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절실한 소망과, 무엇보다 바라지 않는 소망은 같은 의미를 갖는다
금요일 자정 즈음, 지끈거리는 머리로 노트북을 덮으며 다짐했다.
이번 주말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토요일 오후, 햇빛이 거실 바닥을 따뜻하게 데우고 있었다.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쉬어야 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지난주 미팅에서 미처 설득하지 못한 지점들, 다음 브랜딩 전략에서 놓치면 안 되는 것들, 내 개인 계정에 올리려던 글의 첫 문장.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휴식이 필요하다는 건 알지만, 정말로 이 일에서 프로가 되고 싶다면, 정말로 내가 쓴 한 문장의 마음이 사람들에게 닿기를 바란다면, 이렇게 소파에 가라앉아 있을 시간이 아닌 것만 같았다.
동시에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쉬고 싶었다. 절실히.
그때 깨달았다.
나는 성공을 무엇보다 절실히 원했다. 그리고 실패를 무엇보다 바라지 않았다.
이 두 문장은 다른 말처럼 들렸지만, 사실 같은 의미였다.
긍정과 부정은 언어가 만들어낸 구분일 뿐이었다
"성공하고 싶다"와 "실패하고 싶지 않다"는 문법적으로는 반대편에 서 있지만, 둘 다 같은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마치 원의 양 끝이 결국 서로를 향해 휘어지듯이.
창밖을 보았다. 누군가 강아지를 산책시키고 있었다. 강아지는 앞으로 달려가고 싶어 했고, 동시에 뒤로 끌려가고 싶지 않아 했다. 목줄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그 긴장 속에서 강아지는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나도 그랬다.
성공을 향해 달려가는 것과 실패로부터 도망치는 것. 그 둘 사이 어딘가에서 나는 팽팽하게 당겨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팽팽함이 나를 움직이게 했다. 소파에서 일어나게도 했고, 때로는 소파에 앉게도 했다.
커피가 식어가고 있었다.
문득 생각했다. 우리가 절실히 원하는 것과 절대 바라지 않는 것 사이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그 거리가 우리 삶의 전부가 아닐까.
책상 위에 놓인 노트북을 보았다. 열어야 할까, 말아야 할까. 그 물음 자체가 이미 답이었다.
나는 여전히 그 사이 어딘가에 있었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토요일 오후 네시.
결국 책상으로 향했다. 쉬고 싶어서도, 쉬고 싶지 않아서도 아니었다.
다만 지금 이 순간, 내가 절실한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무엇보다 절실한 소망과, 무엇보다 바라지 않는 소망은 같은 의미를 갖고 있다.
그 깨달음은 나를 자유롭게도, 무겁게도 만들었다.
성공을 향해 달려가든 실패로부터 도망치든, 결국 나는 같은 길 위에 서 있었다.
그 길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확실한 건, 나는 여전히 어느 길 위를 걷고 있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