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나물 대첩

by 여유

집 앞 삼성슈퍼마켓에서 콩나물 500원어치를 샀다. 맵지 않게 하얗게 국을 끓인다.


할머니 : 미련하게 누가 콩나물국을 이렇게 많이 끓이니? 한 달 내내 처먹겠다!!


엄마 : 아니에요. 얼마 안 돼요. 오백 원어 치라서


할머니 : 시애미를 바보로 아나?


엄마 : 진짜 오백 원 치예요.


할머니 : 아이고, 이제 시애미를 쏙이네!


엄마 : 슈퍼 가서 물어보세요. 별일도 아닌데 왜 그러시는 거예요?


할머니 : 이게 시애미 쏙이고, 따지고 들어?

동네 사람들!


그렇게 사소하게 시작된 갈굼




도롯가에 위치한 우리 집.

옆 집은 과일가게. 좌측에는 세탁소, 우측에는 서울문구사.

왕복 이차선 바로 앞에는 약국과 슈퍼가 있었다.


나름 편의시설이 많았고, 사람들의 이동도 잦았다. 나름 핫플이었다.



할머니는 동네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대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바닥에 주저앉아 곡소리를 냈다.


할머니 : 이게 시애미를 속이고, 아이고. 억울하고 분해 못살겠네.


할머니의 연기가 시작되자 마치 짠 것처럼 고모가 왔다. 할머니의 친딸이다.


고모 : 무슨 일이야? 엄마.


고모가 오자 할머니는 인도라 할 것도 없는 도롯가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오줌을 냅다 지렸다.




고모가 엄마에게 따져 물었다.


고모 : 시어머니한테 얼마나 막대했으면 우리 엄마가 길바닥에서 오줌을 싸? 이거 오줌 싼 옷 어떻게 할 거야?

엄마: 뭘 어떻게 해요? 세탁기에 돌리는 거지.


고모 :그럼 똥을 싸면?

엄마 : 그것도 똥 째 다 넣어서 세탁기에 돌려야죠!

고모 : 똥 째? 손으로 안 빨고?

엄마 : 왜요? 내가 왜 손으로 빨아요? 세탁기가 있는데. 그럼 고모가 직접 손으로 빨던가요!


엄마 : 콩나물 오백 원어치 산 게. 무슨 이렇게 울고 불고 난리 날 일이라고.



엄마의 첫 대듦이었다.


오브제는 콩나물.

연기자는 할머니.

무대는 사직동의 한 도로.

관객의 등장으로 힘을 입은 주인공.

할머니는 더 세게 나가야겠다는 생각에 오줌을 갈긴 거다.


열연이다. 열연.




아쉽게 난 이런 명장면을 놓쳤다.

난 이런 명배우와 한 시대를 함께 살았다.

그것도 한 집에서.


이 시대 명배우 이순재 님, 나문희 님이라 해도 길바닥에 주저앉아 오줌 싸는 연기는 쉽게 도전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도 가족을 상대로. 무료로.


할머니의 열연에. 그리고 엄마의 첫 대듦에 환호와 박수를 보낸다.



쏙이다 : 속이다, 거짓말하다.

금덩이가 나오는 아이 별책부록입니다.1편부터 읽어야 이해하기 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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