눈앞의 일상이 조금은 다르게 보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커피를 내리며 가만히 주전자의 물소리를 들었다. 물이 팔팔 끓어오른 뒤, 드립필터를 타고 떨어지는 커피 한 방울 한 방울이 기분 좋은 음악처럼 느껴졌다. 찬바람에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출근했던 아침보다, 지금 이 순간의 따뜻함에 집중해보니 하늘하늘 부드러운 향이 마음 가득 퍼지는 듯했다. 커피잔을 들고 창밖에 서 있는 나무를 바라보면, 앙상한 가지 사이로 스며드는 햇빛 덕분에 어쩐지 그 나무 역시 곧 새잎을 틔울 준비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짧은 순간에 스쳐 가는 이 기분을 나는 운명처럼 붙잡고 싶다.
우리가 살아가는 날들 속에는 큰 사건도, 극적인 반전도 드물다. 대부분은 반복되는 루틴과 때로는 우연한 일들이 조용히 뒤섞인 형태일 뿐이다. 하지만 그 루틴에서 비집고 들어오는 작은 기쁨을 일부러라도 운명이라고 불러보면, 하루하루가 전보다 훨씬 다정해진다. 어느 날은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친구의 목소리가 반갑게 느껴져서, 또 어느 날은 낯선 길모퉁이에서 풍기는 빵 냄새가 나의 발길을 멈추게 해서, 그렇게 별거 아닌 우연들이 모여 나를 한층 풍요롭게 해준다.
누군가는 허황된 낭만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한 번쯤 해볼 만한 낭만이라고 믿는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짧게 반짝이는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것이 어쩌면 내게 주어진 작은 축복이라고 여기는 마음. 이 마음이야말로 먼지처럼 스쳐 가는 순간도 환하게 만들어준다. 그 환함이 오래가지 않더라도, 그 잠깐의 온기가 쌓여 훗날 내 삶을 조금 더 넉넉하게 채워줄 것이다.
오늘도 다짐해본다. “잠깐 머무는 기쁨을 운명이라 부르자.” 그것이 지나가는 작은 우연이라 할지라도, 내 마음속에서는 크고 따뜻한 의미를 지닐 수 있기를. 스치는 빛 한 줄기나 우연한 만남, 혹은 향긋한 커피 향처럼, 일상은 그런 무수한 순간들로 이루어져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들이, 우리가 사는 날들을 조금 더 빛나게 해주리라고 나는 여전히 믿는다. 그러니 우리, 잠깐 머무는 기쁨을 운명이라 부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