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4개월 된 수영이는 한쪽 어깨에 깁스하신 할머니의 품에 안겨 어느 날 갑자기 내 품으로 왔다. 자면서도 입을 씰룩이며 웃는 배냇짓을 하던 천사였다. 엄마 아빠의 직장은 각각 부천과 서울이고 집은 부천이다. 수영이는 우리 동네에 있는 조 부모님 댁에서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할머니의 어깨가 편치 않으신 바람에 우리 어린이집에 급히 오게 되었다. 그 월령에는 낮 가림도 없는 시기라서 할머니의 품에서 내 품으로 자연스럽게 옮겨졌다. 새근새근 잠도 잘 자고, 눈만 마주치면 방긋방긋 잘 웃는다. 어린이집의 선생님들과 언니 오빠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하루하루 무럭무럭 잘 자라는 재롱이 어린이집의 막내로 귀염둥이다.
첫돌에는 어린이집에서 돌잡이를 했다. 어느 선생님은 돈을 잡으라 하고, 어느 선생님은 청진기, 또는 판사봉 각각 다양한 주문을 한다. 그때 나의 마음에는 실과 연필을 잡길 기대했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고 공부 잘하는 학자가 되길 바라서였다. 그런데 수영이는 뜻밖에 마이크와 돈, 그중에서도 천 원권 만 원권을 제치고 오만원권을 잡았다. 선생님들이 아니라고 자기들이 주장한 것을 잡으라 바꾸도록 해도 끝까지 고집부리며 오만원권 지폐와 마이크를 손에서 놓지 않는다. 그때부터 수영이에게는 내재 되어 있던 끼가 보였다. 내가 우쿨렐레를 치며 노래 불러주면 꼭 빼앗아 자기도 튕겨봐야 했고, 음악만 나오면 스스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면서 엉덩이를 들썩이며 으쓱으쓱 리듬을 탄다. 흥도 아주 많다. 자라면서 언니 오빠들 틈 속에서 모든 놀이에 참여하려 한다. 선생님들과 언니, 오빠들의 인기를 독차지하는 모습을 보며 자라면 큰 인기를 누리는 연예인으로 대성할 거라 이야기하곤 했다. 평일에는 조부모님 댁과 어린이집에서 생활하고 주말만 부모님을 만나지만 밝고 건강했다.
막내로서 독차지했던 사랑을 1세가 되어서도 물려주기 싫은지 온갖 애교로 어린이집의 분위기를 밝게 해준다. 때론 선생님들의 말도 듣지 않고 자기주장도 강했으며 한 고집 했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들은 “원장님수영이가 원장 선생님 사랑 믿고 말 너무 안 들어요. 그만 예뻐해 주세요.” 하고 말한다. 나도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 영아 때부터 봐와서 그 예쁨을 어쩔 수 없다. 더욱이 똘똘한 수영이는 어떻게 해야 사랑받는지를 아는 아이처럼 예뻐하지 않을 수 없게 행동한다. 잘못된 행동을 해서 훈육이라도 할라치면 씩~ 웃으며 품에 안긴다. 도저히 그 애교에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다른 선생님들도 모두 예뻐하면서 나에게만 너무 예뻐하지 말라 한다. 그럴 때면 “우리 모두 반성해야 해요. 나한테만 그러지 마세요. 선생님들도 수영이의 애교에 녹잖아요” 하며 같이 웃을 수밖에 없다. 수영이의 애교에 모두가 행복했다.
수영이가 두 돌이 되어 갈 즈음부터 하원 시간 엄마나 아빠가 데리러 오는 다른 친구들을 보면 엄마 아빠를 찾고 부러워한다. 할머니가 오시면 안 가겠다 버티며 내 등 뒤에 숨는다. 그런 그를 더 이상 부모와 떨어져 있게 하는 것은 아이의 정서에 좋지 않다. 이제는 부모님을 그리워하는 시기가 되었다. 그래서 낮에는 수영이의 집 근처 어린이집에 맡기고 밤에라도 부모님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 정서에 좋다. 라는 말씀을 부모님께 드렸다. 부모님께서도 주말에 수영이를 만났다. 월요일에 떼어놓고 가는 발걸음이 힘들단다. 그런데 마음 놓고 맡길 곳을 못 찾겠다고 같이 찾아 달라고 하신다.
우선 부천 쪽에 아는 원장님을 수소문해 보았다. 다행히 숲 연합으로 같이 숲 체험을 하던 몇 분의 원장님이 생각났다. 그분들 중 인품 좋으시고 사랑 많아 우리 수영이를 잘 돌봐 주실 것 같은 원장님께 연락해 보았다. 다행히 어린이집 위치도 수영이 집 근처며 학기 중인데도 1세의 자리가 한 자리 있단다. 원장님께 내가 4개월 때부터 돌봐온 귀여운 아가이니 사랑 많이 주라 부탁하고, 부모님께 상담받아 보시도록 했다. 그쪽 원장님과 상담 후 곧 갈 수 있게 되었다. 각오하고 있던 일이지만 막상 수영이가 떠나게 되니 가슴 한쪽이 덜컹 무너지는 느낌이다. 수영이에게는 부모님과 함께 할 수 있으니 잘된 일이기에 의연하게 축하하며 보내자고 스스로 아쉬움을 달랬다.
수영이와 함께할 주어진 시간은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이다. 학년말, 졸업이라는 이름으로 떠나는 아이들은 하나하나 추억을 되새기며 앨범도 만들어주고 떠나보낼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있다. 하지만 이렇게 학기 중에 갑자기 떠나게 되는 아이는 그럴 준비 시간이 없어 더 아쉽다. 수영이와의 남은 시간은 수영이가 좋아하는 어린이집 앞 농구장에서의 물총놀이와 비눗방울 놀이, 승기 쉼터 숲 놀이도 많이 했다. 수영이가 좋아하는 귀여운 뽀로로 인형 케이크에 촛불을 붙이고 언니, 오빠, 친구, 동생 모두 모여 송별 파티도 했다. 갑자기 찾아온 이별의 아쉬움을 달래고 아름답고 포근한 정을 듬뿍 느끼며 새로운 곳에서도 안정적으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했다.
수영이도 이별을 직감했는지 더 의젓하고 애교도 더 많이 부리며 더 사랑스럽게 행동한다. 수영이의 마지막 날은 할머니와 엄마 아빠 모두가 함께 왔다. 차를 타고 떠나는 수영이를 주차장까지 따라 나가 배웅했다. 우리 수영이도 이 긴 이별을 아는지 차 안에서 뒤를 돌아보며 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고사리손을 흔들고 서 있다. 자주 하는 이별에 익숙해질 만도 한데 이렇게 중간에 갑자기 찾아오는 이별은 더 아프다. “수영아, 어디를 가든 지금처럼 사랑 듬뿍 받고 밝고 씩씩하고 건강 하렴.” 하고 마음속으로 빌며 목으로는 뜨거운 액체를 꿀꺽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