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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원장 Jul 22. 2024

버스킹의 서막

용감한 기타 연습

 여기저기 눈길 닿는 곳마다 팝콘을 튀겨놓은 듯 몽글몽글 하얗고 탐스러운 벚꽃이 만개했다. 그 화려함에 마음이 설렌다. 집에서 남편과 아래, 위 집의 눈치 보며 조심스럽게 하던 기타 연습을 벚꽃 아래에서 자유롭게 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일요일 아침 서둘러 아침밥을 먹었다. 청바지에 청남방, 청재킷, 상앗빛 머플러까지 나름 한껏 멋을 부렸다. 60년대 통기타 가수라도 된 듯 흉내 내며 따라 해 보았다. 수줍은 봄처녀가 된듯한 기분이다. 기타와 보면대를 주섬주섬 챙겼다. 혹시 기타 연습 중 지루해지면 볼 책도 한 권 담았다. 내 기분을 알아주는 듯 날씨도 화창하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기타와 보면대를 어깨에 메고 무인카페에 들러 카페라테 한 잔을 뽑아 들고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승기 쉼터로 올라갔다.

   

이미 쉼터에는 가족 단위로 나온 사람들이 많다. 그늘막과 텐트를 치고 벚꽃 아래 쉬고 있는 사람도 있고, 아이들과 비눗방울도 날리고 바람개비도 돌리며 노는 사람도 있다. 조용하던 쉼터가 많은 사람으로 시끌벅적하다. 가끔 배수지 공원을 오가는 사람만 종종 눈에 띄는 한적하던 곳인데 몇 년 전부터 벚꽃이 알려지면서 벚꽃이 만개하는 시기가 되면 간단한 캠핑 도구까지 챙겨 들고 많은 사람이 찾는다. 약간은 당황스럽다 사람이 너무 많으니 기타를 꺼내기도 부끄럽다. 구석진 위치의 벤치에 자리 잡고 앉아 한참 꽃을 보며 망설였다. 나이 들어 한가해지면 거리공연을 하며 여러 사람과 소통하며 살고 싶은 내 꿈을 살짝 꺼내 보았다. 거리공연을 하려면 이 정도는 극복해야 한다. 용기를 내어 기타와 보면대를 꺼내어 세웠다. 옆에 그늘막을 치고 간식을 먹던 가족들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본다. 훗날의 꿈을 이루기 위한 예행연습이라 생각하고 부끄럽지만 참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소음공해가 될까 봐 ‘비둘기집’‘짝사랑’… 을 소리 낮추어 작은 소리로 연습했다. 아직은 아름답게 연주할 수 없으니 주위에서 쉬는 가족들에게 방해가 될까 봐 조심스럽다. 지나가는 사람들과 놀고 있는 사람들이 힐끔힐끔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만의 시간을 즐겼다. 지나가던 60대쯤 되어 보이는 부부가 옆 의자에 앉는다. 한참을 조용히 듣던 여자분이 “가는 세월이네요. 좋아 보여요. 기타 치신 지 얼마나 되셨나요?” 하며 말을 걸어온다. 부끄러웠다. 초보티가 많이 난 모양이다. “아예 이제 막 배우는 중이에요”하며 배우는 중인 것을 강조하자 “ 잘하시는데요. 멋지세요” 하며 사진을 한 장 찍어주겠다 하신다. 부끄럽지만 핸드폰을 건네고 사진을 찍도록 자세를 취했다. 

 

 “열심히 하세요”하는 인사말을 남기고 부부가 돌아가자 좀 더 용기가 생긴다. 조그만 목소리로 노래도 흥얼거리며 연습해 보았다. 재미있다. 핸드폰을 열어 찍어주고 간 사진을 보니 기분이 좋다. 친구들 단체 카톡방과 재원생 부모님, 졸업생 부모님 단체 카톡방에 “벚꽃 아래서 버스킹 중입니다.”하며 사진을 올리자 여기저기 반응이 재미있다. 친구들은 “우와 용기 멋져 응원한다. 혹시 연주곡은 벚꽃 엔딩? ” 졸업생 부모님과 재원생 부모님들 방에서도 “우리 지금 달려갑니다” 하고 그늘막을 들고 달려온 부모님과 아이들, 간식을 싸 들고 와주신 부모님, 졸업생들과 재원생들의 뜻밖에 만남이 어린이집 동문 모임이 된 듯하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부모님들이 화려한 벚꽃 아래 다정하게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흐뭇했다.

   

나를 보겠다 달려온 우리 친구들 앞에서 아직은 아름다운 멜로디의 연주를 보여 줄 수 없음이 안타까웠다. 앞으로 많은 사람과 소통하며 함께 즐기려면 자주 이런 자리를 만들어 대중 앞에 서는 두려움도 극복해야겠다. 벚꽃이 다시 피는 내년 이맘때쯤엔 연습이 아닌 연주를 멋들어지게 해 보이리라 다짐해 본다. 오늘이 버스킹의 서막이라 생각하며 조금이나마 부끄러움을 극복하고 여러 사람 틈에서 기타를 쳐보았다는 생각에 뿌듯하다. 나도 즐겁고 보는 이, 듣는 이 모두가 즐겁고 아름다운 공연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쉬지 않고 열심히 고고싱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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