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원장 Feb 09. 2024

함께 피우는 꽃

아이들의 점심 지도가 끝나고 커피 한잔 마실 겸 주방으로 들어갔다. 2세 반에서 나온 잔반통이 눈에 들어온다. 0~1세 반의 잔반량은 비교적 많지 않은데 2세 반의 잔반통이 가득 차 있다. 마음이 쓰인다. 2세 반은 대부분이 0세 아니면 1세 반을 거쳐 올라간 친구들이라서 그 친구들의 식습관은 대충 알고 있다. 0세, 1세 때에 잘 먹던 아이들인데 이상하게도 2세가 되면 없던 편식이 생긴다. 특히 채소 반찬을 싫어한다. 선생님들과 편식 지도에 관해 고민하던 중 때맞춰 육아종합지원센터에서 식습관 지도 전문가를 어린이집에 파견하는 프로그램인“올바른 식습관 관리” 진행 공지가 떴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신청했다. 6회기에 걸쳐 전문가 선생님께서 어린이집에 파견 나오셔서 식생활 모습을 관찰하고 잘못된 부분을 지도해주시는 프로그램이다.


 전문가 선생님께서 관찰한 결과, 보통은 식간에 나가는 간식의 경(輕), 증(重) 여하에 따라 본 식사를 방해하는 경우와 아이들이 푸드 네오 포비아 (food neo phobia)라고 새로운 음식에 대한 공포 때문이란다. 자주 접하지 않은 음식에 공포를 느낀단다. 그 공포가 심할 때는 죽음의 공포까지 느끼는 정도란다. 이것이 나타나는 시기도 만 2세부터 만 5세가 가장 심한 시기라서 만 0, 1세에 보이지 않던 편식이 만 2세에서 유난히 많이 나타난 것이다. 낯선 음식에 대한 공포를 줄이기 위해서는 그 음식을 자주 접하게 해 낯섦을 없애야 한다. 이는 어린이집에서 만으로는 어렵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보니 편식 없는 식습관의 훈련은 가정에서 부모님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다. 가정에서는 잘 먹는 반찬 위주로 해 먹이는 경향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부모님들께 도움을 청했다. 새로운 음식 중 아이가 거부하는 음식은 가능하면 음식 재료 구매과정부터 만드는 과정을, 아이를 참여시켜 함께해보면 좋겠다. 그러다 보면 새로운 음식이란 거부가 적을 것이다. 어린이집에서는 싫어하는 음식은 먹을 만큼만 스스로 배식하도록 했다. 본인 스스로 선택한 음식은 한 번이라도 먹어 보게 된다. 또 한 전문가 선생님께 편식을 고치는 데 도움 될 만한 도서로『프랑스 아이는 편식이 없다』란 책과 『똑똑한 편식』이란 책을 추천받아, 각각 3권씩 구매했다. 서로 돌아가며 읽고 느낌도 공유하며 아이들의 식습관을 함께 바르게 잡아주기로 했다. 준비한 책을 통해 이론과 실제를 접목하며 가정과 어린이집이 일관되게 지도하다 보니 아이들의 식습관이 바뀌기 시작한다. 싫어하던 채소 반찬에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며 성과가 나타나니 욕심이 생긴다. 편식을 줄이기 위해 시작한 부모님과 함께했던 올바른 식습관 관리는 재롱이 어린이집 부모 자조 모임의 모체가 되었다.


 그 무렵 내가 한창 재미있게 공부하던 감정 코칭에 대한 관심이 높았을 때다. 그래서 최성애, 조벽의 『정서적 흙수저와 정서적 금수저』, 스티브 비덜프의 『아이에게 행복을 주는 비결』 오은영의 『못 참는 아이와 욱하는 부모』 등의 다양한 육아 서적을 더 준비해 놓고 재롱이 어린이집 문고를 열며, 부모 자조 모임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부모님님들이 서로 책을 돌려 읽고 매월 둘째 주 화요일 오전에 모여 책을 읽은 소감을 나누고 육아에 대한 상식을 높여 우리 아이들을 멋진 아이로 성장시키자는 취지로 시작했다. 부모님들의 반응도 좋다. 나도 의욕적으로 책도 더 많이 구매해서 보충하며 열정적으로 시작했다.


 처음 시작은 내가 개입해서 책도 구매해 주고 모임 주선도 하다가 점점 부모님들이 주체가 되도록 할 계획이었다. 그래서 모둠장도 선출해 놓고 “함께 피우는 꽃”이라는 모임의 명칭을 만들며 부모님들 스스로 움직여서 해보도록 했다. 생각보다 부모님들이 책을 읽을 시간이 없는 모양이다. 처음 의도와는 다르게 점점 내가 책을 읽고 설명해 주는 형식으로 바뀌게 되어간다, 그러다 코로나19가 터지며 모임의 인원도 제한되고 모임이 편안하지 않게 된다. 하지만 실내 모임이 안되면 실외인 어린이집 앞 정자에서라도 모여 서로 의견을 나누고 모임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며 근근이 그 명맥만 이어가고 있었다.


 길었던 코로나19도 종식되었다. 주말에 어린이집에 가나 현관 앞에 비치해 둔 책을 정리해 보았다. 몇 권의 책이 보이지 않는다. 도서 대출목록을 보니 대출일은 22년인데 반납일이 적혀 있지 않은 책이 몇 권 있다. 그 부모님은 이미 졸업한 졸업생 부모님이다. 연락을 드려 책을 확인하니 지금껏 가지고 계신 부모님도 계신다. 모르겠다는 부모님도 계신다. 의욕이 꺾인다. 다 내 맘 같지 않구나 싶은 마음에 잠시 이대로 접을까 고민했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려면 온 동네가 필요하다”라는 말이 생각난다. 우리 아이들을 가정이나 어린이집에서만 보육할 수 없다. 부모 자조 모임을 더 새롭게 부활시켜야겠다. 핵가족화로 육아 경험이 풍부한 어른들의 부재에 따른 어려움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 부모들과 서로 소통하고, 육아에 대한 작은 지식이나마 나누며 좀 더 뜻깊게 생활하고 싶은 소망으로 열심히 다시 부모 자조 모임 “함께 피우는 꽃”을 홍보하며 가꾸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만남과 헤어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