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사진첩을 펼치면 간혹 이런 일이 생긴다. 사진 속 카페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 누구와 함께였는지는 알겠는데,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떠오르지 않는 것. 그날 입었던 옷의 색깔은 선명한데, 왜 그토록 웃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는 것.
어머니는 예전에 가끔 내게 묻곤 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 성함이 뭐었냐고.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6년을 함께 같은 공간에서 보낸 사람의 이름을, 그렇게 잃어버렸다.
서랍 깊숙이 넣어둔 일기장을 꺼낸다. 6년 전 어느 가을 오후의 문장들이 있다. "오늘 K와 북촌을 걸었다. 은행나무 잎이 발밑에서 바스락거렸다. 그가 좋아하는 빵집에서 식빵 한 근을 샀다."
그제야 떠오른다. 그날의 햇빛이, 좁은 골목길이, 빵을 담은 종이봉투를 든 손이. 메모하지 않았다면 영영 사라졌을 오후가.
글을 쓴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흐르는 물에서 무언가를 건져 올리는 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려는 것들을 붙잡아 두는 일. 완벽하게 보존할 수는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래도 남기려 애쓰는 일.
형체가 있는 것들과는 다르게, 우리의 기억은 그리 견고하지 않으니까. 아무리 소중한 것도 시간이 지나면 잊히곤 하잖아. 하지만 글과 사진으로 짠 그물로 소중한 추억들을 건져 올려 일기장에 고정시켜 놓으면, 그 기억들은 시간에 떠내려가지 않아.
나는 그런 이유로, 요즘도 종종 작은 것들을 적어둔다. 오늘 마신 차의 온도가 점점 변해갔던 것, 지하철에서 본 아이의 웃음소리와 종종거리는 걸음, 퇴근길 하늘의 색. 언젠가 이 순간들도 흐릿해질 것을 알기 때문에.
기록한다는 것은 기억하고 싶다는 의지의 다른 이름인지도 모른다. 떠내려가는 것들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저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