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바람이 불었다.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바람.
그 바람이 지나가자,
세상은 천천히 형태를 찾기 시작했다.
땅은 빛의 조각과 어둠의 가루가 섞여 만들어졌고,
하늘은 파란빛과 회색빛이 서로를 감싸며 물결쳤다.
새벽이었다.
완전한 낮도, 완전한 밤도 아닌 시간.
여자는 부드럽게 눈을 떴다.
발밑엔 흙이 있었고,
머리 위엔 빛이 흘렀다.
손끝으로 흙을 쥐자, 그 안에서 미약한 불빛이 스며 나왔다.
“살아 있네…”
그녀는 천천히 웃었다.
멀리서, 익숙한 걸음소리가 들렸다.
빛의 조각이 공중에서 흩날리며 길을 열었다.
남자가 그 길을 따라 걸어오고 있었다.
그의 몸은 여전히 빛으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그 눈동자 안에는 이제 어둠의 색이 섞여 있었다.
“당신이 만든 세계인가요?”
남자가 조용히 물었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우리가 함께 만든 거예요.
당신의 빛과, 나의 그림자가 만나서.”
남자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멀리선 새벽의 아이들이 걷고 있었다.
그들은 빛과 어둠을 동시에 품은 존재들이었다.
“이제 이곳엔 규칙이 없어요.” 그녀가 말했다.
“심판도 없고, 구분도 없고, 오직 서로가 비춰주는 빛만 있을 뿐.”
바람이 다시 불었다.
빛의 먼지와 어둠의 실이 얽혀
하늘로 천천히 솟구쳤다.
두 사람은 나란히 서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이제 어디로 갈까요?” 남자가 물었다.
그녀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아주 조용히 대답했다.
“이 새벽이 끝나는 곳으로.”
그리고 두 사람은 걸음을 내디뎠다.
하늘은 서서히 밝아지고 있었지만,
그 빛의 가장자리엔 여전히 그림자가 머물러 있었다.
그것이, 새로운 세계의 균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