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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원장 Feb 13. 2024

제2의 할머니

어린이집의 다양한 역할

퇴근 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즐겨하는 운동인 탁구를 하고 있었다. 따르릉따르릉… 전화벨이 울린다. 운동 중에는 잘 받지 않던 전화지만 왠지 늦은 밤에 온 전화라 얼른 받았다. 시훈이 아버지의 당황한 목소리다. “원장 선생님! 우리 시훈이가 침대에서 놀다가 떨어졌는데, 입술에 멍이 들고 부었어요. 앞니도 흔들리는 것 같아요. 응급실에라도 가봐야 하는지 모르겠어요.”하고 말한다. 다급한 목소리에 잠시 기다려 보라 해놓고 하던 운동을 서둘러 마무리하고 시훈이 집으로 달려갔다.


 시훈이 어머니는 울고 있는 시훈이를 품에 안고 같이 울고 있고, 겁먹은 얼굴의 시훈이 아버지가 문을 열어주었다. 애써 침착한 표정으로 “어디 보자 우리 시훈이 침대에서 노는 것이 재미있었구나?” 하며 시훈이를 받아 품에 안고 살펴보았다. 그리 심하게 다친 것 같지는 않았다. “우리 시훈이 어디가 아파?”하고 물으니, 손가락으로 입술을 가리킨다. “그래, 입술이 아파.”하고는 자세히 살펴보니 약간의 멍과 부은 정도였고 이도 흔들어 보니 흔들리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내가 볼 때는 괜찮을 것 같다고 우선 시훈이와 시훈이 부모님을 안심시켰다. 오늘 밤은 그냥 지내보고 혹시 내일 아침 일어나 이가 흔들리거나 입술이 더 붓거든 병원에는 내일 가도 괜찮을 것 같다고 말하고 놀란 가족을 진정시켰다. 가족들이 진정된 모습을 보고 시훈이 집을 나왔다.


 어머니가 따라 나와 배웅해 준다. 시훈이 어머니의 두 손을 꼭 잡아주며 “시훈이 어머니 많이 놀라셨죠? 아이 키우다 보면 가끔 놀랄 일 생길 거예요. 그런데 어린 시훈이는 부모님을 우상과 같이 믿고 의지하는 존재예요. 그런 부모님이 울고 당황하는 모습을 보면 아이는 더 많이 불안해져요. 자기가 잘못해서 엄마 아빠를 울게 했다는 죄책감마저 들 거예요. 부모는 되도록 아이 앞에서는 좀 의연할 필요가 있어요” 하며 넌지시 아이 앞에서의 부모 태도를 이야기해 주었다. 시훈이 어머니는 조금은 안정된 모습으로 멋쩍어하며 “감사합니다.”만 연발한다. 별일 없이 잠 잘 자고 내일 아침 반갑게 만나자,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왔다.


 시훈이의 부모님은 맞벌이라서 매일 아침 일찍 내가 맞이하는 친구다. 다음날도 아침 일찍 출근하여 시훈이를 기다렸다. 시훈이 어머니는 직장이 서울이라 일찍 나가고 시훈이는 아버지와 함께 등원했다. 다행히 입술 붓기는 가라앉았고 약간의 멍만 남았으며 치아도 괜찮아서 정상적으로 등원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1살 시훈이, 그나마도 12월생인 시훈이가 나를 보자 하는 말 “원장 쩐쨍님 어젯바메 우리 지베 와 주저 더 감샴이다” 하고 말한다. 순간 나는 놀랐다. 그렇게 긴 문장을 이야기하는 시훈이의 모습도 처음 보았지만, 어찌 그런 인사말을 할 수 있을까? 혹시 이런 인사하라고 시키셨나요? 하는 눈빛으로 시훈이 아버지를 바라보니 시훈이 아버지 또한 놀란 표정이다. 순간 어젯밤 시훈이네 가족의 얼굴들이 스쳐 간다. 시훈이는 어머니랑 둘이서 끌어안고 울고 있고 아버지도 쩔쩔매며 당황해하는 모습. 부모님의 그런 모습에 우리 시훈이도 적잖이 놀랐고 무서웠구나! 내가 가준 것이 든든했고 힘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뿌듯한 마음으로 시훈이를 꼭 안아주었다.


 요즘 젊은 부모들만의 몫이 된 육아가 어렵고 시행착오가 많이 발생한다. 언젠가는 열이 나서 경기하는 아이를 어린이집으로 안고 달려왔던 부모님, 놀다 팔이 빠진 아이를 안고 온 부모님도 계신 것처럼 핵가족화로 육아 경험이 풍부한 어른들의 부재에 따른 부작용을 어린이집에서 함께 해 주어야 할 몫이 된 것이다. 대 가족제도에서는 어머니가 집안일을 할 때는 조부모나, 고모, 삼촌이 부모님 대신 아이를 봐주며 육아를 도와왔다. 이제는 부모가 가사를 할 때는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아기 울타리 안전 가드를 쳐놓고 가두어 놓는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지만 젊은 부모를 위한 지지체계가 부족하다는 생각에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또는 어린아이가 울거나 떼를 쓸 때면 바쁜 부모들이 감당이 안 될 때가 많다. 울음을 그치고 조용히 놀게 하는 역할을 티브이나 유튜브 등 동영상이 하고 있다. 즉효란다. 그렇게 어린 영아기부터 보육의 손이 부족하니 동영상의 힘을 빌려 양육된다. 어린 시기부터 영상에 많이 노출된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오면 무엇인가 자극을 계속 요구한다. 조금이라도 지루한 것은 참지 못한다. 기다릴 줄도 모른다. 시훈이 가족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된다. 어린이집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서도 고민해 보았다. 어린이집이 제2의 할머니가 되어 주어야겠다. 부모님들의 손이 못 미치는 부분과 부모님들이 어려워하는 부분을 채워주며 부모님과 손잡고 바른 육아를 위해 노력하자,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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