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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데이트

대화, 공감, 배려

by gir

매일 저녁 나는 남편과 우리 집 근처 다리밑에 차를 대고 음악도 듣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우리 집은 분가를 거부하는 친정엄마와 함께 산다. 아직도 나와 분리 안 되는 엄마가

어느 때는 안쓰럽다가도 늘 부정적이고 걱정을 품고 사는 엄마와 있음 힘들 때가 더 많다.


아이들 공부 마치고 큰아이는 원어민 영어 수업은 줌으로 하기에 그 시간 남편과 나는 밖으로 나간다.

우리 부부는 대화가 잘 안 된다.

남편은 내가 무슨 말을 하면 공감을 해주려 하기보다 해결책을 내놓는다.

몰라서 이야기하는 게 아닌데 말이다.

오늘은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 여보 나는 당신에게 해결책을 물어보는 게 아니야... 공감을 원했을 뿐이야 "

남편은 나에게 말한다.

" 당신 마음 알아 그런데 내가 내 이야기를 하면 당신이 더 힘들어질 것 같아 나는 자꾸만 말이 그렇게 나가는 거 같아 "

남편의 이야기를 듣는데 어쩌면 남편이 나에게 공감을 못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남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난 그렇게 말해주는 남편에게 미안했다.

그렇다. 남편이 내 이야기를 듣고 "나도 그래 걱정이야 " 함께 서로 걱정거리만 이야기한다면 부정적인 감정에 더 힘들었을 것이다


청주에서 인금체불 상태로 집에 돌아와 명절이 있어 남편은 한 달 넘게 쉬고 있다.

막막한 현실에 난 늘 친정 엄마처럼 남편에게 부정적인 이야기만 하고 있었다. 그러니 남편은 내게 걱정하지 말라고, 직장은 곧 들어가니 조금 상황이 힘들어도 기다리라고.... 그렇게 밖에 이야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남편은 나의 이야기게 공감을 못 해주는 것이 아니라 날 위로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남편에게 했던 이야기를 돌아보니 그래 난 그랬다. 걱정거리만 쏟아 놓고 있었다.

다리 밑으로 지나가는 지하철이 있는데 갑자기 남편이 소심하게 " 야호 " 하고 외친다. 그리 큰 소리도

아니고 작은 소리였다. 답답한다 보다. 소심한 남편의 "야호" 함성에 웃음이 났다.


지난주일 나는 남편과 대구에 내려갔다 왔다. 굳이 운전을 하고 간다는 남편이 걱정이 되어 나도 바람 쐬고 싶다고 하고 따라나섰다. 남편이 피곤해하면 내가 운전을 해줄 생각이었다.

약속 시간이 오전 9시였기에 우리는 혹시나 해서 새벽부터 출발을 했다.

휴게소 들려 편의점 커피도 마시고 아침시간에는 휴게소 우동 한 그릇, 꼬마김밥 한 줄을 둘이 사이좋게 사 먹었다. 속없이 좋았다. 비가 계속 오락가락 내려서 초록 풀 향기가 더욱 진하게 우리를 감싸 않았다.

경부 고속도로를 달렸는데 마치 산속을 달리는 기분이 들었다.

남편은 내려가는 내내 운전대를 나에게 양보하지 않았다. 난 덕분에 가을에 어울리는 요즘 많이 듣는

최백호 씨 음악을 들으며 속없이 그저 산속을 달리는 기분에 걱정도 잠시 내려놓았다.

남편은 대구에 갔다가 올라오는 길 수원에 들러 다시 사람을 만나야 했다.

올라오는 길 오락 가락 하던 비가 거세졌다.

순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그저 빗소리만 들리는 세상에 마치 남편과 나 둘만 갇혀버린 기분이 들었다.

사실 대구에서 만나기로 한 사람이 수원에 있었고 약속을 지키지 않았지만 사정이 있다고 하니 남편이 올라가는 길이니 수원으로 가겠다고 한 것이다.

화가 났다 하지만 남편에 속상한 마음을 알기에 아무 말하지 않았다.

다행히 수원에서 만난 사람은 정중하게 사과를 했고 또 이야기도 잘 된 것 같았다.

남편과 나는 다시 집으로 향했다. 올라오는 길은 내가 운전을 하겠다고 했다.

하루 종일 마음 조리며 운전했던 남편의 고단함을 알았기에....

해가 떨어져 어둑해질 때 우리는 집 근처에 도착했다.

카톡이 와 있다. 교회 한 집사님 우리 부부가 지방에 내려간 것을 알고 " 오늘 아이들 저녁은 내가 쏜다!!!"

하고는 피자 쿠폰을 보내 주셨다.

"주여 아버지...." 눈물이 핑 돌았다.

그렇게 우리는 아이들과 저녁에 피자를 먹었다. 하루 종일 아침 일찍 먹은 우동과 꼬마김밤이 전부였던

나는 잘 먹지 않는 피자였지만 세상에서 가장 맛있고 달달한 피자를 먹었다.

우리는 친정 엄마와 아이들... 온 가족이 북적이는 집에서 탈출? 한다고 하면 웃기지만....

나의 하루는 낮에는 아이들과 공부를 하고 저녁에는 남편과 자동차 데이트를 한다.

난 달리는 차를 좋아하는데.... 우리 남편 늘 다리 밑에 차를 세우고 편의점 프림커피를 사준다.

차 안에서 우리는 그렇게 서로 멍하니 음악을 들으며 달달한 프림 커피에 30분가량 바람을 쐬고 집에 돌아온다.

우리는 자동차 데이트는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아니.... 언제 그만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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