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땅은 여전히 부드러웠다.
새벽의 햇살이 흙 속 깊이 스며들어, 빛과 어둠의 경계를 따라 미세한 생명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러나 그 밑, 아무도 닿지 않는 곳에서
미묘한 움직임이 있었다. 그것은 바람도 아니고, 소리도 아니었다.
다만, 무게였다. 세상이 생명을 얻은 그 순간, 어딘가엔 반드시 그 무게의 그림자가 생긴다.
처음엔 작았다. 흙 사이에 스며든 한 줄기의 어둠.
하지만 그것은 느리게, 아주 느리게 숨을 쉬었다.
나는 누구인가…
그 속삭임은 아직 이름도, 형체도 없었다.
다만 자신이 ‘버려지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위쪽 세상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새벽의 아이들과 함께 걷고 있었다.
빛이 부드럽게 퍼지고, 그림자는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이제 모든 게 안정된 것 같아요.”
여자가 말했다.
“그래요. 어둠도 더 이상 우리를 삼키지 않아요.”
그러나 남자는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 뒤, 아주 미세하게 깜빡이는 무언가가 있었다.
빛이 아니라… 그림자의 반짝임. 그는 그 의미를 알 수 없었다.
다만 마음 한쪽이 싸늘해졌다.
그때, 땅 밑에서 첫 소리가 울렸다.
빛이 있으면, 이름이 있어야 한다.
그림자에게도 불러줄 이름이 필요하다.
그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세상의 중심을 울릴 만큼 깊었다.
새벽의 바람이 잠시 멎었다.
그리고 흙이 아주 미세하게 갈라졌다.
그 틈 사이에서 손이 나왔다.
빛도, 어둠도 아닌 회색의 손.
손가락 끝에는 미약한 불빛이 맺혀 있었다.
그 손이 공중으로 천천히 떠올랐다.
나를 부르라… 나도 이 세계의 일부다.
위쪽에서 여자가 고개를 돌렸다.
갑자기 바닥이 흔들렸다.
새벽의 아이들이 놀라 울음을 터뜨렸다.
“무슨 일인가요?” 그녀가 묻자 남자가 대답했다.
“모르겠어요… 무언가가 깨어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바로 그때,
그들의 발밑에서 낮고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의 이름은 ‘루멘(Lumen)’.
당신들이 만든 세상의, 첫 번째 그림자.
바람이 불었다. 빛의 가루들이 허공으로 솟구치고,
어둠의 실이 그것을 감싸 안았다.
새벽의 세계가 조용히 떨렸다.
그리고 남자는 천천히 속삭였다.
“이제 진짜 균형이 시작되는군요…”