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지지 않는 것들

by 혜온

입춘이 지났다는 뉴스 속 기사는, 여전히 차가운 겨울 공기 앞에서 그다지 실감나지 않았다. 아파트 단지 화단 구석에 만개할 준비를 하는 꽃봉오리들이 자그맣게 몸을 웅크리고 있는 것을 보니, 아직은 따뜻한 봄이 오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았다. 숨을 내쉴 때마다 하얀 김이 맺히는 계절, 이런 날엔 종종 집 근처 학교 주변에서 마주쳤던 아이들의 모습이 떠오르곤 한다.


요즘 아이들을 보면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몸이 조금 불편한 아이를 놀리거나, 사소한 신체적 결함을 두고 괜히 짖궂은 별명을 붙이는 소리들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예전에도 체육 시간에 다리를 조금 절뚝이는 아이는 괜히 구석에 서 있어야 했고, 함께 뛰지 못한다며 무리에서 소외되곤 했다.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되면 이런 외형적인 배제는 덜해지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 잔인함의 방향만 바뀔 뿐이라는 생각이 문득 드는 날이다.


직장이나 모임 같은 사회적 관계에서, 우리는 어쩌면 남의 말실수나 약점을 훨씬 빠르게 포착하고 끄집어내는 데에 익숙해져 버렸다. 누군가 배려 없는 말을 툭 던지거나, 미처 알지 못했던 대인관계의 맹점을 드러내면, 그것을 빌미 삼아 그 사람을 가볍게 밀어내기도 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장애는 아니어도, 마음속 미처 성숙하지 못한 부분이나 언어적 취약함을 ‘결함’이라 부르며 단숨에 선을 그어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 역시 내 언어의 실수나 대인관계에서의 허점을 자주 놓치고 살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이 몰려왔다. 남의 허물에는 큰 돋보기를 들이대면서, 내 부족함은 작은 거울조차 비추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가 가끔 거울 앞에 섰을 때, 어쩌면 이 차가운 겨울바람만큼이나 서늘한 내면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가 서로에게 조금 더 다정해질 수 있다면 어떨까. 사소한 결핍과 어긋남을 잔인하게 들추기보다는, ‘그럴 수도 있겠다’고 여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 달라지는 속도는 한 발 앞서 갈 수도, 두 발 뒤처질 수도 있지만, 결국 모두가 자기만의 거리에서 걸어가고 있다는 걸 기억하는 것. 마치 아직 움츠려 있는 꽃봉오리가 언젠가 천천히 고개를 들 듯, 사람들 사이의 이해라는 것도 비슷한 속도로 조금씩 피어날 수는 없는 걸까.


봄기운을 머금은 바람이 아직은 서늘하게 등을 스치지만, 그 안에서 작은 온기를 발견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시린 두 손을 꼬옥 맞잡으며 바라본다.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달라지지 않는 인간성의 면모를 안쓰러워하면서도, 그 안에 담긴 우리 모두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것. 이런 생각들은 그저 몽상일뿐일까? 어느 순간에, 조금 더 부드러운 시선으로 우리는 타인을 바라보게 될 수 있을까. 추운 이 계절이 지나고 나면, 우리가 사는 이 작은 나라, 한국이란 사회에도 작은 변화가 피어오를 수 있을까. 잡히지 않을 것 같은 희미한 바람을 품어보며, 나는 오늘도 두툼한 외투를 여민다.


아직은, 날이 춥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