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 없이 반짝이는

by 혜온

책상 위에 놓인 물건들을 본다. 노트북, 다이어리, 볼펜, 물병, 스탠드. 각자의 자리에서 제 역할을 한다. 노트북은 일을 하게 하고, 다이어리는 일정을 관리하게 하고, 물병은 물을 마시게 한다. 모두 쓸모 있는 것들이다. 그런데 이 물건들을 보고 있으면 가끔 숨이 막힌다.


쓸모 있는 것들은 나에게 자꾸만 말을 건다. 노트북을 열어야 한다고, 다이어리에 계획을 써야 한다고, 물을 마셔야 건강하다고. 그것들의 존재 이유가 너무 명확해서, 나는 그 이유를 외면할 수가 없다. 책상에 앉으면 일을 해야 하고, 운동화를 신으면 운동을 해야 하고, 책을 펼치면 읽어야 한다. 쓸모는 언제나 의무를 동반한다.


언제였던가, 처음 들른 카페에서 창가에 놓인 작은 유리구슬을 보았다. 누가 언제 놓았는지 알 수 없는, 아무 쓸모도 없는 물건. 햇빛이 비치면 바닥에 작은 무지갯빛 원을 만들어낼 뿐이다. 이상하게도 그 구슬 앞에서는 아무것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저 빛이 부서지는 걸 바라보고 있으면 된다.


우리는 쓸모 있는 것들로 삶을 채운다. 더 효율적으로, 더 생산적으로 살기 위해서. 하지만 그럴수록 삶은 무거워진다. 쓸모 있는 물건들은 각자의 목적을 달성하라고 재촉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 알람시계가, 출근길에는 지하철 노선도가, 회사에서는 컴퓨터가 나를 어딘가로 몰아간다. 모두 나를 위한 것들인데, 정작 나는 그것들을 위해 살아가는 것 같다.


쓸모없는 것들은 다르다.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거기 있을 뿐이다. 추운 겨울 담장 위에 자리잡은 이름 모를 작은 열매나무, 구름의 모양, 커피잔에 남은 거품의 무늬. 이것들은 어떤 목적도 갖지 않는다. 그래서 이것들 앞에서 나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보면 된다. 그냥 있으면 된다.


가끔 생각한다. 내가 정말 원하는 건 쓸모 있는 삶일까, 아니면 쓸모없어도 괜찮은 시간일까. 효율과 생산성으로 가득 찬 하루가 지나고 나면, 정작 남는 건 피로뿐이다. 반면 아무 의미도 없이 하늘만 바라본 오 분은, 이상하게도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 날 이후, 내 방 선반에도 유리구슬을 하나 놓았다. 햇빛이 드는 자리에. 유리구슬이 오늘도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아무 쓸모도 없는 그것이, 어쩌면 나의 방에서 가장 자유로운 존재인지도 모른다. 쓸모가 없기 때문에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